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에서 블랙핑크 제니가 이광수를 심쿵하게 만든 삼행시 멘트가 있었다.
광: 광수 오빠 저랑
수: 수란잔(=술 한 잔) 어때?
'술 한 잔 할래요?'라는 매력적인 여성의 멘트는 광수 뿐만 아니라 뭇 남자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버린다.
그게 낯선 여행지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벌어진다면 더더욱…
7년 전 파리에서 보낸 만우절이 그랬다. 파리에서의 바쁜 첫 날을 보내고 호스텔에서 쉬고 있었다. 호스텔에서 조식을 먹으면서 일정을 조인하게 된 한국인 여행객과 오르셰 미술관을 둘러보고, 샹젤리제 거리의 어느 뒷골목에서 점심을 먹고, 쁘렝땅(Printemps) 백화점의 5층 루프탑에서 파리 전경을 둘러보고, 지하철역 표지판의 알파벳이 뒤바뀌면서 길을 헤매기도 하고...
파리의 골목 구석구석을 밟으면서 정각의 에펠탑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서야 숙소에 돌아왔기에 몸이 무거워서 8인실 도미토리의 어느 이층 침대 한 칸에 누워 숨만 쉬고 있었던 것이다.
밤 11시쯤이었다. 누워서 잠이 들려는 그때 내가 누워있는 이층 침대의 일층에 새로운 게스트가 들어왔다. 굉장히 매력적인 외모의 동양인 여자였다.
"Hi, nice to meet you. Where are you from? Are you… Chinese?"
"No, I'm from South Korea."
"아 죄송해요… 저도 한국에서 왔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혹시 이름이 뭐에요? 제 이름은 김정민이에요."
"네 괜찮아요. 저도 반가워요. 제 이름은 조은이에요. 외자에요."
첫 만남부터 큰 결례를 저질렀다.
"제가 오늘 비행기에서 하루종일 자느라 지금 잠이 너무 안 오는데… 혹시 밖에 나가서 맥주 한 잔 하실래요?"
'맥주 한 잔 하실래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나는 바지를 갈아입고 있었고, 이미 그녀와 문 밖을 나서고 있었다.
그날 내가 머물렀던 'Three Ducks Hostel'은 과거의 파리의 번화가에 위치했고 저녁에는 펍으로 운영되는 호스텔의 1층 라운지 뿐만 아니라 그 근처 곳곳에 와인과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이 있었다.
호스텔 1층 라운지보다는 좀 더 새롭고 저렴한 펍에서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좀 더 좋은 펍을 찾아보자며 더 걷게 되었다.
하지만 호스텔에서 가장 가까운 펍보다 더 나은 곳을 찾지 못했고 불꺼진 거리만 걷게 되었다.
그런데 고개를 돌린 순간!
에펠탑이 내 눈 앞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걷다가 도착한 곳이 에펠탑 바로 앞에 있는 샹드마르스 공원이었던 것이다.
나는 말문이 막힌채 불켜진 에펠탑을 쳐다보고 있었고, 내 옆에 서있던 그녀는 생전 처음보는 에펠탑 때문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에펠탑 바로 아래까지 걷기 시작했다. 거짓말 같은 시간이었다.
곧 자정이 되었고, 에펠탑은 정각에 맞춰 또다시 반짝이고 있었다. 반짝이는 에펠탑 아래 한 남성이 여자친구에게 무릎을 꿇고 프로포즈를 하고 있었고, 우리를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이 그들의 행복을 빌며 박수와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에펠탑 아래에 있다가 샤오이궁을 거쳐 호스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 시간까지 문을 열고 있는 펍에 들어가 스텔라 맥주를 마시며 서로의 여행 계획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내일 그녀와 꼭 파리 시내를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미 한국을 떠나기 전 유랑 카페에서 동행을 구했다는 그녀를 끈질기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카드키를 놓고 밖을 나섰던 그녀에게 내일 나랑 같이 다니지 않으면 오늘밤 밖에서 자게 될거라고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했고, 마침내 다음날 아침 그녀는 나와 함께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하게 되었다.
에펠탑에서의 모습과 펍에서 맥주를 마셨을 때 느꼈던 그 직감대로 나는 매력이 넘치는 그녀와 마레 지구 일대를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7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남겼다.
술 한 잔이 이어준 시간이랄까…
스텔라 한 잔이 이어준 파리의 낭만적인 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