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층시하와 촌지를 모르는 건 좋은 일인가, 안 좋은 일인가.
대략 95년생과 02년생 사이에 방송작가를 꿈꾸는 학생들과 주말마다 만난다.
소위 MZ세대의 가장 중심에 있는 세대들이다.
이들을 만나다보면, 내가 저 나이때 상상도 못할만큼 많은 스펙을 갖고 있지만,
정작 이런 것도 몰라 하는 것들도 많다.
1. 층층시하
- 요즘 어린 작가들은 경력에 도움 되는 주말버라이어티를 꺼려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선배 : 유튜브 콘텐츠에서 일하는 3년차 작가가 일도 잘하고 똘똘해서 런닝맨에 막내작가 구인해서
연결해주려고 했는데, 거절하더라고. 그렇게 선배 많은 곳에 일하기 싫다고.
나 : 요즘 애들은 층층시하에서 일하는게 경력을 쌓는 것보다 싫은가봐요.
선배 : 그런가봐, 우리는 층층시하에서 일해본걸 훈장으로 여겼는데.....
이 에피소드를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얘기해주었다.
돌아온 질문은?
학생 : 선생님 층층시하가 뭐에요?
나 : 뭐라고? 지금 층층시하가 뭐냐고 나에게 묻는 거야? 층층시하가 뭔지 모른다고?
그렇다. 요즘 MZ세대들의 엄마는 층층시하 시집살이를 한 세대가 아니라
이 친구들은 시집살이는 알아도 층층시하는 모르는 것이다.
엄마가 시할머니, 시부모님, 시누이, 시동생 뒷바라지를 하는 걸 드라마로라도 본 적이 없는 세대 인 것이다.
"저 집 며느리 층층시하 시집살이 하느라 얼굴이 해골바가지야"
"거기에 시집 가면 층층시하 시집살이 살아야해."
라는 말을 살면서 멀리 불어오는 바람으로라도 들은 적인 없는 것이다.
2. 촌지
- 내가 막내 때 만난 악덕 메인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였다.
나 : 내가 처음 만났던 메인작가는 유명한 빌런이였어요.
후배들은 엄청 차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심하게 갈궜죠.
내가 그 희생자였죠. 매일매일 그만두고 낙향해야 하나 고민을 할때였어요.
어느날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내 목소리가 이상한걸 딱 알아채더니
선배가 괴롭히냐고 하더구요. 이럴 땐 엄마들은 좀 귀신이야.
자초지종을 듣더니 "그 선배 한테 촌지를 찔러줘.
초등학교 때 너 싫어하던 선생한테 내가 촌지 갖다주니까. 태도가 싹 변했던거 기억안나?"
말도 안되는 얘기죠. 나를 싫어하는 직장상사에게 촌지를 준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학생 : 선생님 촌지가 뭐에요?
나 : 뭐라고? 촌지가 뭐냐고 나에게 묻는 거니?
그렇다. 이 세대는 자기를 괴롭히는 선생님에게 엄마가 촌지를 갖다주지 않아도 되는
학창시절을 보낸 아이들인 것이다. (대신 왕따나 학교폭력이 더 큰 문제인 세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초,중,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면 그때 선생님들에게 촌지를 어떻게 요구했는지
엄마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에피소드만 해도 2시간 정도 떠들수 있다.
젊은 세대가 '층층시하'나 '촌지'를 모르거나 익숙하게 쓰지 않는 건
좋은 걸까, 안좋은 걸까.
나도 나보다 윗세대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 중 아예 모르는 단어가 있을까?
그래도 방송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은 저정도 어휘력은 갖추고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어휘력에 민감한 나의 꼰대력만 다시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