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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인 Suin Park Feb 24. 2023

이상한 느낌인데 기분 좋아!

음악학술 뉴스레터 '씨샵레터'에 소개된 글입니다.




ASMR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이 말은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줄임말로, 우리말로는 '자율 감각 쾌락 반응' 정도로 번역됩니다. 무슨 전문 의학 용어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네티즌이 학술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경험적으로 만들어낸 신조어입니다�. 미국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상한 느낌인데 기분 좋아'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는데, 이 글의 작성자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린 겁니다. 작성자는 인형극을 보거나 책을 읽을 때, 친구가 마커로 손에 그림을 그려줄 때 등 어느 순간엔가 갑자기 신체 부위 중 어딘가가 간질거리는 (요상한) 느낌을 받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런 느낌이 도대체 뭔가 하고 글을 남긴 건데요. 그러자 여러 네티즌들이 자신들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서 각자의 경험들에 관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어요. 급기야 '이상한 느낌인데 기분 좋아 - PART 2'까지 만들어지면서 지금은 ASMR 역사의 '성지' 같은 게시물이 되었죠. 그리고 이 스레드를 유심히 지켜보던 한 네티즌은 어디서, 어떻게, 왜 생겨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외부의 어떤 소리(와 시각) 자극에 따라 뇌나 신체 부위 중 어딘가가 간질거리며 기분 좋은 자극을 주는 이 현상을 ASMR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합니다. 곧이어 그런 기분 좋은 자극을 하나의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ASMR 크리에이터들(ASMRtis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크게 유행하게 되고요. ASMR은 주로 어떤 사물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 붓으로 마이크를 사라락 쓸어내리는 소리, 작게 속삭이는 소리, 종이에 연필을 사각거리는 소리 등 무척 작은 소리를 정교하게 담아냅니다. 여기에 손가락이나 브러시로 카메라를 터치하면서 시각적 자극을 주기도 하면서요.


그런데 최근에는 현대음악 신에서 ASMR 사운드를 재료로 사용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요�. 카야 체르노빈, 카롤라 바욱홀트, 클라라 이아노타 같은 작곡가들은 ASMR에 대한 관심을 그들 작품에 접목시킵니다. 예컨대 체르노빈의 오페라( Heart Chamber (2019)의 'ASMR 에피소드'라는 섹션에는 오페라 가수가 입, 몸의 움직임으로 만들어내는 미세한 소리가 등장합니다. 바욱홀트는 온라인 상에서 무척 유명한 ASMR 영상 중 하나인, 토끼가 수박을 아삭아삭 베어먹는 소리를 모방해 작품 안에 포함시켰구요(Implicit Knowledge, 2019–2020). 이아노타는 연주자가 입의 움직임으로 만들어낸, 본인에게만 들릴 것 같은 몹시 작은 소리를 메가폰으로 확성시켜 콘서트홀이라는 넓은 공간에서 울리게 합니다.



음악이론가 쥘리아 아코르네로는 작곡가들이 이렇듯 아주 작은 소리를 음악 재료로 사용하면서, 청중은 그 소리로 매개된 아주 사적인, 친밀한 공간 안에 놓이게 된다고 주장해요. 게다가 이 작은 소리들은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어가며 하나의 작품을 형상화 하는 유의미한 단위라기 보다, 그 소리 자체가 가진 '물질성'을 드러내면서 신체적 자극을 가한다고요(Accornero). ASMR의 원리와 맞닿는 부분이 있어 보이죠? 소리가 매개물이 되어 어떤 특정 공간을 형성한다는 아코르네로의 입장은 이른바 '공간적 전회(the spatial turn)라는, 20세기 중반 소리 연구 분야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사고에 바탕을 두는 듯 합니다. "음악이란 시간에 따라 펼쳐지는 시간예술이라는 오래된 관념이 공간적 매개물로서의 소리"로 바뀐 현상을 일컫는 것이죠(Pederson, Vilmar).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난 C♯레터 제12호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정경영 연구소장의 '쩌는 음색'에 관한 연구가 떠올랐어요. 특정 가수의 노래(주로 대중음악)를 들으면서 "음색 쩐다"고 말하는 것은 곧 소리를 육체적으로 경험하는 일이고, 음악을 듣고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매일 같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소리와 몸이 분리되지 않는 경험이 익숙한 상황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연구요. 다시 말해, '음악 듣기'가 귀로 듣고 이해하는 인식 행위에서 소리에 대한 육체적 반응으로 달라지게 된 건, 이어폰이나 헤드셋 발명이라는 그 ‘기술’(technology), 나아가 그 기술에 따른 ‘듣기의 기술’(technics of listening) 변화와 관련 있다는 거죠. 요즘엔 쩌는 음색을 가진 보컬들을 ‘음색 깡패’라고도 부르는데, 이 말이 '듣기 좋은 음색으로 듣는 이를 두드려 팬다'는 뜻을 함의하는 거라면 '음색 깡패'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미 소리를 육체적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거예요.





아코르네로가 소리 자극이 만들어내는 육체적 경험을 작곡가들의 의지에서 찾는다면, 정경영 연구소장은 청중의 듣기 기술 변화를 지목합니다. 두 입장은 창작자의 의도와 수용자의 반응이라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둘 모두 소리 자체가 갖는 물질성과 촉각성을 주목한다는 점은 흥미로워요. ASMR, 실험음악, 대중음악과 같은 현재의 다양한 음악/소리 분야의 새로운 경향성이라고 봐도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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