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밴드 유랑기,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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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라는 이름은 예전처럼 마이너하지 않다. 심지어 해외 인디 뮤지션들도 그렇다. 애플뮤직과 스포티파이가 대중화되면서 인디밴드를 접하는 것 자체는 이전보다 확실히 쉬워졌다. 유튜브의 KEXP나 Audiotree에는 반짝이는 원석들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이들을 실제로 볼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인디밴드 공연 하나 보자고 포틀랜드까지 갈 순 없지 않는가? 스타디움에서 하는 대형 콘서트가 아니라 클럽에서 1시간 남짓 짤막하게 여는 공연이라면 더 말도 안 된다. 다른 목적으로 발걸음을 하게 된 타지에서 ‘우연히’ 맞아떨어지길 기다리는 게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다. Pitchfork의 은혜를 입어 단독 공연이 가능한 급의 메이저로 올라가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거의 가망이 없는 인디언기우제고. 그렇게 버킷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지만 평생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뮤지션들만 점점 쌓이고 있는데..
혼자 다니는 휴가가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이번에도 다니는 도시마다 어떤 공연들이 열리는지를 미리 살펴봤다. 그 덕에 Girl in Red의 부흥회에 갈 수 있었는데, 어차피 이 팀은 한국에 또 올 것 같거든. 그런 의미에서 strand of oaks 의 공연을 암스테르담에서 보게 된 건 굉장한 행운이었다. 참나무들의 바닷가? 바닷가의 참나무도 아니고, 참 작명 한번 걸작일세. 이름부터 야성미가 철철 넘치는 이 팀을 서울에서 볼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근처에 있던 펍 BITTERZOET은 그야말로 근본 넘치는 공간이었다. 미리 예매한 내역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설레던지. 내부는 사실 그리 크지 않았다. 대학교때 밴드 동아리로 공연하던 홍대나 신촌의 클럽보다도 작은 느낌이었으니까.
그런데, 공연 시간이 다가오니까 그런 공간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이를 지긋이 먹은 노부부도 있었고, 두꺼운 안경에 며칠 감지않은 떡진 머리로 어슬렁대는 청년도 있었다. 티니핑을 볼거같은 나이의 어린 딸에게 헤드셋을 씌운 채로 온 젊은 아빠는 신나보였다. 다음날 출근을 앞둔 일요일 밤의 클럽은, 그렇게 빼곡하게 메워졌다. 흥분도가 올라갔다.
이윽고 막을 올린 공연. 암스테르담에 또 와서 반갑다는 프런트맨 티모시 쇼월터의 멘트와 함께 묵직한 사운드가 깔렸다. 쇼월터는 어쿠스틱 기타를 쪼개지도록 갈길 것만 같은 생김새와 달리, 기타 이펙터를 내내 밟아가며 새로운 사운드를 선보였다. 밴드 멤버들이 서로 눈짓으로 호흡을 맞추는 걸 , 코앞에서 볼 수 있었다.
1시간이 조금 넘는 공연 시간동안, Strand of oaks는 잡담도 거의 섞지 않게 오롯이 공연에 집중했다. 클럽 공연은 으레 어수선하기 마련이지만, 관객들의 웅성거림조차 들리지 않았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격정적으로 터져나오는 박수만이 있었을 뿐.
여행 마지막 날 저녁은 항상 아쉬움이 남고 무얼 해야할지 고민이 되지만, 이번에는 확실한 선택지가 있어서 좋았다. 15분짜리 대곡을 언제 또 내가 보겠는가. 자그마한 클럽을 빼곡하게 채운 현지인들과 함께한, 짜릿했던 일요일 밤. 내게 암스테르담은 이 순간의 기억으로 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