대기업에서 스타트업을 결심하다(2)
이 글은 아래의 '대기업에서의 개발자는 미래가 안정적일까?'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startupbongbong/12
앞선 글에서 썼던 고민들 뒤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내가 생각하는 '안정성'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다. 앞서 냈던 결론은 개발자로서의 전문성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현재 IT산업의 무게가 스마트폰의 등장을 기점으로 전자업계에서 서비스업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뭐가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서버 프로그래밍, 모바일 프로그래밍, 웹 프로그래밍 그리고 빅데이터 분석 정도라고 생각했다. 네 가지 분야 모두 경험은 해본 적이 있었고(가장 자신 있는 것은 모바일 분야이다.) 어떤 식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역량을 실무에서 키우기 위해선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 내가 생각했을 땐 두 가지 정도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이직을 하는 것이다. 서비스업을 주축으로 인소싱을 해서 기술력이 축적되어 있는 IT회사에 입사하여 엔지니어로서의 역량을 쌓는 것이다. 벤처 열풍, 스타트업 열풍 이후로 우리나라에도 기술력을 가지고 IT 트렌드를 따라가고자 하는 기업들이 많이 생겨났다. 외부 개발팀에 개발을 맡기는 구조가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 모두 개발하는 곳에 들어간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창업이다. 하나의 서비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다면 거기서 얻는 실력이 반드시 있을 테고 내가 원했던 회사를 스스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 벤처 실전전략이라는 교양과목을 들으며 막연하게 '창업이 재밌긴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을지언정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이때 나는 이 길이 강렬하게 끌렸다. 내가 더 나이가 들어서 과연 창업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 그때 나에겐 아마 더 많은 짐과 책임이 있을 테고 실패를 감내할 여유도 없을 터이다. 아마 내 성격상 도전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내가 설령 실패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1~2년 내에는 실패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기간 동안 최악의 경우에 수입이 없어도 (모아놓은 돈 - 2년 생활비)를 해보니 충분히 버틸만할 것 같았다. 현재 나이 30, 실패하더라도 충분히 다른 곳으로 이직할 수 있을만한 나이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구체적으로 스타트업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수 있고 기존 회사를 다니며 꿈꿔온 기업문화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하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다 해서 바로 할 순 없는 노릇이라 나는 가만히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이 회사를 나온다면 내가 잃는 것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돈이다. 회사에서 주는 연봉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전문성에 비하면 많았고 돈에선 충분히 만족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분명 다른 곳보다 많은 연봉이지만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의 삶과 나의 삶이 정말 큰 차이가 있는가? 난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들보다 분명 많은 돈을 벌지만 그들과의 삶이 어마어마하게 다르진 않았다. 앞으로 계속 이곳에 남아 돈을 벌어가면 남들이 준중형차를 탈 때 중형차를 타고 남들이 사는 집보다 5~10평 정도 더 넓은 집에 사는 딱 그 정도였다.
두 번째로 잃는 것은 회사가 주는 네임밸류이다. 사실 처음 회사에 들어올 때만 해도 부모님이 너무나 좋아하셨고 나도 은근슬쩍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네임밸류에 기분이 좋은 것은 처음 대면하는 이에게 자랑스레 말할 때 그때뿐이었고 그 이후로는 어떤 이점도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미 나는 이 회사에서 하는 나의 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고 회사의 위상과 나의 능력은 완전한 별개임을 깨달은 후였다. 때문에 나에게 네임밸류를 잃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 번째는 안정성이다. 당장 10~15년 간은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지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회사가 나에게 안정성을 주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삶이 여전히 걱정이 되었고 앞 선 글에도 썼지만 그때가 되었을 때 아무 능력 없이 세상에 내쳐지는 것이 더 두려웠다. 게다가 당장의 안정성을 포기한 후, 지금 이곳보다 더 좋은 조건의 회사에 들어가지 못할지언정 어디든 취업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창업으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실력이다. 나는 이 회사를 나온다면 반드시 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을 향해 가고자 했다. 그것이 스타트업이든 이직이든 말이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진 지금 시대에서 실력만이 외부, 내부의 압력(명퇴든 압박이든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든)에서 내 삶을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는 즐거운 일이다. 창업을 하게 되면 당연히 일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다. 물론 사업이라는 것은 공부와 다르므로 어느 정도 현실과의 타협이 필요하겠지만 기업문화라던가 개발방향이라던가는 당연히 내가 더 좋아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나열해보고 생각해보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은 남들이 말하는 '안전한'길,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것보다 '남들이 좋아하는 길'을 걸어온 것 같았다. 최악의 리스크(수입이 없는 경우)를 맞았을 경우에도 충분히 감내할만한 정도라는 생각이 들자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이후엔 그렇다면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