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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다 Apr 22. 2020

다섯 번째 편지

초라함에 대하여


앙리야, 안녕?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어. 세차게 때리는 빗줄기가 아니라 좋구나. 정말, 네가 있는 그곳까지 살짝 따뜻하게 스며들 정도의 봄비네. 오늘도 난 새벽부터 가게에 나와서 일을 했어. 이제 숨을 좀 고르고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요즘은 뭘 챙겨 먹는 게 참 귀찮아. 나도 너도 먹는 걸 참 좋아했는데... 넌 마지막엔 별로 먹질 못했어. 이가 좋지 않아 매일 불린 사료만 먹으려니 참 고역이었겠지. 나중엔 주사기로 먹여줄 수밖에 없었고... 널 안고 그렇게 밥을 먹일 때면 다시 아기 강아지가 된 것 같았어. 얼굴도 여전히 아기처럼 귀여웠고.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리 양치를 시켜도 시궁창 같은 입냄새는 사라지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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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아침에 동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어. “혹시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이진 않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 곳이 무너져 내렸어. 물론 난 다급하게 거짓말을 했어. 전혀 그렇지 않다고... 그렇지만 속으로는 너무 화가 났어.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거든. 난 이렇게 새벽부터 아등바등 거리며 살아가려 하는데 왜 저리 나약한 소리만 지껄이는 걸까 싶었지. 그런데 오늘 문득 일을 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초라해지지 않은 존재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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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인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 열정이 사라지는 거... 그게 사람을 초라하게 쪼그라들게 만드는 것 같아. 원하는 대로 찬란하게 빛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니. 한 때 우리도 꿈을 꿨었어. 동지가 평론가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을 때, k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우린 잠시 희망을 가졌었어. 이제 좀 뭔가 펼쳐지겠지, 사사에게 좀 더 나은 부모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 하지만 결국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 지면은 부족하고, 언젠가 은사님의 말씀처럼 사회성이 극도로 부족한 동지는 아무런 끈도 잡지 못했어. 시작도 하기 전에 그 바닥에서 사라진 거야. 그런 동지 옆에서 난 늘 돈 벌 궁리만 해야 했어. 그렇게 우리의 열정은 점점 사그라들었어. 지금도 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야. 집도 갖고 싶고, 남들처럼 여행도 가고 싶어... 욕심일까? 현실은 암담해. 난 요즘 사사의 이마에도 가난의 그림자가 드리워질까 겁이 나.

난 친구도 없고, 어둡고 가라앉는 이야기는 동지에게 털어놓고 싶지 않아. 침묵과 정적, 한숨을 견디기가 어려워. 살아서도 너에게 많이 의지했는데 지금까지도 넌 내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어. 글이란 늘 실제보다 과장되기 마련이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 난 잘 버티고 잘 견디고 잘 살아가고 있어. 넌 외로움과 고독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앙리, 내 사랑하는 강아지... 다시 또 만나자. 늘 그곳... 50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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