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안양사람

안양일번가

by 김태민

안양역에서 중고거래 약속을 잡았다. 일찍 도착한 김에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길 건너 익숙한 모습의 안양일번가가 보였다. 거리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에 폐업과 임대를 알리는 안내문이 보였다. 흐린 하늘 아래 텅 빈 상가들이 일렬로 나란히 서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웠지만 문을 닫은 가게가 적지 않았다. 영업 중인 가게들은 대부분 테이블이 비어있었다. 한낮인데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거리. 안양일번가는 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구름 사이로 간신히 햇볕이 쏟아졌지만 어둡게 가라앉은 거리의 분위기는 밝아지지 않았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찾았던 장우동은 일찌감치 폐업했다. 안양을 찾는 지인들에게 추천했던 국숫집 맛양값도 오래전에 문을 닫았다. 거리를 한복판을 차지한 프랜차이즈 역시 하나 둘 일번가를 떠나버렸다. 사람이 떠나면 활기가 사라진다. 경리단길이나 가로수길처럼 지명이 대명사로 통하는 곳마저 상승과 하락이 존재한다. 한 번 떠난 사람들은 여간해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죽은 상권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실패하면서 상인들은 떠난다. 임대 안내문이 붙은 상가가 늘어선 일번가는 적막했다. 사람들의 온기가 사라진 삭막한 풍경은 우울해 보였다.


30년 넘는 시간을 안양에서 살았다. 사람들은 떠났지만 여전히 기억은 그대로 남아있다. 시험기간이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늘 일번가를 찾았다. 매번 일번가 신한은행 앞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는 감자탕을 먹고 노래방이나 피시방에 갔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한 잔 하러 자리를 옮겼다. 어디를 가든 시끌시끌했고 웃음소리와 활기가 넘쳤다. 초저녁부터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고 주말 저녁의 술집은 비는 자리가 없었다. 20대 시절 친구들과 나의 아지트는 유실물보관소였다. 골목 깊은 곳에 위치한 술집이라 주말 밤에도 앉을자리가 많았다. 3500원짜리 레드록 맥주를 마시면서 새벽까지 즐겁게 놀았다.


눈에 익은 거리를 걷다 보니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그리움의 이름표를 달고 있는 기억은 아련하고 따뜻하다. 30대가 되면서 안양일번가를 찾는 발길은 뜸해졌다. 그래도 친구들끼리 만나면 가끔씩 지나간 날들을 함께 이야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추억과 현실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술집들이 몰려있었던 시끌벅적한 골목은 철거 공사가 한창이었다. 먼지가 잔뜩 쌓여있는 주방 용품들이 포터 트럭 위에 가득 실려있었다. 터줏대감 역할을 했던 핸드폰대리점도 대부분 사라졌다. 이제 변하지 않는 것은 추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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