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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민 Nov 29. 2020

추상화 앞에서 더이상 심란하지 않아도 돼


추상화는 난해하다. 추상화 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이 다 그런 것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의도를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기 어려운데다 이 작품이 수 십억 많게는 수 백억, 수 천억원에 거래된다는 사실은 현대 미술 작품을 마주하는 나를 심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좌), '달 두 개'(우)

그래서 세간에 알려진 작품 가격 때문에 작품에 압도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작품 그 자체가 나에게 주는 에너지와 느낌이 아닌 외부에서 부여한 가치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전시회장에서 추상화를 만날 때 나의 주관적인 느낌보다는 다른 사람의 해석과 부여한 가치에 우선시되곤 했다. 


뮤지엄 산에 전시된 김환기 화백의 작품 3점


그런데 그저께 뮤지엄 산에 전시된 김환기의 작품을 바라보면서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드넓고 탁트인 벽에 작품이 하나씩 걸려있었는데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 좋았다. 


뮤지엄 산이 위치한 원주라는 특성상 서울의 미술관에 비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조용하게 나 혼자 작품들과 마주할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김환기 작품에 둘러쌓여 멍 때리면서 그 공간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 벽면에 걸린 그림을 고민하면서 그려내고 있는 김환기 화백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 앞에 한참 서있으면서 심지어 눈물까지 흘린 사람이 있었다고 했는데... 


난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김환기 화백이 구현한 넒은 우주와 환상을 잠시나마 상상했던 것 같다.


작품은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보다 내가 느끼고 해석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날 난 해석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단 그 공간의 공기를 느끼는 것이 집중했던 것 같다. 



전시회장에서
무조건 작품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까? 

작품보다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넓은 공간에 나 홀로 있을 때 그 비싼 작품이 나를 압도한다기보다는 내가 그 공간을 소유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공기, 그 순간은 오로지 나의 것이었고 그 작품을 바라보는 존재는 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진이 좋았다. 

이 순간만큼은 김환기가 아닌 엄마와 아빠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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