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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떠났으되, 결국 돌아가는 그날 밤

by 박상규

아버지의 유구한 외박의 역사에서 그날 밤의 귀환은 새로울 게 하나도 없다. 아버지는 여느 가을날처럼 집을 떠났고, 화투판에서 며칠을 보냈으며, 차가운 새벽에 텅 빈 지갑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이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아래의 질문을 마주하면, 특별할 것 없는 그날의 밤 풍경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나는 왜 엄마가 아닌 아버지를 선택했을까. 왜 아버지 곁에 남았을까.’


무수히 받아온 지겹고 진부한 질문. 다 정리되고 끝난 줄 알았으나, 이제는 나의 내면에서 불쑥불쑥 올라와, 마흔아홉 살의 내가 열한 살의 나에게 던지는 물음.


‘너는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니?’


질문을 받는 열한 살의 나보다, 49년이나 살아놓고 아직도 이 질문과 씨름하는 지금의 내가 더 당혹스럽다. 민망해진 나는 다시 열한 살 무렵의 그 가을밤으로 도망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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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가고 찬바람이 불면 아버지의 역마살이 시작됐다. 엄마가 옆집 총각과 사랑에 빠져 집을 떠난 이후부터 그랬으니, 오래된 습관은 아니다. 가을이 되면 떨어지는 나뭇잎보다 아버지의 가슴이 먼저 내려 앉는 듯했다. 아버지는 화투판에 주저앉아 가을을 보냈다.


도박, 술, 외박에 빠진 아버지와 달리 나날이 재산을 불리는 엄마의 처지는 여러 면에서 핫(hot) 했다. 화끈하게 사랑을 선택한 엄마는 목욕탕 때밀이가 됐으니, 직장마저 따뜻했다. 심지어 안양시 창신여인숙 2층 끝방 엄마의 집도 의왕시 청계산 꼭대기에 있던 아버지의 집보다 따뜻했다.


우리 2남2녀 형제들은 아버지의 가을을 견디지 못했다. 열세 살이 되면 형부터 순서대로 엄마에게 떠났다. 자식이 따뜻한 부모를 택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중학교는 도시로 다녀야 했으니, 13세 초등학교 6학년이 안양의 엄마에게 가는 건 당연한 과정이기도 했다.


형이 떠나고, 큰누나가 떠날 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작은누나가 떠날 때였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작은누나마저 엄마에게 가면, 열한 살의 나만 아버지 곁에 남는 것 아닌가. 그건 아버지가 화투판으로 떠나면, 그 길고 추운 가을을 나 혼자 견뎌야 한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아버지의 집은 마을과 떨어진 계곡 깊숙한 곳에 홀로 있었다. 그 넓은 집의 캄캄한 밤을 초등학교 4학년 나혼자 견디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선택은 하나, 작은나누와 함께 엄마에게 가느냐 여부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작은누나는 떠났고, 나만 아버지 곁에 남았다. 엄마가 오지 말라는 것도, 아버지가 남아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기억에 남는 일은 하나도 없다. 이유를 말해주는 가족도 없다.


나마저 떠나면 아버지가 혼자 남으니까? 차마 그럴 수는 없으니까? 글쎄, 그 꼬마에게 정말 그런 연민 같은 게 있기는 했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일이 그렇게 흘러갔지 싶다.


작은누나가 떠나고 초등학교 4학년 2학기부터 하굣길은 늘 불안했다. 내 마음엔 하나의 생각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


‘집에 아버지가 있을까, 없을까. 아버지가 있을까, 없을까….’


집 마당에서 오토바이가 보이면, 내 마음은 폭주족의 그것처럼 허공을 붕붕 날아다녔다. 집에 아버지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반대로 오토바이가 없으면 아버지는 그 순간 집이 아닌 화투판에 있다는 의미였다. 그때 내 마음은 사고로 파손된 오토바이처럼 찌그러졌다. 아버지가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찌그러진 몸과 마음은 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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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펼 수 있는 오직 하나, 아버지의 오토바이 소리뿐이었다. 깊은 밤 저 멀리서부터 아버지의 오토바이 소리가 작게 들려오기 시작하면 비로소 나는 편히 잘 수 있었다. 문제는 아버지가 그 소리를 너무 띄엄띄엄 들려줬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길게는 일주일 정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책가방 하나 챙겨서 엄마에게 가면 될 일을, 왜 나는 바보처럼 그 캄캄한 밤을 혼자 견뎠을까. 형, 누나처럼 나에게도 열세 살이 왔고, 떠날 명분도 생겼다. 그런데 나는 또 아버지 곁에 남았다. 검은 가을밤과 바꿔버린 두 번의 떠날 기회. 항우울제를 먹어야만 가을을 넘을 수 있는 트라우마는 그렇게 생겼다.


그게 병인 줄도 모르고 괜히 엉엉 울던 스물일곱 살의 가을 밤, 그 나이에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우는 내가 부끄럽고 민망해 괜히 이불을 걷어차며 더 서럽게 울던 그날 밤, 내 기억이 찾아가는 현장은 공교롭게도 ‘수라()의 밤’이었다.


그날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1985년 역시 추운 가을밤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그 즈음 새끼를 낳았다. 외롭고, 쓸쓸하고, 무서웠던 나는 고양이 집이 있는 마룻바닥 밑으로 기어 들어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방으로 데려 왔다.


그 작고 따뜻하고 귀여운 새끼를 만지고 놀며 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잠시 후, 어미 고양이가 방문의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지 새끼를 찾아 핥았다. 나는 새끼를 돌려주지 않고 내 품에 계속 뒀다. 어미는 뚫린 창호지를 통해 다시 밖으러 나갔다.


얼마 뒤 어미 고양이는 쥐를 물고 방으로 돌아왔다. 죽이지 않은 살아있는 쥐였다. 새끼는 아직 너무 작아 쥐를 먹을 수 없었다. 놀이, 혹은 사냥 훈련 용으로 잡아오는 듯했다. 나는 쥐를 밖으로 내다 버렸다. 그러면 어미 고양이는 또 밖으로 나가 다른 쥐를 잡아왔다. 나는 또 쥐를 내다 버렸다.


그러기를 몇 번, 어미는 이번엔 아주 작은 새끼 쥐를 잡아왔다. 새끼 쥐는 어린 내 눈에 귀엽게 보였다. 나는 그걸 내다버리지 않았다. 한동안 새끼 고양이가 갖고 노는 걸 지켜봤다. 그러다 내가 새끼 고양이에게서 어린 쥐를 빼앗아 갖고 놀기도 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갔다.


저 멀리서부터 아버지의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내 앞엔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새끼 쥐가 있고 마당엔 아버지의 오토이가 멈춰 섰다. 마음이 펴지고, 온기가 도는 완벽한 밤.


아버지가 방문을 열자 차갑고, 알싸하고 비릿한 가을밤의 냄새가 방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도 화투판에서 죽도 밥도 집도 절도 다 털렸는지 아버지의 얼굴은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당신의 넓은 대머리보다 아버지의 몸과 마음이 허전하고 추워 보였다.


“더럽게 쥐는…. 갖다 버려.”


영혼마저 털렸는지 아버지의 목소리엔 높낮이도 힘도 없었다. 나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새끼 쥐를 쥐고 마당으로 나가 풀어줬다. 새끼 고양이도 자기 형제 있는 곳으로 가라고 다시 마룻바닥 밑으로 돌려보냈다. 새끼 쥐가 지 어미 품으로 돌아갔는지는 모르겠다.


방으로 들어오니 아버지는 불도 끄지 않은 채 이불을 덮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나도 아버지 옆에 누웠다. 아버지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머리가 다 빠져버려 넓어진 이마에 내 오른손을 가만히 대 봤다. 정말 영혼까지 털렸는지, 밤을 뚫고 달려온 탓인지, 아버지의 이마는 가을밤처럼 차가웠다.


나는 방의 불을 끄고 다시 아버지 옆에 누웠다. 아버지의 ‘컴백홈’으로 새끼 쥐는 어미를 잃고, 어미 고양이는 새끼를 빼앗긴 아수라의 밤은 정리가 됐다. 나도 곧 깊은 잠에 빠졌다.


눈물 콧물 질질 짠 스물일곱 살의 그 가을밤 이후부터, 나는 이 유년의 밤 언저리를 자주 찾아가곤 한다. 사는 게 외롭고, 힘들고, 쓸쓸할 때면 방문의 빈도는 더 늘어난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고, 책을 읽게 된 것도 그 즈음부터다.


어린시절 도망치고만 싶었던 그 무섭고, 허전하고, 외로운 밤으로 나의 기억은 왜 자꾸만 돌아가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보니 또 한 세월이 흘렀고 어느새 난 중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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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내게 탈모와 작은 키 등 당신을 닮은 유전자만 물려준 게 아니다. 아버지는 내게 밤에도 냄새가 있다는 걸, 가을밤의 어떤 질감은 손바닥의 촉감으로 느낄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다. 무엇보다 빈털터리 텅 빈 몸일지라도 저 멀리서부터 우다다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끝내 내게 돌아온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제야 겨우 정리되는, 그 단순한 이유. 내가 아버지 곁에 남은 건 결국 그 사랑 때문이었지 싶다.


창신여인숙 2층 끝방의 따뜻함과 엄마의 비누냄새보다 나는 아버지가 몰고 왔던 그 밤의 냄새를 사랑했으며, 엄마의 그 열정과 억척스러움보다 아버지의 쓸쓸함과 공허함을 좋아했을 뿐이다.


하필이면 내가 왜 그 누추하고 쓸쓸한 것들을 사랑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선명해지는 것도 있다.


내가 무수히 도망치고자 했던 쓸쓸했던 그 밤은, 사실 모든 것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또 돌아오던 가장 따뜻한 밤이었지 싶다. 내가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 밤을 올리는 건, 결국 내가 그곳에 오래 머물고 싶기 때문일 테고.


그래,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나에게 그 밤은… 그 검은 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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