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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오 Aug 21. 2016

나는 왜 군(軍)을 나왔을까

생존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었다.

지난 2015년 6월 30일. 육군 대위를 끝으로

군을 나왔습니다. 이 글은 제가 전역을 하면서

정리하고자 마음먹었던 내용입니다.  

요즘 같은 때, 왜 나왔냐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어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시진 대위님 덕분...;;)

제 개인 생각일 뿐이니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군대는

자유를 박탈당한 공간으로

인식된다.

상명하복이 규정화되어있는,

폐쇄적인 공간 속 자신이

매몰돼 가는 곳.


나는 군대가 괜찮았다.

끈끈한 무언가가 있는

우리들 사이가 좋았고,
가슴 뜨겁게 '조국'을

부르짖어도 되는

그 공간이 나쁘지 않았다.


복무하는 동안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중대장이 아닌 정훈장교로

한 발짝 뒤에서

그 친구들을 만났다.


흔히 정훈병과는

편한 병과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본다.

몸은 확실히 편하다.

그러나 마음이 힘들었다.

잘하려면

한 없이 어려운 병과였다.


내 병과 장교, 부사관이 모여있는 정훈공보부는
광고대행사, 홍보대행사, 디자인 부티크,
영상 프로덕션,프로모션 대행사, 강연 회사가
결합된 매우 군인스럽지 않은(?) 특성이 있다.
군대는 군대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정복에 부착된 정훈병과 마크와 대위 계급장. 구글에서 찾았는데, 친한 동기의 인스타그램이었다. 호용아 生有


지휘관이 아니었기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지만,

때로는 더 긴밀하게

얘기할 수도 있었다.

내가 중위였을 때,

사령부 이발병이

갑자기 다른 사단으로

전출 간다고 했었다.

성실하고 실력이 좋았던 병사다.

장교면 몰라도 병사가

사단을 옮기기는 쉽지 않아

이유를 물으니 아이가 태어나서  

사단을 이동한다고 했다.


몇몇 연예인들과는 다르게,

원래 장애판정을 받고

흔히 말하는 방위로

군역을 마쳐도 되는 친구는

 차별받기 싫다며

현역 입대를 고집해

우리 해안경계 부대로 왔다.


그러나,

힘듬과 불편함을 이기기 어려워

야간 근무 중

본인의 가슴에 총을 쐈다.

기적적으로 폐를 빗겨나가

그 친구는 살았다.

새벽 3시에 기상해

병실에 누워있는 그와

많은 대화를 했고,

그 친구 곁에서

전투화를 신은 체 쪽잠을 잤다.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용사'라며

낙인찍힌 친구들 중

괜찮은 친구인데 환경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떻게 이런 애가 있냐'며

포기하고 싶은 인간들도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어른이 되고 있었다.
부족하지만,
급박한 상황 속에서
냉정을 찾는 법도 배웠다.
안된다고 생각하던 일들도
막상 해보면
될 수도 있음을 배웠다.

솔직히 나는 군 내에서의

커리어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장기복무와 진급을

어느정도 바라볼 수 있었다고

감히 생각한다.

*물론 자만이다.

 관운이 있어야 되는

 군생활에서 알 수 없는 거다.

 더군다나,  견딜 수 없는 만큼

 힘든 생활도 아니었다.


육사에서, 이때까지만 해도 청운의 꿈이란게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임관 후 들어간
초등 군사 교육반에서
전역을 다짐했고,
학비지원에 따른
의무만 마치고 전역했다.
이미 늦었다고 느꼈지만 ,
지금이 가장 빠른 시기임을 알았다.


반 걸음 앞서는 것이

트렌디한 삶이라면

군대는 한 걸음 뒤에서

따라가는 조직이다.

워낙 큰 조직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나는 가능한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군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전혀 새롭지 않다.

'안전하게'사는 삶을

우선 시하는 조직문화.

내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고 말하지만,

군의 특수한 조직 구조가

 나에게는 위기로 다가왔다.


여기는 미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다.
조직에 기대는 삶을 사는 것.
앞으로의 세상에서
매우 위험한 일임을 느꼈다.
'어디에 다니는' 누구가 아닌
'가치 있는 나' 자신이 돼야
나의 인생을 살 수 있다.


필자는 그나마 별도의 업무를

담당하는 병과로

한 분야의 일을 계속하지만,

그 마저도 과연 전문가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

동의하기 어렵다.


전투병과* 특히 보병,

가장 높은 계급으로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은 병과

장교들은 대기업처럼

보직을 옮기면서

다른 업무들을 순환식으로

익히고 수행한다.

이들 장교들은 물론

지휘관을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여러 분야의 업무를

고루 익히는 것이 맞다.

 

또한, 여러 교육기회가 있고

파병 등의 값진 경험,

교수요원 등의 길도 있다.

나는 그 마저도 군사학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면

사회로 나와 전문가로

성장하는 길은 아니라고 본다.

* 또한, 장교 출신들은 알 것이다.

  이것들이 특정 출신에 상당히

  집중된 혜택이라는 것을..


그리고,

군이라는 거대한

테두리가 사라졌을 때

한 없이 약해진다.


그렇게 높아 보이던 분들도

군을 나와 자신이 해온 업(業)으로

사는 경우는 굉장히 소수였다.

전역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장사'밖에 없다는 자조가 있었다.

*장사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니깐 하는 소리다.


그래서, 군대 밖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다.

'나가면  더 힘들다.' '미생 봐라,

밖은 지옥이라고 하지 않냐'며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만

나열한다. 두려움은 커진다.

그런 얘기들에 공감한다.


그러나, 천년만년 할 수 없는 일.
여기 있는 모두는
어차피 자신의 업을
찾아야 될텐데,
군인연금만을 바라며
시간을 늦추는 것이
과연 우리의 최선일까?


전역한 군인에게

사회는 연금만을 준다.

대부분, 군에서 얻었던 지식은

그렇게 프로페셔널하게

쓰이지 않는다.

따라서 닥쳐올

그 날만을 미루고 사는 것이

최선으로 생각하기 쉬운 구조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수동적으로 변하는 나를 바꾸기 위해

수용될 수 있는 새로운 시도와

어줍지 않은 논문도 써봤다.

물론 야근도 아주 많이 했다.

*효율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6년간의 시간 동안

준비해서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군 생활을 잘(?)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 더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그리 뛰어난 사람이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내 의지마저도

의심하는 날들도 많았다.




2015년 6월 30일,

명에 따라 전역을 했다.

전역 다음날 모 기업

(이제는 대기업이 아닌)

면접을 본 뒤

2달 간의 채용전제

인턴과정을 거쳤다.

여기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광고 대행사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고단한 하루는 변함이 없지만

기계가 아직

대체할 수 없는 일을 한다.

때문에 생존력을

기르고 있다고 느낀다.

후회는 없다.


왕도는 없을것이다. 그러나 나만의 길은 있다. 확신이 있어야 길이 보인다. 그래서 나는 나를 설득해야 된다.


하지만, 아직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회사에서

Next Step은 보이지 않고,

인하우스 위주의 우리 업계에서

남다른 사람이 되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나는 업력부터 감각과

광고 지식도 아직 부족하다.

따라서 다음 행보가

앞으로의 나를 결정할 것이다.

적어도 1년은 더

근무해야 된다는 말을 계속 듣는다.

더 근무하더라도

지향점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는데, 신중해야 된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일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군을 나온 이유를

계속 되뇌는 시간들이 이어진다.

그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사람까지는
어렵다는 걸 안다.
그러나, 변화에
발맞추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터스텔라처럼
답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글이라도 계속 써야겠다.
글은 부족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니깐.




아직 생각정리가 더 필요하지만,

그래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나으니

부끄럽게 공유합니다.

모바일 미리보기로 많은

문단수정을 했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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