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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초이스 Jun 06. 2020

예쁘면 좋아?!

'예쁘다'와 '좋다'의 차이

회사에서 받은 패키지권으로 곤지암 리조트에서 한량처럼 보내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작년 연말엔 제품 출시가 한창이라, 연초부턴 코로나가 기승이라 차일피일 미루다 기간 만료가 코앞으로 다가온 이제야 비로소 가게 된 거죠. 어차피 공로 받은 거 가지 말까 하다가 그래도 작년에 고생 고생했다고 보너스로 받은 건데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덜컥 예약을 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객실이 텅텅 빌 줄 알았는데 이미 만실이더라고요. 주중에만 이용 가능한 패키지권이라 금요일 오후 반차를 내고 곤지암 리조트로 향했습니다(반차 하나하나가 소중하죠).



호캉스 간 마냥 방 안에서만 빈둥거릴 작정으로 방도 호텔형으로 예약했는데 막상 와보니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더라구요. 막 도착한 낮엔 땀이 뻘뻘 날 정도로 더웠는데 저녁 무렵이 되니 바람도 살살 불고 한적해 절로 산책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신입 연수도 여기서 받았었는데, 하천이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하긴 그땐 한겨울이기도 했고, 무슨 정신이 있어 여기저기 둘러보고 다녔겠어요. 방 안에서 동기들과 과제하기 바빴죠.



호텔형 프라임 룸


생각보다 방도 너무 넓고, 패키지에 포함된 담하 석식도 꽤나 만족스러웠습니다. 잠시 '그냥 방에만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왕 온 거 화담숲도 한 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방에 욕조가 있었더라면 또 모르겠네요. 아마 방에서만 있었을지도.



사전 조사도 없이 무작정 프런트에 화담숲 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주말이라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고 가는 게 좋다고 해 온라인 예매를 했는데요. 하길 잘했어요. 천 원 할인해 주더군요. 

다음 날 체크아웃은 11시. 조식은 7시 30분. 화담숲은 8시 30분 오픈. 

그래도 휴가라고 온 건데 너무 이른 시각은 그렇고, 7시 반에 일어나 8시에 아침 먹고 8시 반쯤 화담숲에 가 두 시간쯤 보고 돌아와 씻고 퇴실하면 알맞겠다 싶었습니다. 크나큰 착각이었죠. 

그래도 고작 30분 정도 늦은 거면 훌륭하지 않나요? 하하.


 

화담숲을 들어서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나무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여행할 때는 산이나 나무, 꽃을 보러 가는 게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집에서 하는 카드캡터 체리나 천사소녀 네티, 웨딩 피치처럼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이 먼 시간을 들여 고작 본다는 게 지루한 자연 풍경이라니.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건 그걸 보며 감탄하는 부모님이었습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라대는 저에게 "너도 나이 들면 이런 게 좋아질 거야"라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너무 좋아 한참을 앉아 쉬었던 장소


    

재작년까지만 해도 뭐가 그리 좋은 지 모르겠던 자연의 아름다움이 이젠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좋습니다. 사방에 푸릇푸릇한 나무와 저마다의 색을 뽐내고 있는 꽃들이 가득한 것만으로도 감격스럽더라구요. 매일 빌딩 숲 사이를 가로질러 출퇴근하고 전자파를 뿜뿜 내뿜는 모니터만 하루 종일 바라보다 탁 트인 풍광을 보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더라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예쁜 것이 싫었다 좋아지고 나서야 예쁜 것과 좋은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진실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당연히 예쁜 게 좋은 것, 그래서 가능한 예쁜 것을 갖고 싶고 또 예뻐 보이고 싶었거든요. 물론 머리로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늘 따로 놀았다랄까요. 그래서 예쁜데 매력이 없다던가 예뻐도 싫다는 말들은 으레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 오늘 보니 바로 제가 여태껏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풍경을 좋아하지 않고 있었더라구요. 진심으로요.



누가 주인공이게요?


사람들마다 예쁘다고 느끼는 포인트와 예쁜 것에 대한 기준이 각기 다르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그 다름을 체감하는 순간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것들을 보고 배우며 비슷하게 자라니깐요. 그래서 제가 예쁘다고 느끼는 건, 남들도 예쁘다고 느낄 테고 또 그런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거죠. 여기까진 큰 문제가 없어요.



문제는 반대의 경우입니다. 내가 예쁘지 않다고 여기는 건 남들도 예쁘지 않다고 여길 테고(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건 모두가 싫어할 거다라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뿌리 박혀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입고 있는 옷, 혹은 저의 외모마저도 어떤 식으로 예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제 전체를 부정당한 느낌이 들었어요. 필요 이상으로요. 마치 면전에 대고 '난 니가 싫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다른 사람의 말과 시선을 의식하고 그런 말과 시선에 상처 받아온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냥 저 나름의 기준으로 보기에 별로 예쁜 것 같지 않다고 말했을 뿐인데, 제 취향을, 나아가 저 자신을 싫어하는 것처럼 확대 해석해 온 거죠. 그런 게 아닌데.



참 부끄럽지만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이상과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이 차이 나는 게 이것뿐만이겠어요? 제가 알고 있지만 그 간극이 잘 메워지지 않는 것들도 있을 테고, 심지어는 그 간극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도 있겠죠. 그렇지만 오늘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을 진정으로 느끼게 된 순간을 하나 얻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 간에 대한 반성과 오늘의 깨달음을 두고두고 기억하려고 이렇게 글을 씁니다.



이런 순간들이 조금씩 조금씩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훨씬 성숙한 제가 되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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