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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Oct 24. 2023

길을 잃은 나침반

우울증이 만들어내는 풍경

 우울증은 머리로 납득하기 어려운 병이다. 가슴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역시 쉽지 않다. 우울한 기분이나 감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당사자 본인조차 자신의 감정과 심리상태를 모르는 병이 우울증이다. 자기도 이해할 수 없는 데 타인의 이해한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섣부른 공감은 티 나는 거짓말이나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앞에서는 솔직함이 최선이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면서 느낀 점이다. 내가 아는 마음의 지도가 아무런 소용이 없을 때 나는 솔직하게 말한다. 얼마나 힘든지 나는 알 수 없지만 혼자 힘들지 않도록 곁에 있어주겠다고 이야기한다.


 친한 동생이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불안에서 시작해서 공황을 거쳐 끝내 우울에 도달했다. 다른 지인들처럼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올해만 벌써 3명이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판정받기까지 다들 힘들어했다. 이유나 증상은 다양했지만 본인이 어떤 상태인지 몰라서 괴로워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는 상태가 사람을 괴롭힌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인간의 내면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 깊숙한 곳 까만 어둠으로 가득한 미지의 공간에 숨어있는 상처를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울증은 전문의의 처방을 통한 관리를 병행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다만 마음은 별개인 것 같다.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도 마음은 쉽게 말을 듣지 않는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 눈에 닿는 곳에 있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외면하지 않는다. 연락이나 만남이 아니라 혼자서 느끼고 있을 막막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심한 우울감은 관심과 애정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은 언어와 비슷하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도 말이 품고 있는 온도는 느낄 수 있다. 모국어가 아닌 낯선 외국어로 이야기하는 상대를 앞에 두고 눈을 맞춘다. 고개를 끄덕이고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이해할 수 없지만 순간을 함께 할 수는 있다. 낯선 외국어지만 귀 기울여 듣는 것에 집중한다. 천천히 감기는 공허한 눈 속의 복잡한 감정을 보고 나도 따라서 눈을 감는다.


 감정이 버겁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나를 모르는 기분이라는 표현을 듣고 거대한 미로 속에서 홀로 헤매는 광경을 상상한다. 막막하고 답답한 혼자 만의 미로 찾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출구를 찾아 돌고 돌지만 탈출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방황하다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누워서 잠이 든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지나도 미로 찾기는 진전이 없다. 바깥세상의 풍경은 머릿속에서 점점 희미해진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나눠들 수 없는 짐을 짊어진 모습을 보고 나는 입을 닫았다. 감정을 섣부르게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이야기하고 싶으면 연락을 달라는 말을 건넸다.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인간은 받아들이거나 포기한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울증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지방으로 내려간 지인은 마음속에 비가 내린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약을 먹고 나서 찾아오는 멍한 느낌이나 어떤 감정도 느끼기 힘든 순간. 비 내리는 바다를 자주 떠올렸다고 한다. 회색빛 하늘을 그대로 닮은 어두운 바다 위로 쉴 새 없이 비가 내리는 모습. 차가운 언어가 만들어내는 풍경을 상상하면서 낯선 감정을 가늠해 봤다. 이름표를 붙일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오면 그나마 진정했던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녹아내릴 수밖에 없는 모래성을 쌓고 또 쌓는 일. 파도를 맞으면서도 삶을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은 투병보다는 투쟁에 가까웠다.


 가슴속 어딘가에 있는 나침반이 멋대로 이리저리 회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마구 흔들리면서 정신없이 춤을 춘다. 감정은 바늘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성난 갈기를 휘날리며 뛰어간다. 개활지를 달리다 몸과 마음 모두 지치면 공허한 기분이 먹구름처럼 가슴속을 뒤덮는다. 멍하니 응시하는 눈과 말없이 흐르는 눈물이 생각난다.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흘러가지만 사람은 사람을 기다릴 줄 안다. 고요한 분투를 나는 조용히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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