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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사막과 양치기 소년 펄어비스

신뢰를 잃은 한국 게임업계

by 김태민

펄어비스의 AAA급 게임인 ‘붉은 사막’이 출시됐다. 기대감이 컸던 만큼 출시 직후 관심이 집중됐다. 시장과 게이머들 간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영미권 유저들은 현실감 있는 그래픽과 방대한 오픈월드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러나 주가는 40%나 급락했다. 다만 논란과 별개로 흥행성적은 청신호가 켜졌다. 며칠 만에 200만 장을 팔아치웠다. 2000억 원에 달하는 개발비의 70%가량을 회수했다. 굿뉴스나 배드뉴스는 모두 호재다. 이목을 끌기만 하면 일단 성공이다.


시장예상치인 500만 장을 달성하면 주가흐름은 달라질 수도 있다. 실적이 변하지 않는 기후라면 돈은 수시로 변하는 날씨다. 시장은 기대감과 전망을 따라 움직인다. 하한가를 맞았지만 펄어비스는 건재하다.


사이버펑크 2077 출시 후 개발사 CDPR은 최고점대비 주가가 75%나 폭락했다. 후속조치로 추가패치와 개선작업을 단행하고 IP를 애니메이션으로 확장하면서 주가는 급등했다. 일단 데뷔가 성공적이면 손실을 만회할 기회는 따라온다.


그럼 점에서 보자면 붉은 사막은 일단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 예상보다 낮은 메타크리틱의 평가나 유저들의 불호가 이어지고 있지만 눈길은 확실히 끌었다. 엔씨소프트의 기대작이었던 ‘쓰론 앤 리버티’와 비슷한 행보다.


리니지 이터널에서 시작된 쓰론 앤 리버티는 1500억 원이 투입된 프로젝트였지만 초기 흥행에 실패했다. 그러나 서비스 1년 누적 매출은 2700억 원을 기록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 되는 경우도 있다.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밀리더라도 장기전 끝에 전쟁에서 이기면 역사는 승자로 기록한다. 하지만 문제는 인식이다. 유저편의성을 무시하는 개발, 운영 방향은 결국 반감을 산다. 펄어비스가 내세우는 장인정신은 바꿔 말하면 고집 혹은 아집이다.


난해한 인터페이스, 불편한 조작감, 단순 반복 콘텐츠, 불분명한 세계관 등이 펄어비스의 고질적 문제다. 7년 간의 개발기간과 2천억 원의 막대한 개발비를 쏟아부었지만 진정한 개선은 없었다.


시장의 자금은 기대감을 따라다니면서 거짓말을 할 때도 있지만 유저는 다르다. 실망이 누적되고 반감이 쌓이면 차갑게 외면한다. 결과를 내세우지만 진짜 문제는 과정이다. 한국 게임업계의 행태는 양치기 소년과 참 많이 닮았다.


엔씨나 펄어비스는 페이퍼플랜이나 다름없는 프로젝트로 주가를 부양했던 전례가 있다. 코로나 시즌 펄어비스 주가를 14만 원까지 수직상승 시켰던 도깨비는 감감무소식이다. 엔씨 역시 프로젝트 M, J, 호라이즌 MMO로 통했던 H까지 모두 개발취소됐다.


신뢰를 잃은 기업도 때를 잘 만나면 잠시 빛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신뢰는 두 번 다시 쌓을 수 없다. 붉은 사막의 성과나 펄어비스의 주가는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추락한 이미지는 별개다.


확률조작으로 역대급 과징금을 먹은 넥슨이나 페이퍼플랜으로 주가방어를 일삼은 엔씨와 펄어비스는 일각에 불과하다. 수익성만 보고 리니지라이크에 올인했던 국내 게임업계는 이제 서브컬처에 편승하고 있다.


돈에 눈이 멀면 유저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 사이 게임의 본질인 즐거움은 희석되고 신뢰는 사라진다. 늦었지만 양치기소년의 결말을 들여다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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