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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든 May 29. 2023

놀이동산을 만끽하는 법

모두 다 완벽할 수는 없다

 얼마 전, 백만 년 만에 에버랜드에 갔다. 월요일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단체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로 거리며 기구며 놀이공원 곳곳이 가득 차 있었다. 


 입구부터 나를 맞이하던 동물 머리띠가 너무 귀여웠던 탓에 하나 구매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으나 참아보기로 했다. 조금만 가격이 저렴했다면 구매했을 텐데, 가격을 높게 책정해 준 에버랜드 측에 감사함을 느낀다.


 오랜만이었다.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걷고, 보고, 즐기는 경험, 그리고 사람들 틈에서 충실하게 즐거움을 좇고 있다는 느낌. 




 회사 인근 종로 거리도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그러나 직장인이 대부분인 그들의 표정에서는 좀처럼 다채로운 색깔을 읽기 어렵다. 기대감, 즐거움, 만족감 같은 것들과는 동떨어진 모노톤의 표정과 걸음.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비칠까? 아마 그럴 것이다.


 또는 사람들이 무채색이 아니라 내가 나의 기분을 내 시선에 투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 맞는 친구와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가는 즐거운 사람도 분명 여럿 있었을 텐데, 내가 쉽사리 그 밝음을 찾지 못한 것은 오히려 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올해 목표 중 하나가 긍정의 아이콘으로 바뀌는 거였는데, 지금 기준으로는 낙제점이다. 분발해야지.




 다시 에버랜드 얘기로 돌아가서, 어느덧 밤이 되었다. 에버랜드 퍼레이드가 무척 볼만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내심 기대하며 명당자리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쿠릉쿠릉 하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천둥이 치더니 웅성웅성하며 사람들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날의 에버랜드 하늘


 갑자기 억수로 비가 내려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다가, 다행히 실내에서 탈 수 있는 놀이기구 몇 곳에 대기줄이 없어서 그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실내 4D 영화와 유령탐험 체험을 하고 나서 밖으로 나오고 나니, 다행히 비는 그쳐 있었다.


 아침에 그렇게 많던 학생들이 비 때문인지 일정 때문인지 거의 빠져나가고, 가족, 연인단위의 관광객들만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나 또한 퍼레이드를 구경 못한 아쉬움과 거의 2만보가 찍힌 걸음수만큼의 피곤함을 안고 다음 행선지인 회전목마로 향하는 길이었다.


 초등학교 5~6학년쯤 되었을까? 아이들 네 명이 곁을 지나갔다. 퍼레이드를 못 봐서 아쉽다는 한 여자아이의 말을 들린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아이에게 공감 버튼을 눌러 주었다. 


 이윽고, 리를 짧게 자르고 씩씩해 보이는 남자아이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며 옆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슬며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뭐든 완벽할 수는 없는 거야."





 놀이동산을 나와 집에 가는 차 안, 계속 그 남자아이의 대사가 떠올랐다. 맞다. 뭐든 완벽할 수는 없다. 나는 시간을 꽉 채우고 놀이기구를 최대한 타는 것이야 말로 놀이동산을 최대한 즐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한 만끽일 뿐, 나 자신이 진정으로 즐거웠는가 하면 그것은 다른 문제일 것이다.


 그날 나는 회전목마를 타고, 오락실에 가서 끝까지 뽕(?)을 뽑았다. 아침부터 끝날 때까지 나의 모토는 '자유이용권을 샀으니 최적화된 경로를 따라 최대한 기구를 타자'는 것이었는데, 어느 정도 부합하는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10시를 꽉 채워 놀이동산을 나왔다. 


 돌이켜보면, 놀이기구 한 두 개쯤 덜 탔어도 괜찮았을 법했다. 그날 비가 오기 전까지 날씨는 맑았고 오랜만에 보는 동물들은 신기했다. 억지로 더하지 않아도 유쾌하고 즐거운 하루였다.





 무엇이든 완벽할 수는 없다. 누구나 완벽함을 지향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가 완벽하지 않다고 하여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 좋겠다.


 즐거움, 배움, 만족, 인간관계와 같이 정량적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이 100이 되기 위해 남들에게 보이는 조건에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화려한 장소, 명품 옷과 가방, 인스타그래머블한 멋진 사진, 누가 봐도 비싸고 맛난 음식들. 그런 조건에 100점을 받는다 한들 그게 무엇이 의미가 있는가. 아니, 어차피 다른 누군가는 나보다 더 멋진 곳에서 비싼 음식을 먹을 텐데 애초에 100점이 있는가.


 지금 순간 즐거울 있기 위해, 무채색의 마음을 유채색으로 그리는 방법에 집중하면 좋겠다. 사무적인 말투에 따뜻함을 숟갈 태우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세상 사는 이야기. 그리고 진정으로 사람과 사람의 힘듦과 기쁨을 공유하고 교류하는 경험. 그것은 간혹, 아니 자주 완벽하지는 못한 평범한 일상의 단면일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놀이동산을 만끽하는 방법이라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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