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피아골에 가을이 오면 낙엽보다 밤이 먼저 툭툭 떨어진다. 갈색으로 단단하게 여문 밤들이 깊은 밤 지붕으로 떨어지면 잠이 깰 정도로 그 소리가 크다. 가을이 왔다는 청각적 신호다.
이 즈음엔 도로에 떨어지는 밤도 많은데, 차 바퀴에 밟혀 으깨진 것만 모아도 몇 가마니는 될 거다. 도시에서 온 나는 그 깨진 밤을 보면 아까운 마음부터 드는데, 정작 산골 주민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그만큼 밤이 흔하다.
개도 물고 다닐 정도가 아니라, 개도 밤이 지겨워 외면할 수준이다. 그렇다고 눈치 없이 마구 주우면 곤란하다. 엄연히 주인이 있는 작물이니 다람쥐 도토리 물어가듯 줍다간 경찰서에 불려갈 수도 있다.
19번 국도에 올라 섬진강을 오른쪽에 끼고 달리다 구례군 토지면 외곡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피아골 계곡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숲이 사방을 포위하는데, 눈에 들어오는 나무의 팔 할은 밤나무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그렇다.
6월이 오면 피아골 숲이 희뿌옇게 보일 정도로 사방에서 밤꽃이 핀다. 그 밤꽃 향기는 초여름의 습기를 타고 순식간에 피아골의 공기를 접수하는데, 그 묵직한 진격의 꽃향기는 약 1개월간 밤낮으로 이어진다. 지리산에 여름이 왔다는 후각적 신호다.
피아골의 청각-시각-후각인 밤은 이 동네의 몰락과 쇠락을 상징하기도 한다.
혹시 그 유명하다는 가을날의 피아골 단풍에 관해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제1호 국립공원 지리산을 끼고 있는 구례군의 제10경에서 3위에 올라 있는 피아골 단풍 말이다.
피아골에서 약 10년을 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동네 단풍이 뭐가 특별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강원도 설악산은 물론이고 서울 창경궁, 덕수궁의 가을에 비해서도 크게 돋보일 게 없다. ‘구라’에 능한 일부 문학가들은 피아골의 단풍을 빨치산의 피와 연결시키곤 하는데, 사상적 은유일 뿐이다.
전국에 이름을 떨쳤던 ‘피아골의 가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피아골에서 평생을 보낸 엄니들은 추억에 젖은 눈으로 가끔 말씀 하신다.
“1980년때까지 저~ 산 꼭대기 근처까지 전부 다 논이었어. 전부 사람 손으로 축대를 쌓아 만든 다랭이논이었당께. 그 다랭이논의 벼가 노랗게 물들면 얼매나 이뻤다고! 저 높은 곳까지 층층이 노란빛이지, 산꼭대는 빨간색이지…. 그때 피아골 단풍이 유명해진 겨. 지금은 볼 것도 없잖여.”
피아골의 가을을 특별하게 만든 다랭이논은 이제 없다. 벼가 자랐던 곳엔 밤나무가 심겨졌다. 밤이 특별히 돈이 되어서 다랭이논의 주인이 된 게 아니다. 높은 다랭이논에는 기계가 들어갈 수 없다. 사람이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시골에 인구가 줄기 시작한 건 아주 오래전 일이다.
그렇게 예뻤다는 피아골의 가을은 떠나는 사람들 따라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피아골을 장악한 밤을 수확하는 사람마저 이젠 별로 없다. 피아골은 ‘준 여인 천하’ 세상인데, 웬만한 나무보다 오래 산 엄니들에겐 저 산에서 밤을 짊어지고 내려올 힘이 없다. 값이라도 높게 쳐주면 또 모를까, 그것도 영 아니다. 도로에서 밟히고 으깨지는 밤, 다 이유가 있다.
그래도 힘이 좀 남은 사람들은 저 산에서 밤을 수확해 그 무거운 걸 짊어지고 내려온다. 피아골의 젊은 농부 A도 그 중 한 명이다.
지리산 국립공원에 닿아 있어 깨끗한 피아골에는 귀촌자가 좀 있는 편이다. 도시 출신의 이들은 대개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다. 면면도 화려하다.
그 좋은 한의사를 때려 치우고 온 형이 있고, 연봉 1억 원에 육박하는 대기업 건설회사를 버리고 온 형도 있으며, 연배를 좀 높이면 서울대 교수, 국방대학원 교수를 지내고 온 분도 있다. 나와 이들 귀촌자들은 피아골 농부 A의 노동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한의사, 건설회사 출신 형들과 나, 젊은 농부 A는 가깝게 지낸다. 종종 술을 마시고, 자주 커피를 마시며, 가끔 밤낚시도 같이 다닌다. 다들 알고 지낸 지 약 10년이 되어가니 친하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그 죽일 놈의 밤’이 화두로 올랐다.
한의사 형이 포문을 열었다.
“야, A야 이제 밤 줍지 마. 그거 힘들기만 하고 돈도 안 되는데 뭐라고 줍냐. 다른 거 해!”
사람 약올리는 건 아니다. 고생하는 A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밤 그거 떨어지 거 대충 주워오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하는데 뭘 모르는 소리다. 떨어지는 거 주워오는 건 맞다. 근데, 떨어진 밤을 주우려면 더운 8월 말부터 산에서 풀을 베야 한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산에 모기, 벌은 또 어찌나 많은지 징글징글 할 정도다.
밤을 많이 주우면 또 그걸 들고 내려오는 것도 일이다. 값도 비싸지 않아 한철 고생해 수백만 원 쥐기도 힘들다. 도시의 화이트 컬러 출신 사람의 눈엔 도무지 견적이 나오지 않는 바보같은 노동이다. 그래도 A는 이걸 묵묵히 한다.
“형님, 값이 얼마 나가든 밤이 익어서 떨어지는데 그걸 어떻게 안 주워요. 농사 짓는 사람들은 그걸 외면할 수가 없다니까. 값이 얼마든 수확해서 내다 파는 게 농사 짓는 사람이지.”
한의사 형은 물러서지 않았다.
“야, 그거 힘들잖아. OOO만 원 벌겠다고 그 더운 날에 산에서 예초기 돌리고 풀을 베냐.”
A가 버럭한 건 이때였다.
“형님, 풀 베는 건 그나마 내가 잘하는 일이니까 하는 거예요!”
잘하는 걸 하고 있다는 말에, 잘하는 일이 하필이면(?) 풀 베기라는 사실이, 잠시 서로의 입을 닫게 만들었다. 그건 민망한 침묵이 아니라, 존중의 고요이기도 했다. 풀 베기를 잘해 고향에 남은 A같은 이들마저 없었다면, 이 피아골의 가을은 얼마나 허전할까.
도시 출신들의 눈에 A가 견적 나오지 않는 노동을 하는 건 한둘이 아니다. 이 산골에서 뭔 일만 생겼다 하면 다들 A를 찾아간다. 엊그제 형들과의 술자리에 A는 싸리버섯에 돼지고기를 넣어서 볶아왔다. 밤을 수확하는 바쁜 와중에 산에 들어가 따온 것이다.
“이때 아니면 못 먹으니까, 맛이나 좀 봐요.”
조만간 A는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 능이버섯을 따와 다시 우리 도시 것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그의 능이백숙은 피아골의 연례 가을행사다. 이 행사를 마치면 A는 다시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 송이버섯을 딴다. 그러면 또 우리 도시 것들을 물러 모은다.
가을마다 A가 딴 송이버섯에 고기를 먹는 건, 지리산에 해가 지면 저 하늘에 별이 뜨는 것과 비슷한 자연순환에 가까운 일이다. 그의 견적 안 나오는 노동을 도무지 이해 못하는 우리가 뭐 이쁘다고 A는 그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바보같이, 아흐 바보같이!
오늘도 뒤뜰의 밤나무가 자꾸만 우리집 지붕을 두드린다. 풀 베기를 잘하는 사람이 드물어 다 주울 수도 없는데, 이 가을은 어쩌자고 자꾸만 신호를 보내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