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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Dec 22. 2021

꼭 덥수룩한 수염으로 뒤덮여야만 산타는 아니야

엄마아빠가 산타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울지 말아줘

방학식을 앞둔 온라인 수업 중이었다.


선생님은 친구들에게 질문하셨다.

“방학 때 뭘 하고 싶은지, 이번에는 누가 말해볼까?”


한 친구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번에는 꼭 산타 할아버지의 정체를 밝힐 거예요!!”


친구의 대답에 너는 진심으로 큰 충격을 받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산타 할아버지 정체는 당연히 산타 할아버지 아니야? 우리 엄마는 산타 할아버지한테 주스도 주고 사진도 찍었다고!”


이제 며칠만 지나면 9살이 되는 네가 너무나도 산타를 진심으로 믿고 있어서, 그 순수한 마음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지나치게 순진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너의 격분하는 모습에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친구들이 재잘재잘 시끄럽게 자신의 산타 목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가 산타가 선물 두고 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뒀다니깐.”

“우리 집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수염을 떨어뜨리고 갔어. 수염 봤어!!”

“아빠가 사진 찍은 것도 있어~”

“분명히 엄마가 선물 사서 트리 밑에 두는 거라고!”


산타가 진짜 있다는 그 믿음을 지켜주기 위해, 친구들의 부모들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엿들을 수 있는 귀여운 시간이었다. 동시에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 있는지 없는지 이제 슬슬 혼돈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널 보면서 궁금해졌다.


트리 밑에 네가 딱! 원하는 그 선물을 두고 사라지는 산타 할아버지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산타가 엄마 아빠라는 것을 안다면, 

너는 좋을까? 싫을까? 실망할까?


올해는 무사히 넘긴다 하더라도, 조만간 산타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될 너는 어떤 표정으로 엄마 아빠를 쳐다볼지 조금은 두려워졌다. 


울까 봐. 


그동안 1년을 지탱해 주었던 큰 믿음이 깨져서 속상한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그저 산타가 엄마 아빠라는 것에 속았다는 마음으로 억울한 울음이라면, 지금까지 너를 위한 선물 준비에 진심이었던 엄마도 괜히 슬플 것 같았거든.


그래서 너에게 슬쩍 물어봤다.


“만약에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 있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

“그렇다면 작년에 선물 두고 가시면서 사진까지 찍었을 리가 없지.”

“올해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 올까? 너 선물 주시러?”

“당연히 오지.”

“너 선물 받아?”

“음… 그건…. 글쎄…. 잘 모르겠네…. 나쁜 아이는 선물 안 주시니까.”

“너 나쁜 아이야?”

“난 중간 아이. 착한 아이도 아니고 나쁜 아이도 아니고.”

“그럼, 착한 아이 아니라서 안 주시겠네.”

“근데, 그래도 주실 것 같아. 산타 할아버지니까.”


너에게 크리스마스는 모두가 자신을 착한 아이라고 믿게 만드는 날임이 틀림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혼나는 탓에 스스로를 착한 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한 아이만 준다는 선물은 받으리라는 왠지 모를 확실한 희망을 품고 있었으니까.


그 희망, 사실 엄마 아빠가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어. 올해 트리에 얹어 놓은 너의 편지에 적어 놓은, 다이0에서 파는 진저 브래드 맨 인형을 사기 위해 엄마는 무려 4군데의 다이0을 돌아다녔지만 그 시간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웠어. 네가 4살 때인가. 부릉부릉 부르0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던 네가 원하던 핑크색 캐릭터 인형이 죄다 품절이라, 아빠가 온갖 장난감 회사들에 전화해서 수소문을 했던 적도 있었어.


너에게 베풀고 아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 그 누군가가 바로 산타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어. 덥수룩한 수염으로 뒤덮힌 할아버지여야만 산타가 되는 건 아니라고 말이지.


그러니, 엄마 아빠가 산타 할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너무 울지 말자. 부탁해. 




*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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