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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목동을 찾았다. 오목교역 5번출구 스타벅스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내가 생각했던 건물에는 스타벅스 대신 커피빈이 들어서 있었다. 언제 바뀌었담. 눈보라가 매서웠던 2011년 겨울에 저 스타벅스에서 먹었던 페퍼민트 음료는 참 따뜻했는데. 건물 1층에는 왕돈까스&왕냉면이 들어와있었다. 2009년에는 상하이짬뽕이란 캐주얼 중국음식점이 있었는데.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기사. 이 건물 뒤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는 말야, 원래는 철제 가림막이 가려주던 갈대밭이었지. 어느 여름날, 한 후배를 택시에 태워보낼 때도 그 아파트 정문 앞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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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매일같이 걸어다니던 목동 거리는 참 많이도 바뀌었다. 플라타너스 밑을 우두커니 지나가다가 잠깐 멈췄다. 길 건너편에 내가 수천시간을 족히 보냈을 건물이 눈에 들어와서. 6학년때 처음으로 등록한 영어학원, 중3 시절 새벽 3시까지 숨죽여 자습을 했던 특목입시학원 별관, 와신상담을 꾀했던 삼반수 시절의 독학재수학원까지. 다 같은 건물에 있었지만 지금은 깨끗이 말소됐다. 선명한 건 내 기억뿐. 그냥 특별할 건 없는 흐름이다 사실. 그런데 난 왜 등기부등본 상에만 남게된 과거의 시간들을 못내 아쉬워하는가.
과학고를 조기졸업하고 대학에 먼저 들어갔던 친구가 호기롭게 샀던 점심이 기억난다. 크라제버거였다. 그 자리는 돌고 돌아 ‘브루클린 버거조인트’가 됐더라. 놀랄만한 변화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래 그만한 시간이 흘렀다 싶기도 하다. 그 친구의 결혼식에 내가 사회까지 봤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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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목동을 같이 걸었던 그 후배가 얼마전에 그러더라고. 내가 쓰는 글은 다 과거에 매여 있다고. 부인하긴 어려웠다. 내가 항상 예전에 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살긴 하니까. 날카로운 지적에 가슴도 찌릿했고. 물론 나직한 추억 회상일 때도 있지만, 요즘은 내가 골랐어야 할 다른 선택지에 대한 후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거리를 매일같이 오갈 때에 대한 건 아니다. 시간여행물을 써야할 정도로, 그렇게 오래된 일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거든.
그런데 말아. 과연 나는 과거의 기억을 헤집지 않고도 글을 쓸 수 있긴 한 건가. 글쎄, 가능의 영역인지 의지의 영역인지도 잘 모르겠거든. 매몰과 침전의 어드메에서 빠져나오려 부던히도 애쓰는 인간이라고 나를 생각해왔는데. 그런데, 지금은 그 어드메에서 버티지 못하고 자유낙하를 하고 있달까. 걸어도 걸어도 답이 보이지 않더라고. 그렇게 2023년을 맞이했다. 미래는 꿈꾸지 않더라도, 현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