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너의 정치적 역할 이론 ; 군의 정치개입이 순기능인가? 역기능인가?
사무엘 헌팅턴이 군사전문 직업주의 이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군부가 철저히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론에 반해서 사무엘 화이너는 군의 정치개입에 대한 유용성을 주장한다.
그는 군대가 정치적으로 견제역할을 하는 것이 정부를 효과적인 기관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될 뿐만아니라 결과적으로는 군이 정치를 전복할 가능성도 훨씬 줄여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무엘 헌팅턴이 주로 서구나 미국의 상황에 대한 연구인데 반해, 화이너의 이론은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의 민군관계를 잘 셜명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특수상황을 넘어서는 보편타당한 민군관계 이론으로써 화이너의 이론이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강한 지도자 ; 군부의 정치적 역할 (The Man on Horseback; The Role of the Military in Polotics)" 이라는 책을 낸 것은 미국에서 사무엘 헌팅턴의 "군인과 국가"라는 책이 발간된 지 약 5년뒤의 일이다.
이 책에서 화이너는 "정부의 역할과 군의 역할이 얼마나 분리될 수 있는가?" "군이 정부에 대해서 완전하게 복종해야 하는가?" "군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것이 유익할 것인가" 하는 등의 질문을 토대로 군부의 정치개입에 대한 순기능과 역기능을 비교했다.
화이너는 개발도상국에서 군이 정부를 견제하기 때문엑 정부가 독재로 흐르지 않고 올바른 발전단계를 거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후진국에서는 조직화된 군에서 더 빨리 발전된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군사 엘리트들이 국가발전, 사회발전을 위하여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군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개발도상국에서 국가행정이나 사회통합, 경제발전을 위하여 순기능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화이너는 사무엘 헌팅턴의 군의 정치적 중립유지 이론에 반하여 군의 정치개입에 대한 유용성을 주장했다.
그는 군이 정치적으로 견제역할을 하는 것이 정부를 효과적인 기관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될 뿐만아니라 결과적으로는 군대가 정치를 전복할 가능성도 훨씬 줄여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화이너는 후진국에서 쿠데타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가 그 사회에 그럴 만한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인 요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하여 쿠데타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런 쿠데타 발생을 자연스러운 정치과정으로 분석한다.
그는 "군이 힘과 조직을 가지고 있는데, 왜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가, 역사를 통하여 힘이 있으면 언제나 반란이 일어나고 혁명이 일어났다. 쿠데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안 일어나는 것이 비정상이다" 라고 주장한다.
화이너가 주장한 군의 정치개입 수준은 대략 4단계로 설명되고 있다.
1. 성숙 단계
2. 발전된 단계
3. 낮은 단계
4. 최저 단계
1. 성숙 단계에서는 군은 헌법을 통해 혹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이다. 현재의 정치권력에 대한 합법성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군에 의해 정부가 전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것은 불법침입이며 내란반역죄가 될 것이다.
2. 발전된 단계에서는 군이 압력의 수준으로 정치에 개입한다. 군사력이 무언의 시위로 혹은 실제 위협으로 정치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현재의 정치권력에 합법성이 있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그 합법성에 논란이 있다.
3. 낮은 단계에서는 군의 개입이 정치인의 교체수준으로 이루어진다. 이 단계에서는 군이 직접적인 무력행사에 의해서 각료나 정치지도자들을 교체하는 행태로 군의 정치개입이 나타난다. 정치인은 군의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군사지도자들이 배후에서 실질적으로 통치한다.
4. 최저 단계에서는 대체수준으로 군의 정치개입이 발생한다. 이것은 정치에 대한 군의 가장 포괄적인 개입을 의미한다. 군이 군의 선호에 따라 정부를 구성하고 각료를 임명한다. 이런 군의 정치개입은 보통 정치문화 수준이 매우 낮거나 동맹국에 의해 절대적으로 영향력을 받고 있는 나라에서 주로 발생한다.
대한민국은 군의 정치개입을 상당히 경험했다.
이승만의 부산 정치파동,
박정희의 5.16 군사혁명(쿠데타),
전두환의 12.12와 광주...
대한민국 정치권력은 트라우마가 있다.
현존하는 586세대 정치권력에게
군은 공생의 대상이기 보단 격멸의 대상이다.
그들은 군사지도자 또는 군부의 최상층부를 적으로 생각한다.
주사파 또는 종북, 친북세력으로 연결되는 북한의 존재가
그런 변수들을 더욱 더 긴밀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정치권력과 손을 잡은 군부
군과 손을 잡은 정치세력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4단계를 차곡차곡 거쳐왔다.
특히, 박정희 시대를 이야기 할 때 우리는 화이너의 군의 정치개입 이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순기능도 역기능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이라는 면에서 보면, 불세출의 영웅이고
정치발전이라는 면에서 보면, 군사독재 정치를 지향한 독재자로 묘사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1953년 7월 전쟁이 휴전상태로 남은 이 나라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3.15 부정선거 등으로 고립되었다.
결국 하야하고 미국으로 날라갔다.
그 후의 상황에서 민주화세력은 장면 총리를 중심으로 내각제로 정치체계를 변경했다.
이때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떠했냐?
전쟁의 후유증에서 경제발전은 요원해 보였고 정치세력들은 계파와 파벌로 눈치만 봤다.
국민들은 답답했다. 이승만 시대부터 만연했던 정치깡패를 비롯한 부정축재 등의 문제는 국민들 눈높이에서 보면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도 희망을 품었다. 내각제로 바뀐 정치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를....
그런데 그 시대에 제3세계를 중심으로 군사쿠데타가 인기(?)를 끌었다.
그때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부는 국가발전과 정치개혁, 경제발전을 명분으로 결국 군이 정치에 개입했다.
이후의 상황은 누구나 알듯이 경제발전이 최우선 목표가 되었고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했다.
국민들은 정치적으로 군사독재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군부는 정치에 깊숙이 개입했고 그 세력은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하나회가 힘을 결집했다.
박정희는 군부세력을 권력의 기반으로 삼았다.
박정희의 군부를 기반으로 한 정치권력이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것은 맞다.
화이너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성숙단계에 있다.
군은 합법적인 헌법에 준하여 통제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여기서 새롭게 자리잡은 정치권력들은 변화한 시대와 함께 군부를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지금의 정치세력은 군을 격멸의 대상으로 본다.
일제시대에 기반을 둔 친일세력이 그대로 군부권력을 장악했고, 그 세력이 지금도 보수세력의 중심에 있다고 치부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친일파니 군사독재세력이니 하는 세력이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상황에서 적절한 지적인가 하는 문제는 문제가 있다.
지금의 정치권력은 진보나 민주화를 기반에 둔다. 하지만, 민주화를 주도했던 세력들 가운데 친북, 친중, 종북세력이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과거 조작된 간첩단 사건으로 내몰린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실제로 북한의 지령에 의해 움직인 정치세력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지금 정치권력의 중심에 있다. 한번 잡은 권력을 놓고 싶지 않은게 권력의 속성이다.
이제 대한민국 군은 성숙단계에 있다.
그런 성숙단계에서 군은 정치화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밀접하게 관계해야 한다.
아직도 군은 북한이라는 적대세력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다. 전쟁의 위험성은 상존한다. 휴전상태이다.
그런 가운데 군은 굳이 북한이 아니더라도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상당한 정도의 군사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필연이다.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군사력을 유지해야 하는 우리 현실에서 군은 정치세력화된 존재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최첨병으로서 적정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정치세력과 협상해야 한다.
그렇게 나름의 목소리를 내야한다.
국가안보가 위협받을 때 국민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군을 바라본다. 과연 우리 군을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을 지킬수 있는 역량과 능력이 있는지 궁금해 한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군을 위협세력이나 격멸의 대상으로 봐서는 안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단순히 이념대결로 전쟁이 발생하는 시대는 지났다.
경제적인 이유로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군을 위협의 대상이 아닌 우리를 지키는 국가안보의 가장 중요한 세력으로 봐야 한다.
물론 거기에는 군 상층부의 군부지도자들이 과연 이러한 마인드를 제대로 가지고 있느냐도 중요하다.
군부지도자들이 어떠한 이유에서건 정치인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과연 자신이 몸 담았던 군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군의 정치적 역할은 분명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성숙된 군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