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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바다 Aug 27. 2020

어느 섬의 가능성

의자

좌판, 다리, 등받이로 구성된 이 단순한 사물은 우리 몸에 많은 부분이 닿는데 그 감촉과 느낌은 저마다 다르다. 각자의 모양과 방식으로 의자는 우리에게 어떤 자세와 태도를 요구하며 우리와 교감한다. 마주 놓인 두 의자는 서로를 마주 보게 하고 대화하게 한다. 안락한 의자는 긴장한 당신을 느긋하게 만들고 베란다에 놓인 등나무 의자는 먼 곳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상상하게 한다. 책상과 함께 놓인 어떤 의자는 무엇인가 쓰고 싶게 만들고 책장 앞에 놓인 의자는 무엇이든 읽게 한다. 집안 곳곳에 놓인 키 작은 스툴은 긴 여행 중에 만나는 경유지처럼 우리를 잠시 쉬어가게 한다. 우리가 의자를 선택하고 그곳에 가 앉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의자들이 각자 자신의 고유한 형태와 외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자신이 품은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 순간 우리의 신체와 감정 상태에 따라 그들이 보낸 초대에 감응하는 것일 뿐이다.


Glenn Gould, 1932-1982

글렌 굴드에게 의자는 신체 일부였고 친구나 가족이었고 혹은 그의 음악 자체였다. 아버지가 만든 의자를 손수 고치며 가지고 다녔던 굴드에게 의자는 단지 연주를 위한 도구만이 아니었다. 연주회장이든 스튜디오든 의자는 낮은 자세로 바짝 피아노에 붙어 웅얼거리며 연주하는 그와 언제나 함께 있었다. 유독 의자에 앉아 있는 사진이 많이 찍힌 굴드는 의자가 주는 어떤 내밀한 감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굴드가 자신의 음악과 소리를 지킬 수 있던 것은 어쩌면 그에게 의자가 언제나 가까이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의자에서 그는 고독할 수 있었고 의자에서 그는 그 자신일 수 있었다. 한여름에도 외투와 목도리를 걸치고 다녔던 그와 달리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의 건조한 피아노 소리는 꼭 그의 의자를 닮았다. 그토록 예민한 그였지만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며 자신의 웅얼거림과 의자의 삐걱대는 소리를 제거하지 않았다. 아니, 제거하지 않았다기보다 그 소리들도 함께 녹음했다. 자신의 웅얼거림과 마찬가지로 의자가 내는 소리 역시, 그와 그의 피아노에서 나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젊은 그가 건반 위로 쓰러질 듯 몸을 숙인 모습은 마치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는, 진실에 갈급한 노인처럼 보인다. 오로지 눈앞의 세상에 스스로 감금된 그는 피아노 안으로 몸이 들어갈 것 같다. 다리가 짧은 그의 의자는 굴드가 되고 굴드는 건반이 되고 건반은 음악이 된다. 그러니까, 그는 결국 음악 자체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 가운데 그의 의자가 있었다.



*안바다 신작 에세이,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9월 출간 전 일부 내용을 사전 연재합니다.


*다음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출간 알람 서비스입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07ZgYtLm3aKnQJUMzYSJwMYHQHM2oNBIDpoMlkYAosAeSsw/view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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