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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Dec 13. 2017

먼지 쌓인 피아노를 다시 열었다

잔잔하게 잊혀졌던 추억의 매개체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다시 열어보고자 마음 먹은 피아노 뚜껑은, 만질까 말까를 몇 번이나 망설여야 할 만큼 적당히 부드러운 두께의 먼지가 쌓여있는 상태였다. 만지지 않으니 청소도 대충, 청소가 대충이니 만지기 싫어지는 상황이 반복된 결과였다. 잠겨있던 것도 아니고, 무슨 열쇠가 있어야 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두 손으로 들어 올리면 그만인 그 뚜껑을 여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다고.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던 7살부터 지금까지 피아노는 늘 나와 함께 있었다. 신혼집으로 마련했던 작은 집에는 도저히 들여놓을 상황이 되지 않았기에, 몇 년간 피아노가 내 행동 반경에서 벗어나 있던 시간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사를 하면서 가장 먼저 우리 집으로 다시 들여온 내 흔적은 바로 피아노였다. 한데, 계속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다시 열기란 쉽지 않았다. 맞다, 거의 몇 년간 뚜껑을 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피아노는 그저 골동품 장식장 같았다.


사실, 피아노라는 악기를 한 번도 안 만져본 사람이 있을까. 악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악기이자 가장 만만하게 배우는 악기 모두 피아노인데 말이다. 어릴 적 몇 년 배워본 기억이 있다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도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드는 악기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만큼 다가가기 쉬운 편안한 악기이지만, 처음 그 피아노가 우리 집에 왔던 어색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만약 지금의 내가 피아노를 고른다면, 피아노의 색깔이라던가 피아노에 어우러진 무늬 등도 중요하게 고려했을 테다. 하지만, 당시 부모님은 여느 피아노 학원의 연습실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래서 막 써도 될 것 같은 투박하고 아주 평범한 검은색 피아노를 선택하셨다. 갑자기 방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된, 전혀 예쁘지 않았던 그 피아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이유는,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무겁고 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피아노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하루는 옆집에 살던 동네 친구가 피아노 앞에서 기침을 했다. 검은색 피아노 뚜껑 위에 침이라도 튀었을까 봐, 휴지를 들고 와서 바로 닦아댔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입을 가까이 대고 허허 불면서, 빨간색 피아노 수건으로 그렇게 매일매일 번쩍번쩍 광을 냈다.


언제부터인가 말하는 것이 그리 자신이 없어진 사춘기 시절에는, 말 대신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취미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을 투자한 결과는 자랑거리가 되어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슬플 때나 기쁠 때 그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을 추가로 알게 된 것 같아 기뻤다. 아주 어린 시절, 동네에서 같이 놀던 남자아이가 이사를 갈 때도 피아노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궁상을 떨었던 손발이 오글거리는 기억도 있다. 


어린 시절 큰 의미였던 그 어떤 무엇을 잊고 살게 되는 계기가 무엇인지 고심해 본다. 갑자기 무척이나 많이 중요해진 무엇이 생겼었나. 우습게도, 그 계기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없어지면 큰일 날 것 마냥 좋아했던 것도, 특별한 이벤트가 없이 그렇게 잊혀지고 흘러갈 수 있는 것인가 보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잔잔하게 잊혀졌던 추억의 매개체를 다시 꺼내보고 싶었다. 어쩌면, 미련이 남아있는 과거의 나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잘 알고자 노력하지 않았던, 그 노력의 필요성도 알지 못했던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탐색 말이다.


그래서 먼지 쌓인 피아노를 다시 열었다.


조율이 많이 필요한 심각한 상태의 소리가 난다. 손가락을 눌러가며 하나씩 음계를 짚어가지만, 어떤 건반은 이미 반 정도 눌려 내려가 있는 상태이고, 어떤 음은 ‘도’인지 ‘레’인지 명명하기 어려운 애매한 소리가 나온다. 이 음정 상태로 악보를 펼친 채 연주를 한다면, 그 어떤 음악을 연주한다 하더라도 우스운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옆에 두고 있었음에도 관리하지 않은, 내 무관심으로 인한 결과이니 억울할 것도 없다.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혹은 며칠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원상복귀 시켜놓는 것은 내가 당연하게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내 무관심으로 인해 삐걱대는 내 열정에 대해서도, 원상복귀 시켜놓는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 역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었는지,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잊어버렸기에 지금 이 상태에서는 무슨 목표를 세우고 실행에 옮기든 불협화음이 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뚜껑을 열었으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야겠다. 


걱정과 책임감보다는 즐거움이 더 컸던 그 시절을,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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