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준가 Mar 20. 2024

서교동 - 드디어 기어코 마침내 사고를 쳤다  

첫 번째로 보험회사에 연락한 날



출판사는 합정역 2번 출구와 가까운 서교동 골목에 있었다. 시리즈 기획을 맡아서 벌써 여러 번 미팅을 했던 곳이다. 나는 이제 차가 있으니까, 어느 정도 조심할 줄도 알게 되었으니까. 망원동에도 몇 번 잘 다녀왔으니까 이번에는 미팅에 차를 갖고 가 보리. 그리고 출판사 건물에는 지하 주차장도 있었다. 주차장만 있으면 돼. 그러면 차를 가져갈 수 있어.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자유로를 지나 강변북로로 들어섰다가 합정역 방면 출구로 빠졌다. 첫 번째 난관이 곧바로 찾아왔다.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곧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4차로에서 1차로로 옮겨갈 수가 없었다. 좌회전 차로에 줄 서 있는 차도 많았고 직진 차량들은 계속 움직이고 있으니 어찌어찌 2차로까지는 갔지만 그냥 좌회전을 포기하고 휘말려 직진을 했다. 괜찮아. 길은 다 이어져. 다음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면 되지. 다행히 나는 이 주변 길은 익히 알고 있으니까. 다음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했는데, 아뿔싸 두 번째 난관. 출판사까지 가는 길이 온통 좁은 골목길이었다. 아마도 서교동에서 가장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폭풍 핸들링을 했다. 그래 봤자 초보의 것이니 옆에서 본다면 우왕좌왕 무척 어설펐을 것이다.

그렇게 어찌어찌 출판사 건물에 도착해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주차장 자체가 세 번째 난관이었다.


주차장 입구는 아주 좁았고, 입구 양쪽의 콘크리트 벽은(아래 그림의 노란색 부분) 견고하고 모서리가 뾰족했다. 그런데 골목이 좁아 차를 돌려서 들어갈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차를 여러 번 움직여야 했다. 그러고 있던 중 문제는 뒤차가 빵을 날렸을 때 생겼다. 나는 당황해서 얼른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차를 입구로 들이밀었다. 그런데 차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하던 찰나, 이번에는 골목 맞은편에서 트럭이 와서 빵을 했다. 그 순간 나는 골목 중간에 서서 길을 막은 민폐 차량이었고, 진땀을 흘리는 초보였으며,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한 마리였다. 안 움직이는 차의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뒤로 갔다가 앞으로 갔다가 또 핸들을 돌리고…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모르게 겨우겨우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 틀림없이 긁혔구나.’

생각하며 임박한 미팅 시간에 맞추어 출판사로 올라갔다. 작가님도 시간에 맞게 오셔서 함께 미팅을 잘 마쳤다. 함께 출판사 사무실을 나서며 이야기하니, 마침 작가님도 차를 갖고 오셨는데 다른 건물에 대셨다고 했다. 작가님은 선배 드라이버였고, 운전을 추천하는 동료 여성이기도 했다. 드디어 장롱면허를 꺼내 먼지 털고 나왔으니 함께 주차장에 내려가 자랑스레 차도 보여드렸다. 작가님은 "생각보다 큰 차를 사셨네요?" 하며 함께 기뻐해 주셨다. 차는 전면주차를 한 상태라서 앞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작가님을 배웅한 뒤, 정신이 들며 들어올 때 긁은 부분이 슬슬 걱정되었다. 룸메한테 많이 혼나겠네. 운전 조심히 했어야 했는데 아까 너무 당황해서 사고를 치고 말았잖아. 그렇게 범퍼 부분을 살펴보는데 아이구!


긁힌 정도가 아니었다. 범퍼는 물론 헤드라이트까지 심하게 깨져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이건 그냥 어쩔 수 없는 실수로 치부하고 타고 다닐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반드시 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동차에 대해 무식한 내가 봐도 보통 잘못이 아니었다. 일단 사진을 찍어 룸메에게 보냈다. 룸메는 무척 놀랐으면서도 일단 운전을 침착하게 해서 오라고 했다. 부서진 차 생각하느라 돌아가는 길에 또 사고가 나면 안 되니까. 하지만 그게 되면 내가 도인이지 일개 인간일까. 오는 내내 차의 앞구석이 신경 쓰여 애를 먹었다. 긴장하지 마 불안해하지 마 앞부분 신경 쓰지 마 전방 주시해. 전방 주시해! 


집으로 오니 룸메가 마중 나와 있었다. 

"야 이건 그냥 사고차량인데!" 보자마자 그가 소리쳤다. 

안 되겠다. 보험사에 연락하자. 

가까운 쉐보레 바로서비스센터를 지도에서 찾고 차를 몰고 갔다. 보험사에 연락도 했다. (바로서비스 센터는 개인 공업사가 쉐보레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경우다. 쉐보레 직영 서비스센터보다 가까이 여러 군데 있다.) 보험사 상담원은 사고접수를 해주면서 "저런"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저런 고객님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시고요?"

"네, 그냥 저 혼자 벽에 받은 거라서요. 전혀 부상은 없습니다."

부상이 있어도 어쩐지 미안해서 말을 못 할 것 같았다. 혼자 주차장에서 당황해서 벽에 박다니. 그런 멍청한 짓을 내가 했다니. 각이 안 나오면 잠깐이라도 내려서 상황을 보고 조정했으면 될 것을. 왜 차 안에서 우왕좌왕 미련을 떨었나. 끝없는 후회 속에 받은 것은 수리 견적서 180만 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차의 조건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