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의 저자 조지 오웰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진정한 예술은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현대 사회에서 오웰의 말처럼 끝까지 살아남을 진정한 예술은 어떤 것일까?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유행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참된 예술로 대접받을 수 있는 작품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자면 기본에 충실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클래식으로 대접받듯이 예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화려한 픽션의 겉옷 말고 수수하지만 단정한 진실을 갖춰 입은 예술이 분명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앞으로 몇 세대가 지나도 참된 예술로 평가받기에 손색없는 위대한 작품이다. 쥐는 르포라는 형식을 그래픽노블 장르와 결합함으로써 만화적인 연출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또 고발해냈다.
독일인은 고양이로 유대인은 쥐로 표현하는 우화적인 기법을 통해 나치의 폭력성과 잔혹함을 드러냈고 흑백 화면의 시각적인 대비를 활용하여 비인간적인 수용소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작가 본인의 아버지가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기에 세계대전을 다룬 여타 작품들과는 다르게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과정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영화와 소설을 통해 나타나는 2차 대전의 이미지가 주로 전투와 희생이라면 쥐는 비극적인 경험을 생활과 생존이라는 두 가지 이미지로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죽음을 기다리는 수용소 생활 가운데 가족의 생사를 수소문하는 주인공 아티의 모습, 팔뚝에 새겨진 수감번호를 보며 감옥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행운의 숫자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장면을 통해 생존을 위한 처절함을 담담하지만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배급으로 받은 빵을 화폐처럼 교환하여 담배나 술을 구하는 수감자들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지만 한 모금의 술과 한 개비의 담배로 자유롭던 전쟁 이전의 삶을 떠올리는 수감자들. 생존을 위협받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은 생활을 통해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생존과 생활이 하나라는 것을 인식시켜준 장면이었다.
1,2권으로 나눠진 본 작품을 읽다 보면 충격과 인상을 받게 될 만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만화 기법 특유의 과장된 표현을 배제하고 흑백 화면과 장면 순서의 재배열을 통해 극적인 대비를 만들어낸 아트 슈피겔만의 독창적인 연출력 때문이다.
또한 이야기를 진행하는 아티의 독백이 담담한 문체로 서술되어있어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는데 더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지나친 각색 대신 과장되지 않은 적절한 연출로 표현해낸 센스에서 슈피겔만의 역량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작가인 아트 슈피겔만은 세계 대전으로 인해 가족들을 잃은 피해자다.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목소리 높여 고발하고 나치의 비인간적인 행동을 격정적으로 비판할 권리를 가진 사람인 그는 남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감정적인 비난 대신 우화라는 소재를 빌려 만화의 형식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 슈피겔만의 방법은 성공적이었다. 뛰어난 연출력을 활용하여 읽는 이들로 하여금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혹한 것인지를 담담하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직설적인 고발보다 우화라는 형식의 상징성 짙은 목소리가 더 큰 인상을 남긴 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름다움만을 논하는 예술은 반쪽짜리다. 삶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다룰 수 있는 것이 진짜 예술이 아닐까? 오웰의 말처럼 끝까지 살아남는 위대한 예술은 참혹한 삶의 모습도 용기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진실된 목소리를 가진 작품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세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 같다. 잊어서는 안 될 시대의 모습을 진실로 기록한 작품. 시간이 지나도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깊은 인상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