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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Dec 20. 2017

피아노 악보의 동그라미

성실함에 대하여

피아노 악보를 넘기다 보니, 군데군데 동그라미들이 보인다. 동그라미는 한 번에 최소 5개부터 30개까지 그려져 있고, 각 동그라미들마다 기다란 작대기가 그어져 있다. 동그라미의 숫자는 내가 얼마나 연습을 했는가를 시각적으로 증명할 수 있던 수단이었다.


선생님은 레슨 중 내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하시면, 어김없이 악보 상단에 동그라미를 그리셨다. 그리고는 다음 레슨까지 이 숫자만큼 연습을 해오도록 시키셨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보다는 친구들과 밖에서 놀기를 좋아했던 어린 나에게는,  오늘은 몇 개의 동그라미를 받는지가 큰 관심거리였다.


전반적으로 피아노 연습 시간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원해서 자발적으로 연습을 했을 때에 한해서였다. 혼자 연습을 하다가 유독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알아서’ 더 연습했다. 스스로 그렇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선생님의 연필이 끊임없이 동그라미를 그려대는 날이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냥 그대로 악보를 집어던지고 싶었다. 괜히 청개구리가 되고 싶었다.


동그라미 하나에 연습시간이 5분가량 소요되는 경우에는, 동그라미 10개면 1시간이 그냥 지나갔다. 당연히 힘들었지만, 감히 딴생각은 해본 적 없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연습을 하다 보니, 동그라미 3개만 체크했을 뿐인데도 어느 정도 원하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왔다. 그런데 몇십 분이나 더 시간을 ‘낭비’ 할 수 없었다. 두근두근 떨렸다. 재빨리 나머지 7개 동그라미에도  체크를 마치고는 악보를 덮었다.


다음 레슨 때, 무사히 곡을 끝내고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선생님이 정해준 연습 할당량보다 훨씬 적게 연습했음에도 진도가 나간 것이다. 이거, 뭐. 쉬웠다. 또 하고, 또 했다. 이렇게 얼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하루는 레슨이 끝나갈 때쯤, 선생님이 악보에 동그라미를 열심히 그리며 말씀하셨다.


“동그라미 숫자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거 같지 않아? 이 숫자 중 3분의 1 정도만 연습한다는 거 아니깐 이러는 거다.”


자부심 넘치는 기억만큼, 부끄러운 기억 또한 아주 선명하게 떠오른다. 선생님으로부터 이 말을 들었을 때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혼내면서 말씀하신 거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웃으면서 얘기하니깐 더 부끄러웠다.


성실함의 시간이 당시 내가 생각했듯 정말 낭비의 시간이었을까.


물론 꼴도 보기 싫을 만큼, 성실함과는 상관없이 타고난 재능으로 내 시간을 빼앗아가는 듯한 존재가 분명 있다. 나에게 잘못한 것이 전혀 없음에도 얄밉기 그지없는 타고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성실함을 부끄럽게 여긴 적이 있다. 그래서 더 낭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성실함을 그 일에 투여한 시간의 양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수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노력을 쏟아부었는데 결과물이 남들과 비교하여 낮을 경우, 그때만큼 자신감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지는 적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노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시간낭비의 시간인 것이 맞다.


그런데 성실함은 시간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실하다의 의미는 ‘정성스럽고 참되다’라는 뜻이니 말이다. 시간을 많이 들였다고 성실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얼마나 그 시간을 정성스럽게 보냈는지가 성실함이었다. 내가 들인 시간이 남들보다 길었는데, 그 시간 모두 성의 있고 충실했다면 남들과 비교할 것도 아니다.


어쩌면 성실함은 나보다 상대방이 먼저 아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얼만큼 연습했는지는 당연히 나도 알지만, 상대방이 더 잘 안다. 매일매일 연습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내 실력은, 옷이 물에 스며들 듯 조심조심 늘어가는 탓에 당장 어제와 오늘의 큰 변화가 없는 이상 나는 모른다. 하지만, 매 순간 나와 함께 하지 않는 타인이야말로 연습의 정성 즉 성실함과 비례하는 변화를 크게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 선생님이 나를 보고 알았듯이 말이다.


경계해야 하는 것은, 나도 조금 연습해서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SNS용 자랑거리가 아니라,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다.


성실함이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느껴진다면, 악보가 아닌 것에도 동그라미를 그려본다. 다음번 레슨이 정해진 것도 아니기에, 동그라미를 빨리 체크해 나갈 필요도 없고 덕분에 조급하지 않아도 된다. 보여주기용 목표도 아니기에,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며 몰래 동그라미를 체크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내가 그리는 동그라미인 만큼,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연습의 시간이다.


그래서 기분 좋게 그려본다.

10개. 20개. 아니, 더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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