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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Dec 15. 2017

허리를 꼿꼿이 펴고, 가운데에 앉으세요

자세를 바르게 하라는 잔소리

피아노 건반의 아래쪽 가운데에는 열쇠 입구가 하나 있다.


단 한 번도 피아노 열쇠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피아노를 잠가 본 적도 없다.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열쇠 입구가 왜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피아노 학원에 갔을 때 처음 배웠던 것은, ‘도’의 위치가 어디인지 어떻게 쳐야 하는지가 아니었다. 어떻게 피아노 앞에 앉아야 하는지가 먼저였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피아노의 한가운데에 앉아야 했다. 피아노의 가운데란 바로 피아노 열쇠 입구였다. 열쇠 입구의 위치가 바로 내 배꼽의 위치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피아노 열쇠 입구는 바른 자세의 중심이 되는 역할이었다. 피아노 건반 위에 올려진 두 손의 손바닥 또한 건반과 평행이 되어야 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손바닥은 슬금슬금 밑으로 쳐지곤 했지만, 선생님은 그 찰나를 눈치채시곤 기다란 자로 손바닥을 밑에서 위로 올리셨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이유는, 어서 빨리 건반을 누르며 반짝반짝 작은 별을 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서 빨리 이렇게 칠 수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자세 잡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자, 어린 나이에 매우 짜증이 났다. 게다가 악보를 읽을 줄 알아야 연주를 할 수 있었고, 악보를 읽으려면 당연히 오선지에 음표도 그릴 수 있어야 했다. 높은음자리표를 예쁘게 그리지 못한 날은 집에 와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분명 피아노를 배우러 간 것인데, 피아노 의자가 아닌 둥그렇게 큰 책상 앞에 앉아 또래 아이들과 함께 연필을 쥐고 그리는 시간이 많았다.


점차 흥미를 잃어갈 뻔했던 피아노 습득에 속도가 붙은 계기는, 더 이상 자세에 대한 지적을 받지 않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이제는 선생님이 자로 손바닥을 올리지도, 등을 세우지도 않았다. 머리로 이미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지적을 받을 때는, 더 이상의 동기부여가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다행히도, 자꾸 주변을 맴돌며 귀찮게만 하는 모기 같던 버릇이 없어지자 뭔가를 넘어섰다는 자신감이 붙은 듯했다.


사실, 바른 자세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지금도 의자에 앉을 때면 의례 다리를 꼬고 앉는다. 몸에 좋지 않은 자세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기에, 가끔씩 왼쪽 오른쪽 다리를 번갈아 바꿔가는 것으로 건강에 신경 쓰고 있다는 티를 겨우 낸다. 몸의 건강을 위해 취해야 하는 상태가 바로 바른 자세인데, 내 몸은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기에 그 바른 자세가 이리도 어색하단 말인가.  


어른이 된 지금도 투덜댈 수밖에 없는 바른 자세이지만, 그 위력을 잘 알고 있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잔소리임을 인정한다. 피아노의 가운데에 앉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손바닥은 평행이 되어야 오래 연습할 수 있었다. 손바닥이 자꾸 밑으로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손목이 아팠고 팔이 아팠다. 당연히 오래 연습하기 힘들었다. 물론, 그 자세가 습관이 되고 익숙해지기란 매우 어려웠고, 지루한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감사하게도, 강한 동기가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바른 자세가 무조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본 바탕은 된다. 좀처럼 바뀌지 않는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몸이 실천하게 되는 신기한 습관 말이다.


다시 꺼낸 기다란 피아노 의자에서 나는 별다른 의식 없이 그렇게 앉았다. 바른 자세 말이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무의식 중에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습관이 놀라웠다. 덕분에,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 운동 시간을 일부 절약한 것 같아서 기쁘다.


이미 어른이 되었다는 그래서 하루하루가 바쁘기만한 지금 이 시점에서, 기본에 충실하기 위한 시간을 투자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다. 아마 포기할 확률도 매우 높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끼는 사람이 생긴다면, 무조건 이 잔소리부터 시작하고 싶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가운데에 앉으세요. 

음악의 연주든, 인생이라는 연주든 멋진 연주를 오래도록 하고 싶다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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