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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Nov 26. 2021

한강을 건너서

연수 넷째 날 


"오늘은 한강을 건너 보고 싶습니다." 

나흘째이자 연수의 마지막 날. 강사를 만나 오늘 하고 싶은 걸 말했다. 

어딜 가야 할까 어제부터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공항을 가도, 강남을 가도, 강남을 지나 분당이나 용인에, 더 지나 충청도나 경상도를 가려 해도 지나는 것이 한강이니 한강 다리를 건너야겠다 싶었다. 그런 실용적인 이유 말고도 나는 망원동에 살면서 서른몇 해를 한강과 함께 보냈다. 언제나 나의 배경이 되어준 한강을 내 손과 발로 운전해 건너는 경험은 어딘가 감상적인 기운까지 들게 했다. 






"그럼 행주대교를 타볼 테야?"

강사가 말하고 네비에 '김포공항'을 입력했다. 어제 갔던 길과 비슷하게 자유로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빠져서 행주대교로 갔다. 일반 도로와 별반 다를 바 없이 가라는 데로 갔더니 그냥 다리가 시작됐다. 나는 탁 트인 한강과 그 위를 신나게 달리는 나를 상상했지만 현실은 차가 차선 가운데로 잘 달리는지, 다리 위에는 속도 제한이 얼마인지, 혹시 여기도 단속이 있는지 신경 쓰느라 한강은 코빼기도 못 보고 지나갔다. 강사는 옆에서 계속 이쪽 지역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었지만 여전히 귀에서 귀로 흘러가 버렸다. 


행주대교를 나와서는 그대로 공항까지 가지 않고, 강서구에서 조금 돌았다. 어느 교차로에서 멈추니 이쪽이 화곡동, 저쪽이 신월동이었다. 화곡동 부근은 내가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다. 아주 드물게 친구네 방문할 때나 몇 번 와봤다. 것도 이 부근이 그나마 집값이 저렴하던 시절의 일이다. 신혼살림을 막 차린 친구들이 돈이 없어 서울 내에서도 저렴한 집을 찾아 이쪽 동네로 이사를 가곤 했다. 지금은 마곡지구가 개발되면서 주변 역시 크게 올랐다고 한다. 하긴 서울에 아직도 싼 동네가 있을 리가 없지. 나만 해도 서울에서 집을 못 구해 오래 살던 정든 동네를 떠나 고양시에 살고 있지 않은가. 


아주 어렸을 때 화곡동에는 우리 작은 이모가 살았다. 그때는 '화곡'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자동으로 이모 얼굴이 떠올랐다. '안양'이라고 하면 둘째 외삼촌이 떠오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내가 모르는, 혼자 갈 수 없는 먼 동네에서 온 친척들은 곧 그 지역의 얼굴이었다. 봉천동은 한참 언덕을 올라서야 나오는 큰집 가족들이, 전주라고 하면 한적하고 넓은 양옥에 사는 사촌 오빠들의 얼굴이 퐁퐁 솟아올랐다. 이제 우리 이모는 후암동에 살고 외삼촌은... 음 어디더라? 여전히 안양 근처에 사시는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지리 정보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도 아주 오랜만에야 기억이 났다. 




신월동인지 화곡동인지를 슬쩍 돌아서 어찌어찌 가다 보니 이번에는 고층 건물들 사이 노랗고 빨간 단풍들과 일방통행 길로 이루어진 느슨한 공원 같은 곳이 나왔다. 여기가 어디지? 하고 두리번거리니, 상암 디엠씨였다. 그 빌딩 숲 한복판에 이런 한적한 길이 있었구나.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고 차들은 천천히 다녀서 나도 천천히 움직였다. 오늘은 여기가 휴게실. 강사가 어느 큰 건물의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나는 그냥 차 안에 있었다. 화장실 신호가 아직 안 오기도 했고 오늘로 연수가 마지막인데 차 안에 혼자 있을 기회가 없어서 잠깐 머무르고 싶었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는 걸 우수수 흩날리는 낙엽으로 알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이번에도 은평구를 지났다. 어제 과속으로 지나갔던 구간을 오늘은 성공적으로 속도를 줄여서 무사히 통과했다. 딱지가 두 번은 안 나오겠지. 아이고 무서워. 하지만 정말 무서운 건 다른 차를 박거나 사람을 치는 일이지 사실 딱지는 그렇게 무섭진 않다. 강사는 말했다. 보행자를 차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보행자일 때의 나도 그렇다. 차가 아주 가까이 지나가도 천천히만 가면 무서워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는 운전자를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응, 너 이 방향으로 천천히 갈 거지? 그러면 나는 이쪽으로 이렇게 걸어갈게. 갑자기 방향을 틀지만 않으면 별일 없을 테니까 뭐.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니까 운전자로서의 나도 그 생각에 기초해서 아주 천천히 핸들도 아주 부드럽게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한다. 내 맘대로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집 앞에 도착해 마지막으로 주차를 한번 더 배우고 강습이 끝났다. 강사와 깍듯이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남성 강사라고 처음엔 불안해했는데, 별 문제 없이 안전하게 마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가끔 고령 남성의 시각에서 하는 말이 귀에 까끌대기는 했어도 우리 아빠나 엄마보다는 덜 보수적인 쪽이었다. 아마도 늘 젊은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체득된 부분도 있겠지. 


저번 쉬는 시간에 운전은 몇 년 하셨냐고 물어봤는데 50년이라고 했다. 에에? 50년이나요? 자신은 대학생이 되자마자 운전면허를 따서 친구 차를 운전하고 다녔다고 한다. 친구가 택시를 몰았는데, 그 친구 쉬는 시간에 자기가 대신 택시 운행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고. 그런데 사실은 면허를 그때 딴 것뿐이지, 운전을 진짜 시작한 건 초등학교 때라고 했다. 어려서 집에 차도 있고 기사도 있었는데 그 기사가 차를 태워주고 운전도 가르쳐주었다고. 나이가 일흔 정도인 것 같은데 어렸을 때 차와 기사라, 상당한 부자였구나. 여튼 그렇게 운전 신동에서 시작해 평생 운전자로 살아온 분에게 잘 배운 나흘이었다. 


이제 나는 혼자서 운전을 해야 한다. 이 10시간이 과연 충분한 연습이 되었을까? 나는 정말 배울 걸 다 배운 걸까? 의심이 들지만 뭐 어째, 부딪쳐 봐야지. 이제 다들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쌩초보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아니 저기 좀 비켜 주시겠어요?  미리 죄송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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