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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21. 2024

고양이는 행복을 미루지 않아

오늘의 행복을 제대로 누리자

 추운 계절이 돌아왔다. 동네 고양이들은 월동준비를 마쳤는지 털이 쪘다. 토실토실해 보이는 몸이 귀엽다. 명학공원에는 고양이들이 산다. 멤버는 주기적으로 바뀐다. 사람들을 봐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먹이를 주고 잘 챙겨주는 주민들의 영향인 것 같다. 길 건너 만안구청에는 작은 고양이 급식소가 있다. 동네 미용실은 7마리의 고양이를 돌보는 중이다. 주차장 뒤편에 일렬로 놓인 밥그릇과 물그릇이 인상적이다. 볕 좋은 날만되면 안양8동에 사는 길고양이들은 일광욕을 즐긴다. 지붕 경사면에 누워서 눈을 감고 조는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고양이는 행복을 미루지 않는다. 오늘 하루치 행복을 있는 그대로 즐긴다. 맑은 날은 햇살을 즐기고 더운 날은 그늘을 찾아서 쉰다.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모습은 즐거움을 미루지 않는 태도에서 나온다. 친구는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른다. 습식사료를 정말 좋아하는데 먹다가 콧노래를 자주 부른다. 맛있어서 행복한 기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고양이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 솔직한 동물이다. 그래서 행복을 느끼면 곧바로 티가 난다. 사람을 보며 내는 소리나 꼬리동작만 봐도 기분을 바로 알 수 있다.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점이 고양이의 가장 큰 매력이다. 좋으면 나타내고 싫으면 드러낸다. 바로바로 표출하므로 감정을 속에 담아두지 않는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솔직해서 뒤끝이 없는 성격이다. 솔직한 사람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행복은 충분히 즐기고 슬픔이나 고통도 질질 끌지 않고 빠르게 풀어버린다. 감정이 완전히 연소되면 뒤탈이 없다. 밝은 불꽃이 환하게 타오르면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이 늘 가볍다.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감정을 담아둔다. 불이 아니라 장작을 닮았다. 불을 피우면 매캐한 연기를 방출하고 타고난 자리에 새까만 숯과 탁한 재가 남는다.


 소화되지 않은 감정은 가슴을 무겁게 만드는 짐이다. 마음은 적재중량의 한계가 있다. 멋대로 가득 쌓아두거나 생각 없이 방치하고 놔두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다. 그때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무력감이나 우울감이 찾아온다. 좋은 일이 생겨도 시큰둥하고 안 좋은 일을 겪으면 꽤 오랫동안 힘들어한다. 지난 일에 발목을 잡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도 있다. 소화되지 않은 감정을 끌어올려서 수시로 감정의 돼 새김질을 하므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내면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일상의 균형도 같이 망가진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가감 없이 표현하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너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이지만 눈총을 받기도 한다. 눈치 보고 분위기를 살펴가며 말해야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말을 듣는 한국 문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솔직함을 무례하다고 보는 시각은 여전하다. 물론 우리는 고양이가 아니다. 로마법이 싫어도 발붙이고 살려면 따라가야 한다. 감정을 드러낼 수 없다면 좋은 감정을 충분히 느끼는 데 집중하면 된다. 방법은 간단하다. 일상의 작은 행복을 발견하고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 작은 행복은 없다. 모든 행복은 똑같이 소중하다. 미소 짓게 만드는 일상의 기쁨은 전부 행복이다. 사람의 뇌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웃으면 무조건 행복으로 간주한다. 자주 웃는 사람은 수시로 행복을 체감한다. 작은 기쁨에 곧바로 반응하는 습관이 몸에 밴다. 의미는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관점이 결정한다.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은 모두 내가 정한다. 행복을 미루지 않는 태도는 웃음을 부른다. 웃으면 복이 온다.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만드는 행복이 찾아온다.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작은 기쁨을 더 많이 발견할 줄 안다.


 인생은 반복이다. 똑같은 일상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우리는 매일 작은 변화를 경험한다. 그 속에서 작은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 행복이다. 누구나 지금 바로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 일상이 쌓여서 행복한 삶을 만든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느끼는 도파민은 금세 사라진다. 하지만 과정을 즐기면 달리는 동안 엔도르핀이 쏟아진다. 행복은 현재진행형이다. 과거형이나 미래형은 없다. 과거에 집착하면 비교와 아쉬움을 달고 산다. 오지 않은 미래만 보고 살면 현실이 초라해 보인다. 우리는 현실만 산다. ‘언젠가’ 나 ‘나중에’는 없다. 행복을 미루지 말고 지금 행복해야 진짜 행복한 것이다


 동전을 주우려고 모래사장을 파헤치다 보면 푸른 바다가 만드는 멋진 풍경을 놓치게 된다. 미래의 행복을 찾아다니느라 일상에 깃든 하루치 행복을 지나칠 필요는 없다. 행복은 여기저기에 놓여있다. 별생각 없이 지나치느라 모르고 있을 뿐이다. 놓칠 뻔했는데 운 좋게 버스를 탔다. 오늘 아침 마신 커피는 평소보다 더 맛있었다. 가을하늘이 눈부시게 파란색이라 참 예뻤다. 길을 걷는데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기분이 좋았다. 평범한 하루가 특별해져서 행복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네 고양이를 봤다. 볕이 잘 드는 자리에 누워 자는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고양이에게 세상은 전부 다 자기 집이다. 어디든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은 안방이고 비를 막아주는 그늘은 지붕이다. 가진 것을 비교하면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솔직한 동물이다. 복잡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욕심부리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먼 곳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그래서 늘 자유롭다. 따뜻한 햇살에 만족하는 고양이처럼 좀 더 가볍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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