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충분히 외로울 시간이 필요한 이유
그때에나 지금이나, 나는 바쁘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바쁘다' 보다 '효율적이다'가 더 맞는 표현일까? 하루의 계획을 세울 땐 두세 가지 스케줄로 꽉 채우는 걸 좋아한다. 한번 집 밖을 나서면 오전부터 오후까지 가득 채워 그동안 생각했던 일들을 모두 해치우는 편이다. 일을 할 때에도 톱니바퀴가 탁탁 들어맞는 것처럼 순서를 짜고, 완료된 일들을 체크리스트에서 지워내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들. 그 틈을 주지 않으려고 바쁘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런데 제주에서의 삶은 퍽 여유로웠다. 특히 남쪽 시골 동네로 이사 온 후엔 더더욱.
하루를 일하면 이틀의 휴가가 생겼고, 근무하는 날에도 점심 즈음이면 어느 정도 할 일이 끝났다. 그렇게 시간이 날 때면, 나는 가벼운 차림으로 동네 산책을 즐겼다. 맛있다는 베이글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동네 작은 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앞에 있는 문구점을 기웃거리기도, 길 따라 무작정 걷다가 길 없음 표지판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 보니 비로소 나를 만날 수 있었다. 푸른 나뭇잎 아래 부서지는 햇살과, 멀리서부터 불어오는 바다 내음. 조용한 시골 동네, 그리고 그곳을 혼자 거니는 나. 이 세상에 오직 나만 존재하는 기분.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그리고 그제서야 느꼈다. 혼자서 충분히 외로울 시간도 필요하구나.
바쁘게 살아야만 "잘"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만히 앉아 쉬면서 내 내면의 이야기를 듣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즘.
잘 살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게 진짜 사는 거지.
바다 앞에 가만히 앉아 따스하게 내리쬐는 초여름 햇살 받으며,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느끼며, 들려오는 물결 소리, 새소리 들으며,
이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기.
몇 달 후에 사무치게 그리워질 지금 이 순간을
더 아낌없이 누려두기.
머릿속에, 마음속에 충분히 담아두기.
-2018년 6월 7일 일기-
게스트하우스 스텝으로 지낸 첫 달엔 생각이 많았었다. 하루, 길면 이틀 이야기 나누다 헤어지는 게스트들은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봤지만, 나는 내심 불안했다. 동네에서 같이 지냈던 친구들은 취업 준비를 하다 회사원이 되었고,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은 아직도 열심히 일 하고 있으니. 남들과 다른 삶을 선택했기에 뒤쳐지는 중일까 불안해서.
그런 나의 불안감을 눈 녹이듯 녹여준 한 마디. “너는 참 귀한 아이야. 욕심나는 아이야. 나중에 네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궁금해.” 누군가 나의 가치를 알아봐 준다는 것만큼 멋진 삶이 있을까? 이미 나는 충분히 멋진 삶을 살고 있는 중이었다. 머물러있는 줄 알았는데 자라고 있던 거였다. 내가 잘나서라고 으스대기보다, 나를 알아봐 주는 그런 좋은 분이 내 주변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이 시간 속에 함께 있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스쳐 지나갈 작은 인연이래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들었다. 매일 이런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는 것에 감사했고, 나 역시 그들에게 ‘만나게 되어서 기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여름은 인복이 넘칠 거라고 했다. 귀인들이 내 주변에서 나를 도와줄 거라 했다. 그 말이 실감 날 만큼 제주에서 너무 좋은 분들을 만났고, 여전히 난 혼자지만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나뭇가지가 자라듯 점점 넓어지는 내 세계를 보고 있으니 행복하다. 보여지는 행복이 아니라, 나 지금 진짜 행복해.
-2018년 7월 14일 일기-
많은 사람들이 우도를 당일치기로 다녀오지만, 여유가 있다면 1박을 추천한다. 올레길 1-1코스를 따라 우도봉을 오르면 탁 트인 바다와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수국철에 우도에 간다면 우도 등대공원에서 멋지게 핀 수국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