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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Aug 15. 2017

퇴사하겠습니다

  퇴사를 결심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결심을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 결심을 알린 사람은 당연히 부모님이었다. 예상대로 부모님은 나의 결심에 대해서 반대를 하셨다. 부모님께서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던 나의 생활이 안정적으로 보이셨을 텐데, 갑자기 퇴사를 해서 힘든 길을 가겠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예전부터 내가 하겠다고 결심하면 부모님이 무슨 말을 하던 듣지 않는 성격이었다. 더군다나 아주 오랫동안 고민해오고 준비해왔던 일이니 만큼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현재 회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 감정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나의 계획들을 차분하게 말씀드렸다. 아버지께선 오히려 나의 생각을 응원해 주셨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시간이 괴롭다면 인생 전체가 괴로울 것이다란 말을 해주셨다. 말 그대로였다. 난 그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괴로웠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며 난 다시 한번 확신을 얻었던 것 같다.


  이후엔 회사에 출근한 뒤 눈치를 보다 퇴근하는 생활이 지속되었다. 언제,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말한 이후엔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좋을지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금까지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모두가 웃으면서 헤어지는 방향을 선택하고 싶었다. 따라서 블로그 같은 매체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은 퇴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에 대해서 많이 찾아보았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평소와 같이 출근 후에 나에게 보내진 메일과 할당된 업무를 체크한 뒤 주변을 살펴보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퇴사 의견에 대해서 1차적으로 말해야 하는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함께 직접적으로 실무를 하고 있는 소파트장님과 나에 대한 인사고과권을 가지고 있는 파트장님. 난 이 두 분을 위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두 분 다 바쁘지 않아 보였다. 평소와 달리 여기저기 불려 다니지 않고 계속해서 자리에 계셨다. 나는 우선 소파트장님에게 사내 메신저로 간단히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왜 그러세요?"

"개인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설마 다른 팀으로 가나요? 안되는데 무섭게 왜 그러세요."

"아 그건 아닙니다"


  당시에 여러 사람이 다른 팀으로 떠났었기 때문에 나 또한 그 이유로 면담을 신청하는 것으로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물론 비슷한 것이긴 하지만 난 아니라고 대답했다. 곧 나는 근처에 빈 회의실을 면담실로 예약을 한 후, 소파트장님과 함께 들어섰다.


"무슨 일이세요?"

"저.. 퇴사하려고 합니다."


  이 말 한마디를 하기까지 정말 많은 긴장을 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회의실에 들어서는 그 순간까지도 '아 그냥 말하지 말고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할까?'란 생각도 했었다. 이어서 이어진 소파트장님의 대답은 무덤덤했다.


"그래요? 퇴사하고나면 뭘 하시려고요?"


  아마 다른 곳으로 향하는 동료가 보인다면 모두가 궁금해할 것이리라.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해온 생각과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계획 또한 차분하게 말씀드렸다. 말씀을 드리며 은근슬쩍 현재 회사에서 내가 느끼던 것들 -개발자라는 직함을 달고 있지만 관리자의 일에 가까운 일을 하는 엔지니어- 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소파트장님도 그에 대해서 동의하는 모양새였다. 이곳에서 하는 일, 배운 일로 다른 곳에서 일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란 말을 했다. 사실 이 답을 들었을 때, 난 다시 한번 확신을 했다. 10년이 넘게 이 회사에서 일해오신 분이 한 말이니 그동안의 내 느낌과 생각이 틀림없다란 생각이 들었다.


  소파트장님과의 면담이 끝난 후, 이어서 파트장님에게 말해야 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다시 한번 확신을 얻은 상태였기 때문에 내 발걸음엔 걸릴 것이 없었다. 난 망설임 없이 파트장님이 계신 자리로 걸어가 면담 신청을 했다. 파트장님과의 면담은 소파트장님과의 면담과 많이 달랐다. 파트장님은 어떻게든 나를 붙잡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볼게"

"사원들이 하던 일들은 사실 대리급들이 하던 일이야. 나가면 안 돼"

"왜 진작에 말하지 않았던 거야"


  파트장님 입장에선 나 외에도 팀원들이 다른 팀으로 빠져나가던 시기였으니 당연히 나가는 것을 막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파트장님의 말들이 나를 설득 시키지 못했다.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더라도 난 그 일들을 이끌어줄 '시니어 엔지니어'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시니어'는 있지만 그들은 엔지니어라기보단 이미 관리자에 가까워진 분들이었다. 결국 이끌어줄 사람 없이, 배울 사람 없이 하게 되는 일이라면 집에서 개인적으로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더 남는 것이 많으리라고 생각했다. 설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파트장님에게 다시 한번 내 의견을 피력했고 그동안 내가 준비해온 것들을 말씀드리며 이것이 단순히 충동적인 결정이 아님을 알렸다. 파트장님은 내 생각이 확고함을 알아차리신 것 같았지만 당장 허락하지 않고 다음 면담까지 생각을 해보라고 하다. 파트장님은 이후에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란 말로 면담을 여러 번 미루고 다시 진행했었다. 나는 그런 면담 때마다 나의 생각을 확고하게 말씀드렸고 결국에는 퇴사하는 날짜를 결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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