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shot Jan 09. 2024

“남자라면 가와사키!” 라는 표현이 널리 퍼진 이유

타보기도 전에 무서울것 같다고요? 알고보면 그런거 아니거든요

“남자는 가와사키!”, “남자라면 가와사키!”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문구입니다. 그리고 이런 의문도 가졌을 것에요.  


‘여자는 타지 마라고 선 긋는거야?’, ‘가와사키만의 남성적인 특성이 뭐길래 저렇게 얘기하는거지?’


바이크 라이더들의 레토릭이 되었지만, 그 배경을 정확히 아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풀 워딩은 “男ならカワサキに乗れ!"(남자라면 카와사키를 타라)

이 문구는 1989년에 출시된 가와사키의 네이키드 바이크 제파(Zephyr | ZR400-C1)의 광고에서 처음 사용됐습니다. 당시 일본의 모터사이클 시장은 스포츠 바이크의 인기가 절정에 달해 있었고, 제파는 이런 시장 분위기에 맞서기 위해 "클래식 바이크의 복고풍 디자인"과 "파워풀한 엔진 성능"을 내세웠습니다.

1989년형 제파. 출처 : 가와사키 Z시리즈 50주년 페이지

광고는 이러한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男ならカワサキにれ"라는 메시지를 사용했죠. 이 메시지는 "남자라면 강하고 남성적인 바이크를 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당시 시장의 주류였던 레플리카들을 매끈한 겉모습에나 치장하는 (여성적인)것들로 연상하게끔 합니다. 1980년대 일본은 경제 호황으로 인해 남성들의 자존감이 높았던 시절입니다. (2000년대 이후 장기 불황의 끝에서 ‘초식남’이 흔해진 것과 비교되는 맥락이죠)


제파의 차별화된 컨셉은 시장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80년대 후반 레플리카 중 베스트셀러는 NSR250과 스즈키 RGV감마250 등 2행정 2기통 머신들이었는데, 제파는 데뷔 첫 해 NSR을 꺾고 등록대수 1위를 탈환합니다. 이후 1990년대 내내 한번도 Top10에서 밀려나지 않았죠. 750급과 1100급 등으로 라인업을 확장하는 계기도 되었고요.


제파의 성공으로 "男ならカワサキに乗れ"는 일본 모터사이클 시장에서 하나의 고유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 문구는 가와사키를 대표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된 것은 물론이죠.

미스터 오토바이 1989년 5월호. 제파 출시에 대한 기대감을 담고 있다.

꽤 오래전의 이야기라서 이제는 이런 히스토리를 모르는 분들이 더 많지만, 가와사키 바이크를 타는 라이더들에게 일종의 자부심과 긍지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제파의 주행 질감은 매우 남성스러울까?

가와사키는 과거부터 "강력한 엔진 성능"과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남성 라이더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브랜드입니다. 영화 탑건에서 톰크루즈가 탑승한 오래된 바이크 GPZ900r은 당대의 극속 머신이었고, 신형 바이크인 닌자 H2R 또한 현대의 극속 머신입니다.


하지만 "男ならカワサキに乗れ"가 이러한 극강의 퍼포먼스를 상징하기 위해 뽑은 광고 카피는 아닙니다. 해당 문구는 풀 카울 스포츠 바이크의 매끈한 외형이 주류를 이루던 시장에서 제파의 선이 굵고 간명한 네이키드 디자인을 강조하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죠.


제파의 발매 당시 장르를 명기하자면 ‘레트로 스포츠 네이키드’로 분류할 수 있었겠죠. 동사의 Z1 등 1970년대 클래식 바이크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로, 레플리카 바이크에 비해 굵고 각진, 그리고 기계미가 드러나는 디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은 당시 일본 모터사이클 주류 시장에 균열을 일으키는 강렬한 대비 요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男ならカワサキに乗れ"라는 문구는 이러한 핵심 경쟁 요소에 정점을 찍어준 문구였을테고요.


제파의 기계적 성능은 당시 스포츠 바이크의 평균 성능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다만, 스포츠 바이크에 비해 무게가 무겁고, 유순한 서스펜션 세팅을 가졌기 때문에 주행 퍼포먼스는 유순한 편으로 분류하는 것이 맞을것 입니다. (제가 제파를 타보지 못해서 단정짓지 못하겠네요. 스펙만 보고 유추한 문장입니다. 단, zrx1100을 타봤을 때도 묵직하게 밀어주는 세단 같은 느낌을 느낀 바, “남자라면 가와사키”에서 직관적으로 상상되는 극악의 터프함 같은 것은 정통파 네이키드 라인업에선 “없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죠)


연예계에 비유하자면, 새끈한 아이돌 그룹 사이에 쿵 하고 등장한 김상경 같은 무게감 있는 아저씨가 테스토스테론을 팍팍 풍기는 느낌일까요?


아무튼, 제파의 성공은 일본 모터사이클 시장의 트렌드를 변화시키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메이저 브랜드들이 많은 네이키드 바이크들을 출시하는 계기가 되었죠.


"男ならカワサキに乗れ"는 단순히 하나의 마케팅 문구에 그치지 않고, 일본 모터사이클 문화에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표현입니다. 이 문구는 남성 라이더들의 자부심과 긍지를 대변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모터사이클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남을 것입니다.




참고한 글.

-산케이신문 2017년 1월 3일 기사  

-매거진 <모사이> 2020년 12월 기사 

-바이크브로스 “남자라면 가와사키를 타라” 기사

-가와사키 Z시리즈 50주년 페이지 



덧1. 제파는 개체수가 적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여전히 프리미엄이 잔뜩 붙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덧2. 일본 바이크 브랜드들이 서킷에서 습득한 기술을 양산품에 피드백하며 경량화에 몰입하던 때에, 가와사키는 철 프레임과 공랭 엔진을 완고하게 지킨다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수냉 바이크를 발매하긴 했지만, 이미지가 그렇다는 이야기). 즉, 극속-극강의 머신으로써의 남성성이 아닌, 투박하고 수더분한, 그리고 선이 굵은 남성성이 "男ならカワサキに乗れ"라는 말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굳이 말하면 우등생의 혼다, 기술의 야마하, 디자인의 스즈키, 그리고 「(박력있는) 남자의 카와사키」인 것이죠.

 

덧3. (동양권에서) 여성이 모터사이클에 올라타기 시작한 시점은 1958년도에 슈퍼커브가 등장하면서 부터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기름 냄새, 기계적이고 조작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불식시켰기 때문입니다. 주부들이 탈법한 언더본이나 스쿠터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가와사키의 제품 기획 방침과 "男ならカワサキに乗れ"라는 카피가 잘 맞아떨어지긴 하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카본 파츠, 어떤 재질들이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