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만큼 롱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산업은 없다는....
일부 사람들은 화이자, 노바티스와 같은 대형 제약회사들이 수많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한 채 신약 개발을 소홀히한채 수익성만 추구한다고 비판한다.
특히 개 구충제의 일종인 '펜벤다졸'을 먹고 암을 치료했다는 사연과 폐암 투병 중인 개그맨 김철민씨가 실제로 펜벤다졸을 복용하는 이슈로 펜벤다졸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것도 신약 개발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신약을 딱딱 출시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신약개발을 진행하는 제약회사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어려움을 더더욱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약회사는 똑똑한 신약 하나를 특허 출원한 후 20년간 시장독점권을 가지면서 연간 수 조원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엄격한 판매 전 허가 절차 때문에 신약 하나를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10~15년 간의 개발기간과 수천억원 이상의 개발비용이 투입된다. FDA 승인을 받는 신약 하나 만드는 데 평균 14년 간 15억 달러의 투자 비용이 든다.
제약회사는 연구원들이 발굴한 5천~1만개의 신약 후보물질 중 단 5%에 연구 예산을 지원한다. 이 5%에 해당하는 후보물질 중에 2%만이 FDA 승인을 받는 신약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즉, 신약 개발하는 연구자가 신약 개발에 성공할 확률은 0.1%에 불과하다. 연구 전문성은 기본이고 경영진의 흔들림 없는 육성 의지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신약 개발은 물거품이 되기 일수다. 이와 같은 이유로 신약 개발이 너무 어렵다는 사실이 바이오 산업을 위기로 몰고가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FDA 승인 허가 낭보를 전해온 SK바이오팜도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실험에 이르러 뇌전증 치료 신약 ‘엑스코프리’를 출시하기까지 18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SK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비전과 뚝심이 없었더라면 ‘엑스코프리’의 탄생은 꿈꿀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화이자의 경영진은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의 저자인 도널드 커시에게 신약 개발 산업에서 손을 완전히 떼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다른 회사가 만든 약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해 신약 개발을 하는 대신 바이오시밀러와 같은 복제의약품 사업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신약 개발은 화이자 같은 신약 개발 역량이 뛰어나고, 자금이 풍부한 제약회사도 다른 곳에 떠넘겨버리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프로젝트이다. 신약 개발이 너무 어렵다는 사실은 바이오 산업을 위기로 몰아넣기까지 했다.
달 착륙 계획과 맨해튼 계획(미국의 원자폭탄제조계획)은 잘 정립된 과학 이론, 공학 원리, 수학 공식을 이용할 수 있었다. 물론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연구자들의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연구자들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명확한 과학적인 로드맵과 수학적 나침반이 갖춰져있었다.
사람을 달로 보낸 공학자는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와 달에 도착하기 위해선 연료가 얼마나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과학자는 E=mc2에 따라 물질이 한 도시를 날려버릴 정도의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반면, 신약 개발의 핵심 과제는 수많은 후보 물질을 시행착오를 거쳐 걸러내는 일인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방정식이나 공식으로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학자는 보를 놓기 전에 다리가 그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지 알고 있지만, 신약 사냥꾼은 사람이 실제로 그 물질을 먹어보기 전에는 특정 약물이 어떤 효과를 낼지 전혀 모른다. 이것이 신약 개발이 어려운 이유이다.
의약품의 수익성 또한 제약회사가 신약 개발을 하기 전에 중요하게 고려하는 의사결정 요인이다. 1980년대에 대형 제약회사들이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포기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환자들이 치명적인 세균에 감염될 위험이 여전히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항생제의 수익성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 제약회사는 고혈압약, 항콜레스테롤제와 같은 환자들이 계속해서 복용해야 하는 약을 선호한다. 고혈압, 당뇨병처럼 만성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매일 약을 먹어야 하고 이는 제약회사의 지속적이면서 막대한 매출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항생제는 환자가 나으면 다시 먹을 필요가 없다. 고작 1주일 먹으면 끝이다. 그래서 항생제는 수익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항생제는 1회성 치료에 사용한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경제성은 최악이다. 항생제를 쓰면 쓸수록 내성만 더 길러준다는 사실을 깨닫자 의사들은 새 약을 비축용으로 쌓아두기 시작했다. 항생제는 내성 세균에 지독하게 감염된 환자를 치료할 때만 처방했다. 이것이 새로운 항생제의 효과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처방은 제약회사가 어렵게 개발해낸 새로운 항생제 매출이 더욱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 처방은 하지 않고 쌓아만 두고 있을 테니 말이다.
1950년에는 대부분의 제약회사에 항생제 연구진이 있었다. 하지만 1990년이 되었을 때는 미국의 대형 제약회사 중 상당수가 항생제 연구를 소홀히 하거나 아예 포기했다. 1999년 로슈는 항생제 개발에서 철수했다. 2002년 이 되기 전에 브리스틀 마이어스 스큅 컴퍼니, 애보트 연구소, 엘리 릴 리 앤 컴퍼니, 아벤티스, 와어어스는 모두 항생제 개발 계획을 종료하거나 큰 폭으로 축소했다. 최후의 보루 중 하나였던 화이자도 2011년에 주요 항생제 연구 시설을 폐쇄했다. 오늘날 18개의 대형 제약회사 중에서 15곳이 항생제 시장을 완전히 포기했다.
이처럼 신약 개발의 어려움과 막대한 투자 비용, 불확실한 수익성은 많은 제약회사들이 신약 개발을 주저하게 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우리나라의 셀트리온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바이오 제약사들이 손발을 걷어붙인 것은 경제성만을 고려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다.
https://bit.ly/인류의_운명을_바꾼_약의_탐험가들
*해당 포스팅은 세종서적으로부터 소정의 원고비를 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