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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shot Dec 31. 2021

주머니와 호주머니

따뜻하고 귀여운 말 맛을 지닌 호주머니, 태생은 좀 무섭다고?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옷 속 공간, 혹은 작은 자루를 주머니라고 한다. ‘쥐다’라는 접두어 ‘쥠’과 ‘-어니’가 결합된 단어다. 옛 한복에는 포켓이 없었기에 별도로 휴대, 부착하던 작은 자루를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의 풀이를 보면 ‘자질구레한 물품 따위를 넣어 허리에 차거나 들고 다니도록 만든 물건. 천이나 가죽 따위로 만든다’라고 쓰여있다. 근현대로 들어오며 서양식 복장에 붙은 포켓까지 주머니로 통칭한 것으로 보인다.


문득 ‘호주머니’와 주머니의 차이점이 뭘까 궁금해졌다. 푹 파인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 참호(塹壕)의 호(壕. 해자 호) 자를 붙인 것 아닐까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검색을 해보니 뜻밖에도 오랑캐 호(胡) 자를 쓰고 있다. 과거 북방에서 오랑캐들과 전쟁을 할 때 그들의 옷에 주렁주렁 붙어 있던 소도구 주머니를 ‘호주머니’라고 부른 것. ('호떡'에 붙은 '호'도 같은 뜻) 


즉, 현대의 우리는 주머니와 호주머니를 같은 의미로 쓰고 있지만 원래는 재질이나 형태에서 차이점이 있었던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국립국어원에서도 호주머니라는 단어가 언제 생겨난 단어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겨울이라 그런 걸까? 입 안에서 ‘호주머니’를 여러 번 곱씹으면 호호 부는 느낌이 들어 괜스레 따뜻한 느낌이다. 입술이 동그랗게 모이니까 말 맛이 귀엽기도 하다. 전쟁하러 남쪽으로 내려온 오랑캐 기마병들의 살벌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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