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 노예 Mar 11. 2020

팀장은 누가 케어해 주나요?

업무에 대한 책임,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책임.

임원 보고 후, 나는 회사에 화가 나 있었다. 


6개월 넘게 준비했던 프로젝트의 뿌리를 흔드는 피드백을 들었기 때문이다. 1차 보고 때는 모두 만족스러워했는데.. 갑자기 벼락을 맞은 기분. 구체적인 설명은 듣지 못했다. 그냥 마음이 바뀐 것 만 같았다.  내 보스가 가리키는 북극성을 보고 열심히 달려온 건데 그는 그저 묵묵하게 이 상황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임원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으며 이 사안을 대하고 있었다. 여러 번 반복해서 겪은 일. 나는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나는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회사를 다녔다. 



이러한 상황에서 면담 기간이 돌아왔다. 


  나는 팀원들을 좋아한다. 모두 너무 좋은 사람들이고 각기 다른 강점을 지닌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동기유발에 관심이 많다. 면담을 통해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 원하는 업무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에 맞게 업무를 주려고 최대한 노력을 한다. 그리고 그간 힘들었던 일을 함께 나누면서 업무조정이나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방법도 고민하고, 나의 장단점에 대한 피드백도 듣는다. 


  그런데 나는 지금 회사에 화가 나있고, 의욕을 잃었다. 내 안에 '동기' 같은 건 없다. 그저 지긋지긋할 따름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나는 지금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면담 날짜는 잡혀있고.. 이 기분을 그들에게 전염시킬 순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불편한 마음을 끌어안고 결국 해오던 대로 면담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피드백도 했고 격려도 했으며 업무환경 개선에 대한 나의 다짐도 이야기 했다.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의 이야기는 온전히 하기 힘들었다. 면담시간은 그들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면담을 끝내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도대체 누가 케어 해 주지?"


내가 팀원이었을 때 팀장은 나를 신경 써 주었다. 일이 너무 많으면 조정해 주고, 업무 성격이 나와 맞지 않으면 바꿔 주고, 새로운 기회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전에 비해 나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 많아졌다. 우리 조직원이든, 내 직속 상사든 예전만큼 마음 놓고 회사와 업무에 대한 나의 상태를 이야기하기 힘들다. 


리더가 된 후, 업무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나 자신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임원 보고의 소문을 듣고, 또 맥없이 회사를 서성이는 내 모습을 보고 힘내라고 격려해준 다른 팀 동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회의가 끝나고 커피 한잔 하며 대화할 기회가 생겨 하소연을 했다. 마음이 개운하지는 않았지만 공감받는,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고 내 이야기를 들어준 동료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이 방법이 맞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나의 보스는 1-2주가 지난 후 나를 불렀다. 그리고 임원보고에서 위와 같은 피드백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배경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언제든 또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 말해주었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려면 회의 때든, 회의가 끝난 후든 이유를 좀 더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나의 말에,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주셨다. 내 마음은 조금씩 나아졌다. 그리고 나머지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우리 팀원들을 불렀다. 그리고 임원보고 피드백이 급변한 이유를 전달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나혼자 회사와 화해했다. 처음, 나혼자 화가 났던 것 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가볍게 들리지 않는 말 "커피 한잔 할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