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과 젖공장 사이에서 자유를 외치다
응애응애 울다가 엄마의 품을 점령하고 나면 천사같은 얼굴로 쌔근쌔근 잠드는.
출산 4일차,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 핏덩들은 제각각 성격도 전혀 다르며 확실한 기호와 주관을 갖고 있었다. 세상의 빛을 본지 얼마나 됐다고, 지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 성격은 배가 고플때 가장 잘 드러난다.
조리원에서 만난, 속눈썹이 엄청나게 길었던 한 아기는 엄마가 럭비공자세(수유 자세중 하나로 헤드락을 거는듯한 자세)로 수유하지 않으면 모유를 먹지 않았고,
뱃속을 나오며 고생 좀 했는지 꼬깔콘 모양으로 머리가 뾰족해진 아기는 먹다가 잠이오면 배고픔과 졸림 두가지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키지 못해 화가 나는지 그렇게도 서럽게 울어댔다.
내아들은 그 중 으뜸으로, 조리원 베테랑 선생님들도 포스를 풍기며 다가왔다가는 혀를 내두르며 도망가게 만드는 고집불통이었다.
어찌나 성질머리가 고약하던지.
출산 5일째 되던 날, 초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땡땡하게 부어오른 가슴은 꽉 찬 모유를 빼내지 않으면 터질듯 팽창감이 느껴졌고, 유축을 해보니 초유 치고는 꽤나 많은 양의 젖이 나왔다.
의기양양하게 유축한 젖을 들고 신생아실로 들어갔다.
이제 유축하지 말고 직접 빨려야해요
레벨업한 기분이었다. 이제 나도 수유를 하는구나, 똥기저귀 담당관에서 엄마로 승진하는구나, 멋쩍게 웃으며 아기를 안고 젖가슴을 꺼냈다.
배가 고픈지 응애 응애 울던 아이는 젖냄새 나는 따뜻한 살갗이 닿자 신기하게도 울음을 뚝 그치고는, 아직 가누지도 못하는 고개를 요리조리 흔들며 입을 뻐끔거렸다.
이때다 싶어 가슴을 아기의 입에 쑥 밀어넣었다.
젖을 물리는 기분은 어떨까,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점차 일그러지는 아기의 표정에서 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응애!!!!!!!! 응애-응애애-응애애
자세가 불편한 걸까, 너무 깊이 넣어 놀란 걸까, 기도로 모유가 넘어간 걸까, 아니면 똥쌌나?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이리저리 아기를 고쳐 안아보았지만 여전히 아기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악에 받쳐 울고있었다.
혹시나 해서 유축해서 들고온 젖병을 물려보자 언제 그랬냐는듯 순한 얼굴로 열심히 젖병을 빠는 아들.
내 아들은 직수(직접수유)를 거부하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통상 아기들이 엄마의 가슴을 빠는 것은 젖병을 빠는 것보다 20배 가량 더 많은 힘을 써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일주일을 노력해보았지만 녀석의 천연젖병 거부는 여전했다.
오히려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수유자세로 품에 안기만 해도 악을 쓰며 울어댔다. 마치 온 몸으로 저항하는 민족투사처럼.
초반에 잡아야해. 신생아라고 얏보다간 큰코다친다?
특히나 수유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며, 이제 막 넷째를 출산한 조리원 언니가 단호한 표정으로 조언을 해주었다.
하기사, 젖병 없던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지가 단식투쟁하다 굶어죽었을껴 어쩔껴?
그래, 젖을 빨때까지 굶기자. 젖병은 절대로 주지말자.
굳은 결심을 하자 조리원 선생님들도, 마음은 아프겠지만 잘 생각했다고 적극 지지해주었다.
하지만 그 날 저녁이 될 때까지도 아기는 젖을 물지 않았다. 목은 쉬어버린지 오래였고, 탈수 증세로 입가에 허연 거품이 올라올 때까지도 이 고집불통의 꽉 다문 입은 열리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신생아는 네 시간 이상 공복 상태가 유지되면 위험하다는 무서운 소리 앞에 먼저 무릎을 꿇은 건 나였다.
출산을 하자 모유수유의 중요성과 그 위대함에 대한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들어왔다.
수유 시 엄마와 아기 사이에 생기는 유대감, 아기의 심리적 안정과 발달, 면역력 증진, 블라블라블라....
젖소마냥 매일 두시간에 한번 씩 깔대기 모양의 유축기를 가슴에 대며, 제 역할도 하지 못하는 몹쓸 가슴을 쳐다봤다. 유축기가 진동하며 흡착할때마다 반투명의 누런 모유가 세차게 뿜어져나왔다. 왼쪽 15분, 오른쪽 15분...
두세시간 마다 유축하지 않으면 속옷은 물론 옷까지 흥건히 젖을만큼 모유가 새어나왔다.
이게 뭐라고.
유축할 때마다 울적해진 기분 속에서
나쁜 엄마가 된 듯했다.
젖 말릴래.
나도 분유만 먹고도 잘 컸는 걸
출산 후 한달이 채 되기 전 나는 돌연 수유 포기를 선언했다. 젖 양도 충분했지만 산후우울증과 반복되는 유축 과정 속에 지쳐버렸다.
하루 일과는 이 2시간의 무한 반복이었다.
두시간마다 먹는 신생아의 경우 밤잠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고 새벽에도 끊임없이 먹이고 짜내고 달래며 고분분투 해야했다.
그뿐이랴! 끊임없이 우는 아기를 달래는 건 초보 엄마에겐 참 고난이도의 과제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시간을 꼬박 안고 달래며 잠이 든 걸 확인하고 눕히는 순간,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들.
도대체 엄마들은 언제 자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새벽녘 잠이 너무나 쏟아지면 유축기를 집어던지고 단 삼십분 만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내가 잠을 자면 우리 아들은? 굶어야 하나!
젖병이야 남편이 대신 물려준다 해도 유축까지 대신 해줄 순 없는 노릇이니까.
때마침 가슴에 큼지막한 혹이 여러개 생겼고, 병원에선 젖이 고여 주사기로 뽑아내야 한다며 여기저기 찔러댔다. 젖에 피가 섞여 나와 며칠간 먹일 수 없게 되었다.
얏호!!!
삼일 간 얼마나 편하던지.
아기가 울면 분유통에서 달짝지근한 분유 가루를 한스푼 퍼담고 젖병을 흔들기만 하면 됐으니까.
겨우 삼 일 유축하지 않았을 뿐인데, 젖 양이 줄어들었다. 잔뜩 부풀었던 가슴도 가라앉으며 보기 흉하게 탄력을 잃고 늘어졌다.
"엄마들 수유 끝나고나면 진짜 가슴 흉해진다? 얘, 나도 첫째 낳고 가슴 완전 망했잖아! 할매가슴 된다니까"
-에이 연예인들 보면 멀쩡하던데? 운동하면 돌아오겠지
"딴 건 다 돌아와도 가슴은 아니야. 얘가 성형외과 종사자 말을 못믿네? 걔들은 운이 좋거나 다 보형물 넣는 거야."
호탕하게 웃으며 장렬히 전사한 가슴을 보여주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이지 목욕탕에서나 보던 축 늘어진 할머니 가슴이었는데.
내 가슴이 딱 그렇게 됐다.
유방조직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가 수유가 끝나면 지방이 전부 빠져나가며 탄력을 잃는다고 한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지방이 붙진 않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때 봉긋한 가슴이었다가 젖공장과 이동식 밥통을 거친 가슴은 이제 정말이지 전사한 것이다.
엄마란 아마도 이 가슴같은 존재인가보다.
모유수유하지?
심심치않게 듣는 질문인데 때론 이 물음이 날 울적하게 만든다. 힘들어서 단유했어요, 라고 대답하면 그들은 토끼눈으로 왜? 라고 되묻고 그럼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잃고 마니까.
나쁜 엄마이다.
하지만 나쁜 엄마가 되지 않았으면 지금과 같은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지 모른다.
아이를 키우며 이 모든 걸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엄마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본래 그리 끈기가 있지도 인내심이 강하지도 않았으니까.
아이는 더할나위 없이 튼튼하고 또래에 비해 키도 훨씬 크다.
나는 그 결정 이후 삶의 질이 달라졌다.
한시간마다 교체하지 않으면 우유 썩는 내가 나던 수유패드도 붙이지 않아도 되며, 깔대기로 흡입하며 우유를 분출하는 가슴을 멍하니 보지 않아도 된다.
때론 맥주 한 잔도 시원하게 들이킬 수 있다!!! 아들 똥꼬가 벌겋게 부어오를 걱정을 하지 않으며 짜고 매운 음식도 먹을 수 있다.
울적한 날엔 친정집에 아들과 분유통을 맡긴 후 신랑과 데이트를 즐길 수도 있다.
이 모든 걸 감수하고 지속하는 모유수유는 당연한 게 아니다. 대단한 엄마들이다.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나는 행복한 나쁜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