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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Nov 23. 2021

가자, 서울로!

연수 셋째 날 




어제 강습을 마치며 강사는 '내일 갈 곳을 정하라'고 했다. 운전을 배우며 제일 먼저 내가 가야 할 곳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망원동이다. 망원동은 우리 집에서 승용차로 20분 남짓이지만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이 넘는다. 차 연결이 뜸하면 그마저도 1시간 30분으로 늘어난다. 부모님 댁에 다녀오는 길이면 엄마가 주신 반찬을 들고 와야 하니 택시를 탈 때가 많다. 엄마의 사랑과 정성을 무겁다는 이유로 늘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한 것보다 훨씬 맛있는 음식을 영 마다하기도 어렵다. 사실 없어서 못 먹지, 이 귀한 걸! 운전이 익숙해지고 나면 가장 많이 갈 장소가 바로 망원동 부모님 댁이었다. 






당신은 밤에 혼자 택시를 타면 어떤 행동을 하는가? 30분 이상 가야 한다면? 

편안하게 기대어 하루의 피로를 잠시라도 풀기 위해 잠을 청하는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나를 데려다 줄 기사를 믿고 몸을 완전히 맡기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혹시 남자????? 


나는 단언컨대 한 번도 택시에서 마음을 놓은 적이 없다. 아무리 졸려도 잠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도로 이름은 몰라도 내가 아는 그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지 혹시 엉뚱한 길로 빠지지는 않는지 간간이 고개를 들어 네비와 길을 확인했다. 남성인 룸메와 함께 택시를 타고나서 가장 의문스러웠던 건 그가 택시를 타자마자 목적지를 말하고 곧장 눈을 감는 장면이었다. 어떻게 택시에서 잠을 자지? 뭘 믿고? 


여성 기사님을 만난다면 모를까, 밀폐된 공간에서 낯선 남성과 단 둘이, 게다가 나의 목숨과 안위를 온전히 그의 손에 맡긴 채로 어떻게 편안히 있을 수 있나? 그가 혹시라도 나쁜 인간이면? 범죄자라면? 나를 전혀 모르는 곳으로 데려가도 전혀 저항할 수 없다면? 그 끝이 성폭행이나 살인이라도 놀랍지 않다. 그런 상상이 전혀 드물지 않다. 허구의 것도 아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현실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성이 택시를 타면서 감수하는 것들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이제껏 한 번도 여성 택시 기사를 만난 적이 없다. 


운전을 배우고자 하는 이유에는 자유롭게 이동을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택시를 탈 때 느끼는 부담이 싫어서도 있다. 다른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불안하고 싶지 않다. 그저 마음 편안히 집에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애초에 여성 대상 범죄율이 이렇게 높지 않은 사회였다면 느끼지도 않았을 불안이다. 망원동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어느 날, 홍대 앞에서 새벽 2시 즈음 택시를 탄 내 또래의 여성이 그 길로 행방불명되었다가 며칠 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 뉴스를 본 뒤 부모님은 매일 홍대 앞에서 돌아다니는 내가 불안해 어쩔 줄 모르셨다. 절대로 절대로 택시를 타지 말라고, 반드시 버스가 끊기기 전에 집에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망원동에 가는 길에는 자유로를 탄다. 자유로와 강변북로를 거쳐 성산대교 방면으로 나간다. 강사는 어제보다야 훨씬 쉬울 거라고 했다. 어제는 회전 연습하느라 많이 돌았지만 실제로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호되지는 않다고. 과연 쭉쭉 뻗은 도로를 달리니 수월했다. 자유로 같은 길은 신호등도 없으니 주변 차와 과속만 조심하며 달리면 되었다. 성산대교 방면으로 나가자마자 강사는 말했다. 

"이제부터는 쉽지? 길 알지?" 

"아뇨, 잘 모르겠는데요." 

"자기 집 앞인데 왜 몰라? 이 길로 안 다녔어?"

"가족들 차에 실려서 다니긴 했는데 길을 신경 안 쓰니까요."

"자기, 좀 길치구나? 길치들은 길을 신경 안 써. 그래서 길치야!" 


맞다. 나는 길치다. 길치에 방향치. (지난 글에 왼쪽 오른쪽 얘기했지요? 제가 만나는 길치들마다 왼쪽 오른쪽 빨리 아는지 물어보곤 하는데요, 길치들은 대부분 잘 모르더이다. 저처럼 한 1-2초 정도는 생각해야 아는 이들이 많았고, 그 질문을 하기 전에는 자신이 느리다는 것조차 잘 모르고요.) 마포구청 근처에 다다르니 비로소 아는 길이 나왔다. 여기야 내가 잘 알지. 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그래도 어디로 좌회전해야 되는지 헷갈리기 일쑤였다. 걸어간다면 절대 헷갈릴 리 없는 익숙한 길인데, 차로에 있자니 온 세상이 달리 보인다. 


구 망원우체국 로터리에서 좌회전하여 직진하면 망원시장과 월드컵시장 사이 도로를 지난다. 그대로 쭉 직진하면 한강이 나오는데 한강 공원 입구 앞 회전 교차로에서 우회전해 다시 쭉 가면 부모님 댁이다. 여기 여기, 바로 저기 엄마가 계실 터인데! 어쩐지 아쉬움을 담고 그대로 집을 지나쳐서 망원동 골목길로 들어섰다. 운전의 꽃은 골목길이 아니던가! 큰 차도 아닌데 초보의 눈에는 사방이 다 칼날처럼 보인다. 이쪽 벽을 긁을까 저쪽 벽을 긁을까 조심조심 브레이크에서 발을 못 떼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언젠가 골목에서도 이렇게 마음 졸이지 않을 날이 오겠지? 하지만 골목은 언제나 사람이 튀어나오고 차도 튀어나오고 요즘엔 킥보드도 튀어나오기 쉬우니 아무리 익숙해져도 조심해야겠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지 말자.   


망원동 골목길을 나와 합정동 로터리를 거쳐 홍대로 간다. 홍대입구역 앞 도로를 지나 구 린나이 건물 앞 동교동 로터리를 지나 신촌으로 달린다. 서울의 로터리는 고양시의 로터리와 차원이 다르게 차가 빽빽하고 좌회전도 여러 차선이다. 게다가 버스전용차로가 있어서 더 헷갈린다. 버스 운전자가 버스전용차로에서 보는 신호등은 귀여운 버스 모양이라는 것도 오늘에서야 새삼 알게 된다. 이대와 아현동을 지나 충정로로 간다. 나는 북아현동에 있는 여고를 다녔는데 그때 많이도 지나다니던 길이다. 그러다가 길은 남산으로 이어진다. 남산 기슭의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오늘은 여기가 휴게소구나. 강사는 운전연수를 하다가 갈 수 있는 화장실들을 꿰고 있다. 하긴 그에게는 도로가 일터이니 도로 사정, 도로 위 화장실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겠다.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한번 시내를 거쳐 이번에는 은평구 쪽으로 돌아간다. 쭉쭉 뻗은 자유로는 올 때 탔으니까 돌아갈 땐 연습을 위해 더 복잡한 도로를 택한다. 은평구의 어느 도로에서는 내리막길 끝에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있었다. 50킬로인지 60킬로인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여하튼 내리막이었어서 조금 속도가 붙은 채였다. 강사는 옆에서 계속 속도 줄여! 속도 줄여! 외쳤는데 그게 막 그렇게 빨리 되나...? 강사가 이거 찍혔으면 딱지 들고 우리 집 앞에 찾아오겠다고 한다. 음... 정말 그렇게 되려나? 


과속이라니... 슬쩍 고백해 보자면 나는 운전면허을 딸 때 기능시험을 보다가 과속으로 감점당한 적이 있다. 기능시험장은 20킬로 이하로 달려야 하는데 어쩌다가 과속을 해서... 강사는 나보고 고속도로에 갖다 놓으면 잘 갈 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고속도로는 말만 들어도 좀 무서운데요. 


이렇게 시내 주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과연 차들이 빽빽하게 많으니 더 긴장이 되고 어려웠다. 회전은 적다 해도 난이도는 결코 낮지 않았다. 수시로 돌발 상황이 생기고 단속 카메라도 훨씬 더 많으니 신경도 더 쓰였다. 게다가 네비를 켜고 달리니 귀에서 이런 소리 저런 소리가 계속 나니 신경이 쓰이고, 나중에는 네비가 너 과속한다며 삑삑 경고를 해주는 소리도 잘 듣지를 못했다. 네비가 "oo미터 앞에서 우회전입니다."라고 해줘도 그 몇 미터가 얼마큼인지 감이 없어서 제대로 못 들어가기 일쑤였다. 과연 어렵구나. 강사가 혼자서는 한동안 시내에 나오지 말고 외각의 한적한 길로 다니면서 감각을 키우라고 했다. 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차하면 여기서 내가 죽거나 누구 치겠어. 무서운 시내 주행을 마친 연수 셋째 날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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