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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규 Mar 08. 2022

지가 스티브 잡스인 줄 알아요

<셜록>을 운영하며 겪는 '구멍가게' 사장 이야기 

“사장님~” 이란 세 글자는 눈으로 읽지 않고 귀로 들어야 달콤하다. 처음으로 내 귀에 캔디를 뿌려준 사람은 세무서 직원이다. <셜록> 사업자 등록을 할 때였다. 


“사장님, 사업자등록증 나왔습니다.” 


호의를 구할 필요 없는 행정 업무여서 직원의 말에는 아무 억양이 없었다. 날 쳐다보긴커녕 이미 다른 사장에게 한눈(?)을 팔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장님~”이란 음성은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내 귀에서 오래도록 짤랑거렸다.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사업자등록증 들고 세무서 현관으로 향하는데, 1등 번호가 적힌 로또라도 쥔 것마냥 표정 관리가 안 됐다. 사장이라니, 내가 사장이라니! 


현관을 나올 때, 내 마음은 이미 NC소프트 ‘택진이 형’이나 카카오 김범수 의장급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허황된 생각은 제멋대로 계속 커졌다. 차에 시동을 걸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세무서 주차장을 빠져날 때,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쪽팔리게 택진이 형은... 스티브 잡스 정도는 돼 줘야지!” 


나는 오른손으로 내 넓은 이마를 쓰다듬었다. 잡스처럼 빠져버린 내 머리, 이렇게 완벽한 일체감이 또 있을까. ‘이 대머리는 제2의 스티브 잡스 증거라는 명백한 증거일 거야…’ 달콤한 착각에 빠진 나는 두피를 어루만지며 도로를 질주했다. 손에 느껴지는 두피 기름이 꿀처럼 부드러웠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을 처음 세무서에 등록한 2017년 1월 2일. 그 순간 정말이지, 난… 내가 스티브 잡스인 줄 알았다. 


언론계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켜, 순식간에 <뉴욕타임스>에 버금가는 매체가 되는 꿈. 스티브 잡스가 전 선계 개발자를 모아 놓고 신제품을 발표하듯이, 나도 예술의전당에 독자들 모아 놓고 새 탐사보도 아이템 발표하면 세상이 놀랄 것이란 착각. 



착각의 호수는 웬만한 가뭄에도 좀처럼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 법이다. 나는 오랫동안 ‘사장님 놀이’에 빠져 지냈다. 이제 시작일 뿐이어서, 아무 성과가 없는데도 나는 누군가 불러주는 “사장님~” 소리가 그렇게 좋았다. 


친구들은 “어이, 박 사장!”하며 술을 사라 했고, 지인들은 “사장님~”이라며 밥을 쏘라고 했다. 어떤 이는 억양을 넣어가며 “사장니~~임^^”이라며 소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 어쩌겠나.. 사장인 내가 사야지.’ 


스티브 잡스도 “사장님~” 소리에 홀려 주변에 밥 사고 다녔을까? 내 지갑을 쉽게 열렸고, 피 같은 돈은 헌혈도 안 했는데 쭉쭉 잘도 빠져나갔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 시절 내 곁엔 사장이 참 많이도 꼬였다.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우선 좋은 옷 입고, 고생 한 번 안 한 듯한 말끔한 얼굴로 다가와 “스타트업 하는 OOO 사장입니다” 하는 젊은 사장님. 


이들의 특징과 개성은 위에 적은 인사말에서 드러난다. 직원도 없고, 대단한 기술도 없어, 명함만 멋진 이들은 “작은 구멍가게 합니다” 정도로 재미있게 소개해도 될 텐데, 굳이 ‘스타트업’이란 말을 쓴다. 


BM(비즈니스 모델)이 어떻고, 펀더멘탈이 저쩌고.. 기초적인 영어를 굳이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곧 투자를 받을 것 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럼 좀 지들이 밥을 사든가. 이때도 내가 밥값을 내가 냈다.

  

다음은 술 취한 사장님. 거의 내 친구들이다. 보험을 하는 친구도, 굴착기 운전하는 친구도, 음식 배달하는 친구도, 단골 홍엇집 그분도... 다 자기들이 사장이라고 했다. 실제로도 그렇긴 했다. 


이들은 술 마시면서 사업의 어려움을 토로했고, 일이 힘들어서 술 마시자고 했다. 그러다 숙취가 심하면 그 다음날 쉬었다. 왜? 잔소리할 사람 없는 사장님니까! 


유형은 달라도 우리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지들이 다 스티브 잡스인 줄 안다거나, 그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홍엇집 사장님은 마치 거대 참치 회사를 운영하는 CEO처럼 혁신을 말했고, 보험을 파는 친구는 술만 마시면 스티브 잡스 버금가게 돈을 벌어서 AIA생명처럼 토트넘 구단 스폰서가 되겠다고 침 튀기며 말했다. 


굴착기로 땅을 파든, 기술 없이 명함만 멋지든, 밤새 홍어를 썰든… 마음만은 다들 스티브 잡스였다. 몸과 머리는 그처럼 성실하거나 똑똑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마음만은 스티브 잡스였던 그 숱한 사장님들이, 나처럼 대머리와 검은색 터틀넥, 청바지 패션으로 내심을 겉으로 발산하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스티브 잡스’를 향한 오마주 패션으로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으면 얼마나 민망했을까. 


사장이 일은 제대로 못하면서 ‘사장 놀이’에 빠졌으니, <셜록>이 초기에 고전한 건 당연했다. 직원 세 명으로 시작한 일은 나날이 쪼그라들었고, 초기 창업자금 1억5000만 원은 9개월 만에 바닥났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건 회계와 세무였다. <셜록> 창업 전에 기사만 써본 내게 그 업무는 사람 환장하게 하는 신세계였다. 나는 부가가치세, 사업소득세, 종합소득세가 뭔지도 몰랐고 엑셀은 거의 문맹이었다. <셜록>이 거의 망해갈 무렵, 처음으로 ‘내 귀에 캔디’를 던졌던 세무서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장님~, 부가가치세 미납하셨네요.” 


여전히 마음만은 스티브 잡스였던 내가 따졌다. 


“회사가 적자인데 무슨 부가가치셉니까. 돈이 남아야 세금을 내는 거죠!” 


전화기 너머에서 세무서 직원이 웃었다. 


“사장님~ 부가가치세는 이익과 상관없어요. 매출액에서 일부를 무조건 내셔야 하는 겁니다. 이거 계속 미납하시면 통장 거래 정지됩니다.” 


직원들 월급 주려고 돈 빌리러 다니기도 바쁜데, 통장 거래 정지라니. 마음속에서 짜증이 훅 일었다. 


“이익이 안 났는데, 세금을 내라니요!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딨어요!”

“사장님~, 그게 원래…” 


달콤하게 들리던 “사장님~” 소리가 이젠 지긋지긋했다. 


“아 정말, 그 ‘사장님~’ ‘사장님~’ 좀 그만 하세요! 듣기 싫어 죽겠네. 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무슨 사장이에요!”


“원래 사장 일이란 게 좀….” 


세무서 직원은 미안했는지 말끝을 흐렸다. 며칠 뒤 정말로 <셜록> 사업자 통장이 정지됐다. 제2의 스티브 잡스로 착각했던 나, 세금 안 내면 통장 정지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대학 졸업 후 17년간 연락하지 않던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 


웬만한 가뭄에도 끄떡없던 착각의 호수가 조금씩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는 깨어나야 할 시간이다. 


“야, 너 돈 좀 있냐? 내가 요즘에 일이 좀 안 풀려서…” 


어렵게 통장을 살렸다. 끼리끼리 어울리던 사장들을 멀리했다. 우리는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사는 존재들이었다. 다행히 직원 월급은 한 번도 밀리지 않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망한다, 다시 일어서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자위하며 견뎠다. <셜록> 구성원은 6명으로 늘었다. 애플은커녕 <셜록> 사무실 옆 유명 콩국수 집보다 작은 규모지만, 초창기에 비하면 100% 성장했다. 우리는 더디지만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민머리, 검은 터틀넥, 청바지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는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한 사장이었다. 핵심은 그것이다. 언젠가 한 강연에서 누군가 물었다. 


“<셜록>의 경쟁 매체는 어딥니까?” 


나는 <뉴욕타임스>라고 답했다. 사람들은 피식 웃었지만, 진심이었다. 살짝 교정하자면, <뉴욕타임스>처럼 되는 게 꿈이다. 닮고자 하면 닮는다고 했다. 


‘지가 스티브 잡스인 줄 알아요’는 <셜록>을 운영하며 겪는 지지고 볶고, 울고불고, 싸우고, 난리치며 성장하는 이야기로 채울 예정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노력하면 정말 <뉴욕타임스>처럼 성장할지도 모른다.  


이 험한 세상, 꿈이라도 꾸며 살아야지 어쩌겠나.


ㄴㄴㄴㄴ <셜록> 직원 김보경의 댓글

"사장님... 이렇게 회사에서 자면 우린 언제 <뉴욕타임스> 되나요?"


ps) 오늘은 여기까지. 

<셜록> 운영하며 겪은 이야기로 ‘사장이란 무엇인가’를 쓰고 싶었다. 꽤 오래전부터 말이다. 직원들과 논의해 타이틀을 ‘지가 스티브 잡스인 줄 알아요’로 바꿨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합치면 우리나라 '사장'은 1200만 명이 넘는다. 대부분 임대료, 직원 월급 걱정하는 작은 식당이나 가게 사장일 거다. 하지만 미디어와 출판에 나오는 사장 이야기는 스티브 잡스, 베조스, 일론 머스크 급이다. 좀 작네 싶으면 정용진, 이재용, 김범수다. 


현실적인 사장 이야기를 쓸 생각이다. 이번 첫 번째 이야기를 제외하곤, 뉴스레터로만 발행할 예정이다. <셜록>의 친구 왓슨으로 가입하면 받아볼 수 있다. 왓슨이 되면 재밌는 경험을 할 거다. 왓슨 가입을 원하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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