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를 한다고 계엄을 때려?

노동조합이 군사훈련을 한다더니...

by etinc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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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계엄 선포로부터 9일이 지난 시점, 대통령은 또 한번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엄청난 발언을 쏟아냈다.


“지금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습니다.”


보도국 곳곳에서 탄식 소리가 나왔다. 그야말로 미친 소리였다. 어딜 뜯어봐도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는 단어로 구성된 문장이었다.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는 게 과연 누구지?


”대선 결과를 승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선 이후부터 현재까지 무려 178회에 달하는 대통령 퇴진,탄핵 집회가 임기 초부터 열렸습니다.”



부정선거라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에 빠져들어 내란을 획책한 자가 ‘불복’을 말한다. 분노를 넘어선 모멸과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국가 전복을 오랜 시간 계획해놓고는 ‘퇴진 탄핵 집회’ 때문이라고 남탓을 한다. 야유가 나올 게 분명하니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러 국회에 올 수 없다는, 그 좁아터진 속을 가진 자다웠다.


집회는 헌법에 명시된 우리 국민의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도 집회가 많이 열려서 군대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는 대통령을 보면서 임기 초기, 내가 썼던 기사가 하나 생각났다. 모든 기사가 사회적인 파급을 불러올 수는 없고, 누가 무얼 썼는지도 곧 잊힌다. 설령 내가 ‘단독’을 달고 처음 보도한 기사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나중에 기사를 설명할 때 ‘아, 그게 너가 썼던 거였어?’라는 소리를 들으면 다행일 뿐.


그래도 기자들은 본인 이름으로 나간 기사들에 애착을 가진다. 유난히 마음에 걸리고 눈에 계속 밟히는 기사도 가끔은 있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기사랄까. 정치팀으로 부서를 옮기고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처음 냈던 기사가 내게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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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입수했던 문건의 제목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 및 시위 입체분석'. 작성 주체는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산하 시민소통비서관실이었다. 해당 보고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용산 일대에서 열린 11건의 시위 현장을 일일이 다녀와서 기록했다.


그리고는 '노동조합과 권력비판 시민단체의 결합을 차단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광우병과 탄핵 촛불 등 대규모 동원 시위가 가능하다는 게 이유였다. 실제로 한남동 관저 앞에 윤석열의 체포와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이 자리잡은 이 시점에서 보면, 꽤 예측력이 좋은 분석이었을 수도 있겠다. 동원된 시위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의 목소리라는 점은 좀 다르지만 말이다.



대통령실 내부 문건 입수는 난이도가 매우 높고, 희귀한 사례다. 특히 정권이 출범한지 3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내부 문건을 얻었다는 업적(?)만으로 보도를 결정지을 순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대중에 공개됐을 경우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해를 미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냥 묻고 넘기기엔 문건의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결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표현 하나하나가 충격적이었다. '권리요구 노동조합'으로 묶은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을 두고 '최대 10만 명 예상. 효과적인 설계 및 군사훈련 진행 중'이라고 분석했다. 노동조합의 시위가 군사행동이라고?


돌이켜보건대 이 정부는 갓 출범했을 때부터 노조에 굉장히 적대적인 인식을 보였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타결을 앞두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 특공대' 투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도 비슷한 시점에 나왔다. (지금 관저에 안전하게 틀어박혀있는 VIP를 생각하면.. 참 할 말이 없다.)


그런 맥락을 고려했을 때 문건의 내용을 가벼이 넘길 순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대통령실에서 만들어진 문건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집회와 시위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기사에 명확하게 반영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대통령실 최고위 라인까지 보고가 올라간 문서였다는 전언도 다짐을 굳히게 하는 요인이었다.



대통령실의 대응은 ‘실망스러웠다’라는 말로 갈음하기 싫을 정도였다. 문건 작성 경위를 묻자 시민소통비서관은 "시민사회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전달받아 정리했지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파기했고, 윗선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어떤 게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입수 경위에 대해서 집요하게 캐물었다. 보도가 나간 이후에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문제적 서술에 대한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실 내부에서 강도 높은 감찰이 이뤄졌다. 대통령실 직원들의 휴대전화에 대한 대대적인 포렌식 작업이 있었고, 문건을 최초 유출한 행정요원을 포함해 80여 명이 옷을 벗었다. 시민소통비서관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면직처리가 된 비서관급 인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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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큰 파급을 냈던 최초 보도 1달 후 나는 문건 입수 경위와 보도 이유를 설명하는 ‘취재후기’를 썼다. 그리고 이 사건을 내 머릿속에서 접어뒀다. 성과도 있었던 데다가, 이만하면 취재는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윤 대통령이 시대착오적인 판단과 발언을 할 때마다 종종 이 보도를 떠올리긴 했다. 고공농성을 벌이던 노동자가 경찰서장의 중단 지시를 무시한 현장 경찰관들의 쇠파이프 폭행으로 머리가 터졌을 때라든가. 국회의원이 입틀막을 당하고, 카이스트 졸업생은 입틀막 상태로 끌려나갔을 때라든가. 그래도 설마 문건의 내용이 사실을 담지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은 못했다.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시 썼던 취재 후기의 마지막 문단을 난 이렇게 마무리했다.


‘누군가는 문건 작성과 유출이, 단순한 일탈에 가까운 '사고'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집회·시위를 바라보는 부정적 인식은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의 생각이 근본부터 바뀌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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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하기 짝이 없는 인식이었다. 노동조합의 시위를 군사훈련으로 보는 조직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킨다는 것도 예상 가능한 범주에 넣었어야 했다. 몇몇 민주당 정치인들의 ‘계엄모의설’을 저열한 음모론이라고 생각했다.


틀렸다. ‘OO할 수도 있으니 OO해야한다’라는 기자스러운 문장을 적고 끝낼 게 아니라, 더 의심을 해야 했다. 우리 모두가 그랬어야 했다. 그렇게 자책을 해야 이 뒤틀린 심사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더해질 것 같다. 어쩌면 2024년 12월을 기점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우리의 동료 시민들은, 우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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