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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혜 Apr 21. 2024

제주에서 만난 별

파주 여자와 부산 남자

약 1년 3개월 만에 쓰는 글. 이번 이야기는 내가 2018년에 제주에서 만나 햇수로 6년을 함께했던 부산 남자친구와의 이야기다. 나는 우리가 이별하더라도 이때의 추억을 글로 남겨두고 싶었고, 2023년 2월 우리는 헤어졌다. 지난 기억들을 다시 들춰보기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남겨보는 글.



; 파주 여자와 부산 남자, 제주에서 만나다.

나의  번째 거처였던 세화의 한 게스트 하우스. 남자친구(이하 T)는 그곳의 셰프로 일하고 있었다. T는 부산사람이었는데 지난겨울 제주에 왔고, 역시 다른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다가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했다. 첫 만남? 첫인상?은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그냥 경상도 남자답게 무뚝뚝했다. 그리고 내가 게하로 옮겨왔던 그 시즌에 비가 아주 많이 내려서 게스트 하우스가 침수 됐었고, 못 쓰는 물건들은 버리고 쓸만한 것들은 닦고 정리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어느 정도 정리를 끝내고, 나도 이곳에 적응해갈 무렵에서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그전엔 정말 업무적인 대화만 했었던 기억. 아무튼. 셰프가 있는 게스트 하우스답게 이곳에선 저녁에 늘 소소한 파티가 열렸다. 지난 3개월 동안 반강제 금주 상태였던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매일 밤 술잔을 기울였다. 파티가 끝나고 애매하게 모자란 주량을 T와 함께 채웠다. 선선한 날씨에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며, 밤바다 파도 철썩이는 소리가 들리는 게하 앞 벤치에 앉아, 새벽 늦게까지 도란도란.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술이 술을 부르고 사랑도 불러왔다.




;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남자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고, 시내 데이트를 나섰다.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라 속으로 '왠지 오늘 고백받을 것 같은데?' 싶었다. 그리고 데이트의 마지막 코스였던 이자카야에서 T는 정말로 고백을 했고... 난 거절했다. 잘은 기억 안 나는데 아마 "저는 뚱뚱한 사람도 싫고, 담배 피우는 사람도 싫어요."라고 했던 기억. 왜냐면 지난 연애를 마치고 나는 뚱뚱한 사람, 담배 피우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었기 때문.. 그런데 그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게 T였다.


후에 T에게 들었던 그 당시의 속마음은 '얘 뭐지???????'였다고 한다. 근데 나 같아도 정말 어리둥절의 물음표 백만 개였을 것 같다. 아무튼 분위기는 말 그대로 갑분싸가 되어버렸고, 택시를 타고 침묵의 1시간을 달려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서로 말없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고, 씻고 나오니 나를 밖으로 불러내던 T. 길 건너 바다 앞에서 담담히 내게 말을 건넸다. "내가 살 빼고 담배 끊으면 나 만나줄래?"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그날 밤은 그냥 그렇게 돌아가 잠에 들었다. 그다음 날에도 지난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로 부담스럽지 않게 적당히 내게 친절을 베풀었고, 지난 다른 날들과 같은 일상들을 보냈다.




; 사랑은 교통사고와 같다

그럼 어느 포인트에서 사귀자고 결심했나? 딱히 어떤 포인트는 없었다. 진짜로 살을 빼고 담배를 끊어서 만났나? 2023년까지 그는 담배를 끊지 못했다. 그냥 어쩌면 나는 그전부터 스며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보름 뒤에 제주를 떠날 생각이었고 장거리 연애를 할 자신도 없었기에, 그냥 적당한 감정으로 두고 싶은 마음에 거절부터 나왔던 것 같다. 아무튼 며칠간의 고민 끝에 고백에 응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오늘 얘기할까? 내일 얘기할까? 하며 하루하루 보냈던 기억.


그리고 그날은 아침에 내린 비로 도로가 미끄러웠다. 게하 식구들과 바다로 놀러 가기로 했고, T가 운전하는 차에 다 같이 탑승했다. 겨우 5분 남짓한 그 길에서 수십 수백 번은 오갔던 그 도로에서, 우리는 타이어 4개가 다 펑크 나고 뒷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큰 사고가 났다. 차도 그날 폐차했다.



정말 천운이었던 건, 그 차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아무도 다친데 없이 스스로 걸어 나왔다는 점과 길에 오가는 차와 사람도 없었고, 가드레일 밑이 돌바다였는데 딱 가드레일 앞에서 멈춰 섰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날의 사고로 T는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해 보였고, 나는 오늘이다 싶었다. 이날 저녁 T를 이끌고 밤산책을 나섰고, 매번 우리가 같이 앉아 음악을 들으며 별을 바라보았던 그곳에서 나는 말했다. "내가 T 여자친구 할게."




; 밥 잘해주는 다정한 오빠

나는 나 스스로 차려먹는 것도 귀찮아서 밥을 거르는 사람인데, T는 정말이지 요리를 잘했다. 육지에 있을 때 일식, 양식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다더니 솜씨가 끝내줬다.



어떤 게스트하우스에서 통연어를 해체해서 연어회를 떠주고, 초밥을 만들어주느냐고.. 어떻게 부르스타에 구운 소고기가 스테이크 전문점보다 맛있을 수가 있냐고..


먹는 것에 큰 감흥이 없는 나는, 맛있는 것을 먹어도 "음~ 괜찮네." 정도인데, T의 요리는 정말 맛있었다. 그 결과 제주에서 같이 지낸 3개월간 나는 5kg이 쪘다.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 저녁에 어떻게 술을 빼놓을 수 있겠어? 결과 주량이 3병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식사보다도 더 좋았던 건, 내가 아파 몸져누웠을 때 직접 끓여다준 전복죽이나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는 나의 생사 확인을 하며 사식처럼 넣어주던 예쁘게 깎은 사과였다. 아, 나는 정말이지 다정함에 취약하다.




; 426km의 연애

그리고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내가 육지로 돌아갈 날. T와 사귀면서 조금 더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두 달이 지날 때쯤 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원래도 환절기엔 늘 아프곤 했는데, 하루 걸러 하루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을 정도였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집에를 못 가니까 아프지."라고 하셨고, 문득 집이 그리워졌다. 우리 집 내 방의 침대와 커튼 사이로 스미는 햇살이 그리워졌다. 집이 너무 가고 싶어 졌다. 그래서 마지막 한 달을 채우고, 나는 육지로 올라왔다.


사실 그러고 몇 주의 휴식을 가진 뒤, 우리는 필리핀 세부에서 다시 만났다. 당시 게스트하우스 사장 오빠가 여자친구였던 매니저 언니와, 아는 형님들과 세부로 여행을 가는데 "T가 여자친구가 생기면 같이 데려가줄게." 했었고 그 여자친구가 내가 되었다. 그리고 그전부터 동남아 배낭여행을 하고 싶었던 나는 이 참에 하면 되겠다 싶어 혼자 한 달 반을 더 여행했고(이 이야기도 언젠가 브런치에 쓰고 싶다.) 태국에서 제주로 입국해 또 한 달을 지내다가 진짜 진짜로 파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장거리 연애가 시작됐다.


게스트 하우스에 라면가게를 차린다고 해서 T는 제주에 더 남아있게 되었다. 그래서 간간히 시간을 내서 내가 제주에 내려가기도 했고, 명절 연휴 맞춰 본가인 부산에 간다는 T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가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T가 어깨를 다쳐 수술을 하면서 완전히 본가로 올라가 버렸고, 우리의 거리는 426km가 되었다.




; 장거리 연애? 오히려 좋아

파주에서 부산까지 426km.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하여 걱정스러웠던 장거리 연애였지만, 오히려 좋았다. 우리는 생각보다 각자의 시간이 중요한 사람들이었고, 서로에 대한 꽤나 두터운 믿음도 있었다. 한 달에 한번, 두 달에 한번 만날까 말까 했지만 못 만나는 동안 싸우는 일도 없었고, 파주와 부산이 아닌 새로운 도시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는 것도 좋았다. T의 본가인 부산은 하도 많이 가서, 이젠 부산 지리를 외울 정도다.


부산과 파주, 서울은 물론이고 가평, 대구, 여수, 순천, 전주, 용인, 강화, 양양, 영월, 강화, 인천, 김포, 울산, 보령까지 정말이지 열심히도 놀러 다녔다. 데이트 시간은 너무도 짧았지만, 항상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크게 싸울 일도 없이 4년 6개월의 시간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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