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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sh Jan 14. 2024

컵밥거리에서

공시생과 사육신


*해당 글은 현재와 달리 공무원 시험 열기가 높았던 2018년도에 작성됐습니다. 


추운 겨울,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에 컵밥 거리로 공시생들이 모여든다. 공시생들은 위에는 검은 패딩을 걸쳤고 아래로는 회색 트레이닝 복을 입었다. 공시생과 두 단색 옷은 어울렸다. 공시생과 두 단색, 왠지 둘이 닮아 보였다. 공시생들은 무언가가 빼곡히 적혀 있는 종이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종이에는 스프링 공책에서 찢은 흔적이 있었다. 다크서클이 가득하고 입꼬리는 축 늘어진 공시생들은 종이를 보며 줄을 섰다. 종이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종이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멈춰 있는 듯했다.      

  

노점 가판대 앞에는 갖가지 컵밥들의 종류와 그것의 토핑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볶음 김치와 여러 소스들을 밑바탕으로 깔고 대패 삼겹살, 스팸, 참치 마요, 계란 프라이, 떡갈비, 날치알 등의 토핑을 선택해, 밥에 비벼 먹는 것이었다. 메뉴는 다채로웠다. 컵밥들은 자신의 토핑을 자랑하며 개성을 뽐냈다. 대패 삼겹살이 들어간 기호 1번 컵밥부터 기호 9번까지, 각각의 컵밥들은 대형 광고판의 일타강사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자신의 강의만 들으면 공무원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광고판의 강사들보다 자신의 속재료를 있는 그대로 알리는 컵밥이 나아 보였다. "나를 먹으면 반드시 공무원에 합격합니다." 컵밥은 이따위의 말을 하지 않는다.      

가판대 앞과 달리 가판대 안은 상황이 달랐다. 자랑스럽게 자신을 뽐내던 사진 속 컵밥들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가판대 안에 있는 것들에게 생기가 없었다. 철판 위에 놓여져 있던 토핑들은 시간이 조금 지난 것 같았다. 스팸들은 한쪽에 쌓여 있었는데, 색이 거무스름해서 층이 구분되지 않았다. 초벌된 대패 삼겹살은 기운 없이 축 늘어져서는 칙칙한 회색을 띄고 있었다. 컵밥의 토핑들이 본래의 색과 모양을 잃은 것이다. 문득 음식이나 사람이나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량진의 것들은 바래져 보였다. 컵밥의 재료, 사람의 모습, 사람의 마음...  바래진 모습과 바래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바래진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 동질감을 느낀 것일까.         

 

컵밥 거리의 한쪽에는 간이 의자가 있다. 공시생들은 주인아주머니께 컵밥을 받아, 간이 의자가 있는 데로 향했다. 컵밥에는 하얀색 일회용 플라스틱 수저가 꽂혀 있었다. 공시생들이 자리에 앉아서 컵밥을 먹는다. 하얀 플라스틱을 휘휘 저어 밥을 비빈 후, 입을 벌려 컵밥을 밀어 넣는다. 컵밥 냄새를 맡은 비둘기 떼가 간이 의자 쪽으로 몰려든다. 비둘기들의 검은 털은 결이 바르지 않고 뒤죽박죽이어서 몸이 까칠해 보였다. 이곳 노량진의 생명체들은 본연의 모습을 잃어 버린 것일까.                     

  

검은 패딩을 입은 공시생들이 옹기종기 간이 의자에 앉아 컵밥을 먹는다. 검은 털의 비둘기들은 역시 옹기종기 모여 공시생들이 떨어트린 컵밥의 밥알 을 주워 먹는다. 검은색의 존재들은 서로를 아랑곳하지 않고 먹는다. 저마다 다른 토핑들이 들어간 컵밥은 저마다 다를 바 없는 공시생들과 비둘기들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다를 바 없는 공시생들은 극소수의 합격자가 즉, 남과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저마다 다른 토핑들이 들어간 컵밥을 먹는다. 컵밥 거리 뒷 쪽 건물에는 ‘너의 합격은 내가 인도한다!'고 대형 광고판 속의 강사가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노량진에는 사육신(死六臣) 묘가 있다. 사육신들이 어둡고 좁은 묘(墓) 속에 잠들어 있다. 그들은 관리로서 살다가, 너무나도 나라에 충직한 나머지 세상을 하직했다. 그 반대편에 노량진로를 건너, 관리가 되고자 하는 자들이 있다. 관리가 되고자 컵밥을 먹고 어둡고 좁은 고시원 방에서 매일 밤  잠에 든다. 이 둘을 잇는 육교가 있다. 육교에서 어느 공시생은 울음을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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