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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Apr 21. 2024

푸른 이끼

 아침 기온이 10도 아래로 떨어졌다. 창문을 열자마자 찬 공기가 실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날숨을 뱉었더니 하얀 입김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월요일에 비가 내리더니 날씨가 추워졌다. 뜨거운 한여름 같았던 지난 주말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밖으로 보이는 공원 너머 하늘이 뿌옇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다. 4월 날씨는 사람의 마음처럼 종잡을 수 없다. 사계절이 전부 뒤섞인 느낌이 든다. 주말에는 리넨셔츠를 입었는데 어제는 외출할 때 카디건을 챙겼다. 40년 가까이 한국에 살고 있지만 오락가락하는 날씨는 여전히 종잡을 수 없다.


 바람막이를 입고 산책로를 걸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이 났다. 해가 뜨자 기온이 가파르게 올랐다. 감정기복이 심해서 좀처럼 장단 맞추기 힘든 사람 같은 날씨다. 평화공원 앞을 지나다 가까운 벤치에 앉아서 땀을 식혔다. 벚꽃이 지고 난 공원은 싱그러운 푸른빛으로 가득했다. 공원을 뒤덮은 물기를 머금은 이끼는 선명한 초록빛이었다. 작은 솔방울이 여기저기 잔뜩 떨어져 있어서 깊고 고요한 숲이 생각났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민들레는 바람결에 홀씨를 날려 보냈다.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하얀 꽃잎이 이끼의 색감과 대비를 이루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끼를 좋아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마음에 들었고 이끼 위로 피어오르는 물기가 품고 있는 냄새도 좋았다. 맨손으로 만지는 것도 좋지만 이끼가 핀 숲길을 맨발로 걸으면 기분이 정말 좋다. 초등학생 시절 가족끼리 야영을 가면 종종 맨발로 숲길을 걸었다. 까만 부엽토 위를 뒤덮은 이끼를 밟고 걸을 때면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 살다 보면 원초적인 감각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아파트 단지와 빌딩으로 둘러싸인 삭막한 도시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연에 대한 거리감이 생긴다. 문명이 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지면서 인간은 자연에서 많이 멀어졌다.


 물결처럼 공원을 뒤덮은 푸른 이끼를 보면서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산과 강 가까이에 살면서 자연 속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 맨발로 흙을 밟고 살았던 때 묻지 않은 날들이 그립다. 도시가 만드는 그림자는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다. 자연은 천천히 말라가다 결국 자리를 내주고 사라진다. 한국은 어딜 가나 늘 공사 중이다. 초록색을 벗겨내고 회색을 입히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숲이 있던 자리에 이끼만 남았다. 개울에서 고기를 잡고 밤하늘을 보면서 별을 헤아리던 기억이 꿈처럼 멀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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