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직장 생활에서뿐만이겠느냐만은 직장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원래 그래'와 '다들 그래'입니다. 두 개가 닮은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데 들으면 기분 의욕이 꺾이긴 매한가지이나 주로 사용하는 상황이 다르죠. '원래 그래'는 뭔가 새로운 걸 제안하거나 바꿔보려 할 때, '다들 그래'는 힘들다고 하소연할 때 종종 등장합니다. 들으면 둘 다 기분 나쁘지만 굳이 둘 중에 뭐가 듣기 싫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다들 그래'가 좀 더 듣기 싫어요. '원래 그래'는 들으면 할 말 없게 만들지만 '다들 그래'는 반박하고 싶게 만든달까.
'다들 그래'는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등장합니다. 지치고 힘들 때는 위로의 탈을 쓰고 혹은 정반대로 다들 그런데 왜 유난이냐고 질책을 하기 위해 나타납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떤 상황에서 듣게 되더라도 기분 나쁜 건.
저는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개인보다는 환경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지만, 의식적으로라도 환경을 먼저 살펴보려고 노력합니다. 실수하기 쉬운 상황,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상황 등 애초에 상황이 잘못 세팅되어 있는데 그 안에서 개인의 편차를 따지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잘못된 세팅 안에서도 잘 해내는 사람이 있겠죠. 그런 사람은 칭찬해주면 됩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계속해서 헤매고 있다면, 그 사람 탓을 하기 전에 한 번쯤은 그 사람에게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 세팅된 건 아닐까 검토해보는 게 필요하잖아요.
드라마 '미생' 속 폴더 정리
실무를 하다 보면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프로세스나 꼭 필요한데도 없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럴 때 시스템을 바꾸거나 없애는 제안을 하면 '다들 그래'와 '원래 그래'가 콤보로 등장합니다. '다들 그런데 왜 너만 유난이냐' 혹은 '원래 이렇게 하던 거니 하는 거야'라고. 이럴 때면 나도 어쩔 수 없는 90년대생인가 보다 하다가도 뒤늦게 열 받곤 합니다. 익숙하다고, 번거롭다고, 다들 그냥 그렇게 잘 지낸다고 지금 상황이 옳고 합리적이라고 볼 순 없잖아요?
드라마 '미생'을 보면 신입 사원인 장그래가 업무 흐름과 업무 간 연관성을 파악해 공용 폴더 정리를 합니다. 기존에 있는 폴더의 로직트리를 무시하고 말이죠. 이 때문에 밤새워 정리했는데 칭찬받긴 커녕 혼나기만 하죠. 왜 니 멋대로 하냐고 말이죠. 그렇지만 시간이 지난 후 장그래가 정리한 폴더를 살펴보던 오 과장은 그가 정리한 방식이 훨씬 업무 흐름 파악도 쉽고 찾기에도 쉽다는 것을 느끼죠. 이건 드라마라 그런 걸까요?
계속 이런 말들을 듣다 보면 새로운 환경과 변화를 갈구하는 마음들이 사라지고 잊혀져 언젠가 제가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가게 되더라도 그땐 저 역시도 상황이 아닌 사람을 탓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땐 제겐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게 느껴질 테니깐요. 아마 지금 저희에게 이런 말을 하는 분들도 저와 같은 과정을 거쳐 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언젠가 제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위치에 가게 된다면(아마도?) 조금이라도 이런 마음을 놓치지 않고 간직하려고 글로나마 남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