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에게 해피엔딩 Aug 23. 2022

나는 교수설계자입니다.

EP1. 교수설계자라고요?

무슨 일 하세요?


지금까지 살면서 제 직업을 소개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가끔 처음 만나는 사람이 저에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어보면 저는 잠시 얼음 상태가 됩니다.

하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20년이 넘게 한 가지 일만 주야장천 해왔는데도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지?' '내 직업을 뭐라고 소개해야 하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한 번에 떠오르지 않는거에요.  

 

보통은 직업의 이름만 얘기해도 무슨 일을 하는지 바로 짐작이 되잖아요.

예를 들어 변호사, 의사, 검사, 선생님, PD, 성우, 배우, 운동선수…. 등등

이렇게 얘기하면 바로 누구나 한 번에 알 만한 직업이면 참 좋겠는데...

내가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나조차도 너무 생소한 용어라 말하기 힘든 건지…

선뜻 제 직업이 무엇인지 입 밖으로 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물어보는 사람에게 대답은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머뭇거리다가  

"저는 교수설계자입니다."라고 소개를 합니다.

근데 이 교수설계자라는 용어가 참… 처음 듣는 사람들에겐 너무 낯섭니다.  

물론 이 일을 하는 저에게도 종종 낯설게 느껴지는데요.

회사를 다니면서 일을 할 때는 그냥 직급, 아니면 PM(Project Manager)으로 불리다 보니 ‘교수설계자’라는 용어를 잘 안 쓰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회사에서 제가 하는 분야의 사람을 뽑을 때 ‘교수설계자’라는 자리로 뽑고 있으니 결국 제 직업은 ‘교수설계자’가 맞겠죠?


그런데 사람들이  대답을 들으면 십중팔구는 바로 이렇게 물어봅니다.

"교수설계자요? 어떤 일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또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가끔은 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제 직업에 회의가 생기기도 합니다.

얘기하면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명확한 네이밍을 가진 직업,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누구도 되물어보지 않으며, 누구나 선망하는 그런 직업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도대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 후회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을 그 지점에서 저는 대답합니다.

"온라인 교육 콘텐츠 만드는 일 하는데요. 이러닝이라고… 혹시 이러닝 아세요?"라고 하거나

이러닝도 잘 모른다고 하면

"인강 알죠? 인터넷으로 듣는 강의... 그런 온라인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 만드는 일 해요."

이렇게 얘기하면 완전히 이해한 것 같지는 않지만 약간의 미심쩍은 눈빛과 표정을 보내며

"아~ 교육... 좋은 일 하시네요."

이렇게... 다소 허무하면서... 다소 찝찝하게... 넘어가는 일이 많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 잘 몰라서, 혹은 제 직업이 부끄러워서 제대로 설명 못하는 건 아닌데…

여전히 제대로 잘 설명하는 게 어렵네요.

‘교수’라는 말도, ‘설계’라는 말도 뭔가 쉽지 않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근데 건축'설계자’라고 하면 다들 바로 이해하지 않나요?

그리고 ‘교수’라고 하면 누구나 어떤 직업인지 알고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한 사람'으로 생각하잖아요.

근데 왜 ‘교수’에 ‘설계자’를 붙이니 뭘 하는지도 모르겠고 또 생소한 건지…

건축 설계자는 건축물을 설계하는 사람, 뭔가 딱 눈에 그려지는 게 있는데 교수설계자라고 하니 '교수를 설계해? 교수를 어떻게 설계해? 교수를 만드는 직업이야? 교수를 어떻게 만들어?'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교수’라는 단어가 '교수님'이 아닌 이상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추상적이라 더 그런 거겠죠?

그렇네요. 

이 ‘교수’라는 단어와 ‘설계’라는 단어의 조합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실 '교수설계자'는 영어로 Instructional Designer라고 해요. 그래서 외국에서는 ID라고도 불립니다.

(갑자기 외국사람들에게 Instructional Designer는 생소하지 않은지… 궁금해지네요)

'Designer'라는 단어는 그나마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고, 익숙한 단어죠.

그런데 ‘Instruction’이라는 단어가 한글로 ‘교수’라고 번역을 할 수 있는데요.

이 단어가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한 단어는 아닌 것 같아요.

교수라는 단어를 한자로 쓰자면 敎(가르칠 교)授(전수할 수), 즉 가르치고 전수하는 것인데 가르치고 전수하는 일이라는 것이 꽤나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잖아요.

여러분도 초등학교, 아니 어린이집 시절부터 따져야 하나요?

여하튼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기 시작해서 초,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다니면서 (거기에 수많은 학원까지 더해서) 다양한 교육을 받아봐서 아시겠지만 공부를 하는 현장에서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얼마나 많은 상호작용이 일어나나요?


그걸 ‘교수’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는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 

게다가 ‘교수’라는 행위가 정확히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것이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보니 교수를 설계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더욱 상상하기도 힘든 것 같고요.

그래서 ‘교수설계자’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은가 봅니다.


그래서 다음 편에서는 ‘교수설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얘기해보려고 해요.

그래야 ‘교수설계자’가 뭐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제발... 잘 설명할 수 있길 바라면서:)

작가의 이전글 나를 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