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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ak Tie Apr 12. 2016

본질은 잃은 UI의 몰락 - 두 번째 이야기

UX를 잃고 표류했던 9년간의 음성인식 이야기

(본 칼럼에 표시되는 이미지는 웹 검색을 통해 다운로드된 이미지이며,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본질은 잃은 UI의 몰락 - 두 번째 이야기”를 쓰기에 앞서

“본질은 잃은 UI의 몰락 - 첫 번째 이야기”  글을 쓰고, 공감과 공유를 많이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나의 글에 이 정도의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많이 부끄럽습니다.


첫 번째 글에서 자칫 오해가 있을만한 부분에 대해 사전에 말씀드립니다. 제품 출시에서 불합리해 보이는 모든 과정들은, 제가 속한 조직이 아니더라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며, 그렇게 사라져간 서비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함께 애써 주시는 고객사, 기획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비주얼 디자이너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없는 부분을 해결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저는 그들이 단연코 세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도 순수하게 UI의 입장에서만 기록하는 것입니다.


30점에서 35점이 된 것은 결코 발전한 것이 아니다.

“본질은 잃은 UI의 몰락 - 첫 번째 이야기”에 기록했던 네 번의 개선이 아주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평가 기관에서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보이고 있었으나, 중요한 것은 그 어떤 회사도 획기적인 발전이 없었다.

쉽게 말하자면 업계 평균이 100점 만점의 30점 정도 되는데 35점으로 나아진 것일 뿐, 그 어떤 회사도 80점을 받지는 못했다. 여전히 ‘본질’에 대한 부분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해도 시험 점수가 안 오른다...


새로운 설계, 새로운 시도

이런 상황에서 ‘완전히 새로운’ UI를 기획하게 되었다. 어떤 제품이던 세대가 바뀌면서 처음부터 재구축하는 시점이 있는데, 때마침 찾아온 것이다. 여기에 아주 미쳐버리겠는 것은... 하드웨어의 성능은 나아졌으나, 기존 ‘음성인식의 한계점’은 그대로 가져가야 했다. 이제 재구축을 해 보자...(퍽 퍽 퍽)


한계점 1. 명령어를 많이 추가할 수 없다.
한계점 2. 사용 가능한 명령어를 알려줘야 한다.

개인적으로, 운전 중인 상황에서 음성안내를 장황하게 해 주는 것은, 전화 통화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라는 가설을 두고 ‘흘낏 보는(Glancing)’방식을 선택했다. 화면에 사용 가능한 명령어를 표시해 주고 음성 안내는 최대한 짧게 “화면에 표시된 명령어를 말씀하세요” 정도로 제공했다. 이렇게 한계점 1, 2를 극복하고자 했으나, 여전히 ‘자동차에서의 음성인식은 운전 중에 화면을 보지 않고도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화면에 표시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팽배했다. (물론 이 주장은 함께해 준 기획자 분과 의기투합하여 결국 승리했다!! 아자!!)


한계점 3. 음성인식을 사용하면서 유의해야 하는 부분을 알려줘야 한다

실제로 음성인식 사용에 유의해야 하는 부분을 말로 풀면 대략 3~5분 정도 된다. 다들 예상하는 것과 같이 자동차에서 3~5분 동안 이걸 듣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차라리 화면에 도움말을 만들어서 사용법을 전부 나열해 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필요는 한데 분명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적을 테니까.

이런 방법. 이미치 출처는 현대자동차 네비게이션 매뉴얼임


한계점 4. 음성인식률은 100%가 아니니까, 방어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분명 음성인식률은 100%가 아니다. 그렇다면 100% 사용자의 조작에 동작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아주 쉽다. 화면을 터치하면 된다. 음성인식을 하다가 답답하면 화면을 터치하도록 UI를 설계했다.

화면에 명령어도 보여주고, 손으로 터치도 된다. (이미지 출처는 상동)


그러나, 여전히 아이언맨의 자비스가 아니다.

새로운 시도와 설계를 통해, 아주 멋지게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역시 성공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은 무한대에 가까우며, 그들의 억양에 따라 영향을 받고, 그들이 살아온 삶에 따라 사용되는 용어도 다르다. 또한 검색해야 할 데이터의 패턴도 다양함에 따라 시스템의 성능이 일정 수준 이상 되지 않는다면 모두 담아내기 어렵다.(여기서 ‘일정 수준의 성능’이란 생각 외로 매우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


주소를 말할 때,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1가 31 (=서울시청 주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서울 중구 태평로”라고 할 수도 있고, “서울 태평 1가”라고 할 수도 있다.


‘이마트 에브리데이’를 찾을 때 ‘이마트 에브리데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보통은 ‘이마트’ 하면 적당히 검색되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까?

서울시청의 주소를 말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현재까지 어떠한 개선을 하던, 본질을 만족하지 못한다.
아이언맨의 자비스는 내가 아니라, 토니 스타크에게 가장 적합하게 맞춰져 있다.


9년의 시간, 그 아쉬운 결말. 그러나 그 결정은 옳다.

회사의 입장에서 기술의 한계점을 극복하려는 많은 시도와, 그에 따른 UI의 변경은 시간과 인력의 관점에서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이거나, 인프라의 문제로 인해 한계점이 극복되지 않는 시간이 반복된다면,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한계점을 돌파하려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본질(UX)’를 꿰뚫지 못한 UI 기획은 “최소한만 남기고 삭제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물론 아얘 삭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판단이라 생각한다. 자동차에서 음성인식이라는 기술은 마케팅의 입장에서 상당히 유용한 세일즈 포인트이며, 기술적으로도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유지된 기능이다. 이것을 삭제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고, 어려운 결정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제를 결정한 임원분은 분명 UX에 대한 통찰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분의 결정을 진심으로 존중한다.


적정기술을 생각하다.

적정 기술이라는 분야가 있다. 깊이 있게 아는 분야는 아니지만, ‘굳이 최고가 아니더라도 적당한 정도만 제공되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기술들'이다. 예를 들자면 아프리카 적도 지방에는 4℃의 차가운 물 보다는 ‘적당히 시원한’ 20℃ 정도의 물만 있으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적정기술의 대표적 사례, Coca Cola의 Bio Cooler (20℃ 정도의 자연 냉장고)

음성인식도 이런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 아니었나 싶다. 운전 중에 가장 성가신 행동인, "누군가에게 전화 걸기"만 제공한다던가, 구글 음성인식과 같이 검색할 때 문자만 입력해 주는 정도만 ‘적당히’ 제공해 주면서 유효성을 보고 확장해 나가는 방법 말이다.


실제로 음성 비서를 지향하는 Apple의 Siri, 삼성의 S-Voice, LG의 Q-Voice 보다, Google의 ‘텍스트 음성입력’을사용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적정 기술’이 종착점은 아니지만, 접근하는 방법이 처음부터 너무 무거웠던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다.


많은 것을 깨닫고, 다음을 준비한다.

지난 9년간의 개선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답답하게 만들었다. 마치 손발을 다 묶어두고 수영을 해서 목적지에 도달하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말하는 방식을 주의 깊게 살피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협업하시는 분들의 모습에도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 기술이 UX의 만족 수준에 올라서지 못한다면 ‘하지 말자’라는 주장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적정 기술의 최적점을 찾기 위해 모두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세 번째, 본질에 위배되는 개선은 배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하나의 기능을 9년간 UI를 기획한 것은 분명 긴 시간이라 생각한다. 그 시간 대비 ‘성공적이지 못한’ 결말을 맞이해서 마음이 아프고, 자존심도 상하지만... 이제는 지금보다 발전되고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을 만들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따뜻한 응원의 댓글을 남겨주시는 센스를 보여주세요.

지면에 표현하지 못한 내용도 많이 있는데, 이런 내용들은 오프라인에서!!! (진짜?)


다음번 글은 언제 쓸지 기약 없습니다...ㅠㅠ


※ Post 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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