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문 너머 30평 남짓의 GX(Group Exercise)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 들어가 요가 매트를 깔고 제자리 뛰기를 하며 몸을 풀어도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모든 신경은 출입문으로 쏠렸다.
‘아저씨들이 올까, 안 올까.’
GX실 뒤편 높은 곳에 걸린 벽시계의 바늘은 06시 정각을 지나, 06시 05분으로 가리켰다. 기다리는 아저씨는 오지 않고, 여전히 나 혼자다. 슬슬 긴장되기 시작한다. 시곗바늘이 06시 10분을 가리킬 즈음 결정했다.
‘튀자!’
바닥에 깐 요가 매트를 다시 돌돌 말아 튈려고 하는데, GX실 출입문이 열렸다. 기다리던 아저씨가 아닌 필라테스 여성 강사님이다. 도망치려다 딱 걸린 나는 엉거주춤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아무도 없는데, 그냥 수업을 접는 게….”
“잘 됐네요.”
어? 잘 되긴, 뭐가? 따뜻한 안방의 침대로 돌아가려던 난 당황했다.
“제가 오늘은 자세 좀 잡아드릴게요.”
1대1 수업을 받으라고? 싫었다. 누구는 돈 얹어주고 PT(Personal Training)를 받는다지만, 그건 남 이야기고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다. 내가 신청한 건 단체 ‘맨즈 필라테스’지, 개인 교습이 아니다.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단지 민망한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8개월, 내 몸은 여전히 뻣뻣하고 뱃살은 출렁이며 고난이도 자세를 잡으면 멋지기는커녕 몸개그로 무너지고 만다. 1대1 수업은 철지난 슬랩스틱 코미디로 전개될 게 뻔했다.
“스쿼트 자세부터 교정해 드릴게요. 앞에서 보니까, 엉덩이를 뒤로 너무 많이 빼더라구요. 꼬리뼈가 뒤가 아닌 바닥 쪽으로 향하게 엉덩이를 살짝 말아보세요.”
엉덩이가 무슨 요가 매트도 아니고, 어떻게 말라는 건지.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신박한 지시보다, 혼자 수업을 받는 이 상황이 더 난감했다. 스쿼트 10개 채우기도 전에 이마에서 식은땀이 나는 듯했다. 특전사 출신 ‘투 스타’ 사단장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받는 신병이 이런 기분일까.
‘아저씨 한 명이라도 와 주길. 제발~’
장군님처럼 단단한 근육질의 강사님이 바로 옆에서 날 지켜보며 구령을 붙이는 동안 나는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맨즈 필라테스 수강생은 총 12명으로, 모두 같은 아파트에 사는 40대 이상의 중년 남성들이다. 일일이 나이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딱 보면 대충 그 즈음으로 짐작된다.
이웃집 아저씨들과 필라테스를 하면서 묘한 안도감을 느껴왔다. 우선, 오전 6시 5분부터 시작하는 수업에 정원 12명이 모두 참여한 사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대개 6~8명만 교습에 참가하는데, 결석으로 빈 공간을 볼 때마다 내 마음엔 온기가 돈다.
‘이 나이 먹고도 게으른 건 나만이 아니구나!’
어릴 적엔, 어른이 되면 이른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청년을 지나 중년이 되어도 이불 밖으로 나오는 건 한결같이 싫다. 이 타고난 게으름을 사는 내내 한탄했는데, 옆집 아저씨들도 똑같이 지각하고 결석하는 걸 보니, 특히 추운 겨울일수록 결석률이 수직 상승하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하니, 마음이 그렇게 훈훈할 수가 없었다.
실력은 또 어떤가. 나를 포함, 우리 아저씨들은 필라테스를 참 못 한다. 낑낑 대는 중년의 수강생들을 보면서, 강사님이 종종 웃음을 터트릴 정도다. 너도 뻣뻣하고, 나도 몸이 접히지 않으니,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긴장 같은 건 높지 않다.
중년에 맛보는 ‘고르게 못하는 하향 평준화의 기쁨’이라니. 생애 처음으로 라면을 먹었을 때처럼 멋진 신세계가 열린 듯했다. 그렇게 우리 교습생들은 서로의 게으름과 떨어지는 실력에 기대어, 종종 06시 넘어서도 침대에 머무는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거나 자책하지 않았다.
내가 늦잠을 자면 윗집 남자가 나가고, 옆집 아저씨가 못 일어나면 내가 교습에 나가고… 그렇게 우리의 필라테스 수업은 ‘6~8명 출석’을 잘 유지했다. 강사님도 고르게 게으른 아저씨들에게 큰 불만이 없어 보였다.
근데, 나만 빼고 모두가 불시에 결석을 하다니. 고르게 뻣뻣한 몸과 찢어지지 않는 다리라는 공통의 연대의식으로 이 험한 필라테스의 강을 함께 건너고 있었는데, 나만 강사님 앞에 던져놓고 다들 침대에 머물다니!
배신감에 다리게 후들거릴 즈음, GX실의 출입문이 열리더니 아직 잠이 덜 깬 듯한 아저씨 두 명이 연달이 들어왔다. 세상에나, 이름도 성도 모르는 옆집 중년 아저씨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두 아저씨 덕에 나는 장군님의 원 포인트 레슨에서 벗어났다. 120도 이상으로 찢어지지 않던 두 다리가, 180도로 확 벌어지는 것처럼 온몸이 개운했다.
오전 6시, 그 이른 아침부터 온몸을 비틀고, 찢고, 쥐어짜는 수업은 당연히 어렵고 고단하다. 전투력 충만한 눈빛으로 GX실에 들어오는 아저찌들은 거의 없다. 다들 나처럼 잠 덜 깬 졸린 눈으로 꾸역꾸역 나온다.
이런 모임이 뭐가 좋다고, 나는 화요일-목요일 필라테스에 이어 수요일-금요일 요가 수업까지 신청했다. ‘맨즈 요가’여서, 필라테스처럼 수강생들은 모두 중년 이상 남성이다. 강사님만 여성이다.
수업이 진행되는 06시부터 07시까지, 우리 아저씨들은 GX실에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말을 하고, 지시를 내리고, 구령을 붙이는 건, 그러니까 입으로 목소리를 내는 건 여성 강사님이 유일하다.
같은 아파트에 우리 아저씨들은 서로 성도,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 서로 묻지도 않는다. 어쩌면 서로 묻지 않은 탓에, 서열과 교통정리가 되지 않아 눈치 보느라 조용한 걸 수도 있다. 가끔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아저씨들의 침묵과 고요가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
사실 사회 어디를 가나 아저씨들은 참 말이 많다. 물론 나도 그렇다. 이정도 살았으니 이런저런 경험이 많고, 정규직을 유지하고 있다면 직장에서 지위가 높을 것이며, 다른 연령대에 비해 지갑이 두꺼워 배짱 또한 빵빵한 게 대한민국 중년의 특징 아니겠는가.
여기에 더해 지금보다 훨씬 남성을 우대하는 가정-사회 분위기에서 성장기를 보냈으니, 어느 모임에서건 아저씨들이 ‘닥치고 가만히 있기’란 초원의 사자가 사슴과 친구로 지내는 것 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떤 모임에서든 지 혼자 떠든다는 윤모 씨가 아니어도, 말 많은 아저씨를 환영하는 곳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 말 많은 아저씨가 오죽이나 싫으면 ‘나이 먹으면 입 닫고, 지갑만 열라’는 격언이 다 있을까.
중년은 무르 익었다는 뜻이지만, 시인 최승자의 말대로 그건 이제 “썩을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절정기를 떠나 보낸 메시, 호날두, 손흥민이 그랬듯이 이때부터는 뒤러 물러나는 법을 익히는 게 중요하지 싶다.
지시하는 대신 지시를 따르는 법,
가르치는 대신 가르침을 받는 법,
지적하는 대신 충고를 받아들이는 법,
무엇보다, 말하는 대신 타인의 말을 묵묵히 듣는 법.
필라테스, 요가는 몸을 단련하고 부드럽게 하는 일이지만, 우리 아저씨들이 그 아침 시각에 진정으로 배우는 건 이런 것들이지 싶다. 여성 지시에 이토록 군소리 없이 따르는 중년 남성 무리도, 아저씨들만 모였는데 이토록 조용한 모임도, 거의 처음이지 싶다. 우리들은 그저 찢어지지 않는 다리 부여 잡고 낑낑 대고 신음하고, 땀을 뚝뚝 흘린 뿐이다.
필라테스-요가 수업에 가는 새벽 길, 오늘도 다른 아저씨들이 나와 있길 기도한다. 길에서 동료 수강생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동네 아저씨를 원하다니, 일단 오래 살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