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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15. 2024

다시 밴드의 시대

 QWER이 <내 이름 맑음>으로 차트 1위를 했다. 서브컬처와 밴드라는 조합으로 지상파 음방 1위를 할 줄은 몰랐다. QWER의 노래들은 나카가와 쇼코의 대표곡인 <하늘색데이즈> 같은 경쾌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듣고 있으면 밴드 음악이 사랑받았던 2000년대가 떠오른다. 트렌드는 계절과 같아서 돌고 돈다. 2010년대 중반 데뷔했던 데이식스, 엔플라잉을 끝으로 보이밴드 스타일의 한동안 만날 수 없었다. 힙합과 아이돌로 양분된 KPOP 시장에서 변방으로 밀려나있던 밴드음악이 다시 주목받게 된 시점은 2022년이다. 물론 전조는 그보다 빨랐다.


 2016년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이 한일양국에서 크게 흥행했다. 음악을 담당한 일본밴드 REDWIMPS의 노래도 인기를 끌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일본밴드음악에 대한 관심도가 전보다 가파르게 증가했다. 힙합과 아이돌 장르가 주류였지만 서브컬쳐계의 수요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요아소비의 <밤을 달리다>가 유튜브에서 주목받으면서 1,20대를 중심으로 밴드음악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유튜브는 서브컬처와 메인스트림이 만나는 점이지대다. 일본 애니메이션 오프닝 스타일의 경쾌한 음악들이 유튜브와 SNS를 휩쓸었다.


 쇼츠와 릴스 그리고 틱톡을 통해서 시티팝이 트렌드의 중심으로 올라선 것처럼 밴드음악도 입지를 제대로 구축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을 넘어가면서 2000년대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Y2K와 밀레니얼 무드는 뉴트로와 만나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스타일의 중심에 서있던 패션과 음악에 대한 수요는 크게 증가했다. 흘러간 2000년대가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당시는 감성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2010년대의 SNS가 만들어내는 갬성이 아니라 단어 그대로 감성이 흘러넘치던 시절이었다. 뒤틀림이나 구김살이 없는 시대였다. 싸이월드는 감성을 자극하는 사진과 글이 가득했다.


 소몰이류의 양산형 R&B는 눈물샘을 자극했고 경쾌함과 상쾌함을 지닌 밴드음악들이 사랑받았다. 그래서 2020년대를 사는 사람들이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청량한 기타 리프와 밝은 내용의 가사가 돋보이는 노래는 우울한 팬데믹이 만든 어두운 그늘을 씻어냈다. 그 시절이 반가운 이들은 추억의 힘에 기댈 수 있었고 처음 접하는 이들은 신선함에 반했다. 그러다 2022년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 부활의 신호탄을 완벽하게 쏘아 올렸다. 2000년대 중반의 감성을 담은 스타일이라 자연스럽게 예전 추억들이 떠올랐다. 친구들은 학창 시절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기억 속의 밴드 음악은 2020년대에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세대를 잇는 가교가 됐다. 음악의 가장 큰 힘은 연결이다.


 상쾌함과 찬란함을 품고 있었던 2000년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대표곡은 L'Arc-en-Ciel의 <Driver`s High>다. 라르크엔시엘인지 앙시엘인지 사람마다 제멋대로 불렀지만 다들 노래는 좋아했다. GTO의 오프닝곡이었던 이 노래의 인기는 상당했다. 도입부를 들으면 머릿속에서 고등학생 시절이 자연스럽게 재생된다. <dive to blue>나 <honey> 같은 곡도 정말 좋아했지만 <Driver`s High>는 청소년기를 상징하는 노래로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았다. 그래서 밝은 분위기의 밴드음악을 듣자마자 반가웠다.


 돌고 돌아 다시 밴드의 시대가 왔다. 밝은 분위기의 팝과 얼터너티브록이 어레인지 된 스타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 하반기가 되면서 이전보다 밝은 분위기의 노래들이 더 많아졌다. 갈등과 혐오가 일상이 된 시대가 만드는 피곤함에 대한 반작용인 것 같다. 팬데믹 내내 다들 지쳐있었고 자극적인 도파민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래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가사와 경쾌하고 신선한 사운드를 선호하게 된 것 아닐까? 분기마다 쏟아져 나오는 스웩과 걸크러쉬를 내세운 스타일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쯤 돌아온 락이 여러모로 반갑다.


 작년에 나온 LUCY의 <아니 근데 진짜>는 REDWIMPS가 생각나는 청량한 느낌이 드는 곡이었다.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삽입곡인 엔플라잉의 <Star>도 희망찬 가사가 마음에 들었다. 음악은 늘 시대와 사람들의 소망을 반영한다. 갑갑한 삶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햇살 같은 노래들이 좋다. 생활은 팍팍하지만 희망을 이야기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위로를 얻는다. 잘 만든 음악은 외면당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찬란하게 빛날 때가 온다. 너드커넥션의 <파블로>를 오랜만에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카페거리를 걷는데 데이식스의 <예뻤어>와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흘러나왔다. 여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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