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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shot May 05. 2020

끝나야만 ‘개운’한가요?

알고 보면 시작에 더 어울리는 말이죠

“개운하다.”

상쾌함을 느낄 때 일상 속에서 자주 쓰는 말입니다. 팔을 쭉 뻗고 입을 크게 벌려 "개운하다"라고 외치면 숨겨뒀던 힘 한 줌이 쑥 솟아오르는 것 같죠.


어느 맑은 날 아침, 기지개를 켜면서 "개운하다"는 말을 내뱉다가 문득 그 어원이 궁금해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마흔이 넘도록 한 번도 궁금해 한적 없을 만큼 쉽게 쓰던 말이었기에 당연히 순우리말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요. 사전을 찾아보니 ‘열 개(開)’와 ‘돌 운, 옮길 운(運)’이 합쳐진 단어더군요.



‘열 개(開)’자는 워낙 흔히 쓰이는 한자이니 고민이 필요 없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돌 운, 옮길 운(運)’자의 쓰임새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운전’, ‘운반’과 같은 사물의 이동을 뜻하기도 하고, ‘나아가게 하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어루만지다’라는 뜻도, ‘행운’, ‘불운’처럼 운수를 지칭할 때까지 쓰임새가 많은 단어더군요. 두 한자를 합친 ‘개운(開運)’이란 단어는 ‘운을 열어젖히다’, ‘운이 막힌 것을 틔우다’라는 속뜻을 품고 있는 거였죠.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느낌을 말하거나 어떤 상황의 기분 좋은 결과를 표현할 때 "개운하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제가 기지개를 켜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운을 열어젖힌다’는 속뜻과 엮어 생각해보면 ‘개운’은 결과가 아닌 시작과 훨씬 더 어울리는 단어였어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마치 수십 년 동안 내 혈액형을 잘못 알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은 허탈함까지 느껴졌죠. 그리고 일상의 작은 부분을 재발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샤워나 목욕 이후에 느끼는 감정에 관한 건데요. 깨끗하게 씻고 난 뒤 누구나 "개운하다"는 말을 해본 적 있을 거예요. 몸에서 이물질을 털어낸 쾌적함을 결과론적으로 표현하느라 그랬겠지만, 실제 더 큰 뜻은 순환이 원활해진 몸으로 막힌 운을 열어 새로움을 불러일으킨다는데 있었던 거죠.


운동 후 땀을 흠뻑 흘린다거나, 과음으로 답답한 속을 뜨거운 국물로 달랜 뒤의 개운함 역시 마찬가지였던 거예요. 당시의 상쾌함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층 새로운 단계로 전진하려는 희망 가득한 표현이었던 겁니다.



말 뜻을 제대로 짚어보고 나니 앞으로 "개운하다"는 말을 할 때면 설렐 것 같아요. 그 말을 내뱉는 순간순간 막힌 운이 뚫리면서 새로운 시작을 경험할 테니까요.


  꼭지를  쓰고 나니 개운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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