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우리 밭에 놀러 와
2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오늘까지 나의 노동 소득은 2천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동안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샌드위치를 굽고 설거지를 했다. 나머지 시간엔 밭에 가서 농부를 돕고, 주말엔 시장에서 야채를 팔고 푼돈을 쥐었다. 그렇게 생활비를 벌었다. 34살 연봉과 업무능력의 상향곡선을 그려야 할 때, 브레이크를 밟았다. 연애는 하고 싶지만 소개팅에 나오는 남자들 마다 맘에 들지 않아 사랑을 못하는 애달픈 청춘처럼, 7년간 나는 일은 하고 싶은데 새로운 직장을 가도, 새로운 업무를 맡아도 마음도 체력도 점점 텅 비어가는 고독한 노동자였다. 호기심이 참 많은데, 책상에 앉으면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싶은 날들이 많았다.
이력서 상 커리어는 괜찮았다. 회사 급여나 복지도 좋았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한국 정서에 알맞게 일한다는 명분으로 뭘 다양하게 많이도 먹었다. 두둑한 월급덕에서 고급호텔과 미슐랭 레스토랑을 다녔고, 회사돈으로도 좋은 식당에서 미팅을 했다. 근데 이상하게 잘 살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지인과 맛집탐방을 가는 것도, 회사사람들과 밥을 먹는 시간도 피로했다. 점점 외식업계는 화려해지고, 비싸지는데 어떤 맛도, 어떤 미식경험도 별로 새롭지가 않았다. 비싼 옷을 입고, 조각작품 같은 음식, 미사여구를 붙인 프레젠테이션 음식이 유난스러웠다. 식탁위에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도 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교양 있는 척 잘사는 척, 인스타에 사진 올리려고 갔나보다. 그래서 음식을 먹고도 허기졌다.
입맛도 일맛도 잃어버린 때, 마르쉐 시장에서 알게 된 '찬우물 농부'내외가 밭으로 점심 식사를 초대했다. 5월 초 소만(小滿), 본격적인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이때의 밭은 아름다움의 총집합이다. 가지런히 행열을 맞춰 상추, 루꼴라가 앙증맞게 웅크리고 있고, 포도나무는 덩굴 터널을 만들었다. 그 길이 끝나면 달콤한 향이 났는데, 살구나무의 잎들이 햇살을 받으면서 윤기가 났다. 뭉게뭉게 흰구름과 따스한 햇살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고, 작은 새들이 땅을 쫑쫑 뛰어다니면서 벌레를 먹는 모양을 보니 마음이 경쾌해졌다. 오두막에선 오전 밭일을 마친 도시농부들이 왁자지껄 큰 그릇에 직접 기른 초록잎, 밥을 넣고 참기름과 고추장 조금만 넣어서 슥슥 새참을 만들었다.
처음 보는 열명이 좀 안 되는 텃밭 농부들과 참 단순한 음식을 나눠 먹었는데 ‘함께 밥을 먹으며 정을 나누고 에너지를 채우는 감각이 되살았다. 회사 다닐 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TMI를 난무하거나, 시답잖은 질문과 오버해서 웃곤 했다. 유명 맛집 리스트를 찾고, 힘겹게 예약했는데, 밥을 먹을 땐 부산스러웠고, 헤어지면 피로했다. 함께 잘 먹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사실 주말의 청담동 레스토랑이든 금요일밤의 광화문의 회식 장소를 채운 사람들 대부분 버티는 거 같았고, 외로워 보였다.
첫 텃밭 식사에서 대화는 각자의 텃밭에서 잘 자란 채소 칭찬, 요즘의 날씨가 작물의 맛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야기했다. 처음 보는 나에게 이름 보다 먼저 물은 건 '너는 밭에서 요즘 뭘 기르고, 텃밭은 잘 되가냐'는 인사였다. 그리곤 자신이 너무 잘기른거 같은 야채좀 먹어보라는 말들이 참 다정하고 편했다. 흙먼지가 좀 있는 어딘가 부족한 공간 속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식사. 마음 편하게 먹어 소화가 잘 됐고, 온몸이 에너지를 채웠다는 느낌을 오랜만에 되찾았다. 텃밭에서 일하고 도시농부를 동료로 두고 싶었다.
2년간 밭에의 시간은 내 주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게 했다. 올여름은 모든 농부가 살면서 가장 농사가 힘들었던 해로 꼽는다. 한글보다 농사질을 먼저 배운 농부가 한평생 가장 힘든 농사라고 했다. 농부는 건강을 해치면서 작물을 키웠다. 몇몇 농부들은 일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내년엔 밭의 크기를 줄이거나, 아예 은퇴하겠다고 말하는 농부도 많았다. 땅이 불처럼 뜨거워져 채소가 촛농처럼 녹았고, 그나마 열린 열매나 채소를 벌레가 먹었다. 잎은 누더기가 됐다. 시장에 팔 게 없을 거 같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작물을 돌보고, 날씨요정에게 애원했다. 때를 맞춰 뭘 준비해도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절기 흐름이 다 깨져 농부들은 좌절하고 지쳤다. 근데 다시 씨를 뿌리고 가꾸고, 그리고 알토란 열매와 푸른 잎을 시장에 들고 나왔다.
밥상머리에서 숟가락만 들고 와서 앉아 있는 나는 그저 감사하게 먹어야 했다. 어렸을 적 유치원에서 들었던 말들인 반찬투정하면 안 돼, 농부한테 감사해야 해, 감사하면서 먹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음식을 평가하고, 남기고, 음식이 별로네, 거기가 더 맛있네, 재료가 별로네 비평을 했다.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히터기 아래 온실 속 화초처럼 대접받으면서 살 궁리만 하니, 채소가 얼마나 귀한지 알길이 없었다. 농림부 장관이 멍청해서 채소값이 비싸겠거니 했다. 식당에선 비싼 돈을 냈으니 음식을 평가할 권리가 있고, 대접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얄팍한 음식 리뷰를 SNS에 올리고, 사람들에게 맛집을 잘 아는 것처럼 말을 보탰다. 그런 과거 때문일까. 요즘의 다양한 음식 예능과 맛집 리뷰가 불편한 건 뭣도 모르면서 지껄이던 나의 가벼운 과거가 계속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거만하게 음식을 소비하고 우쭐해 했지만 기력이 떨어지고, 뭘 먹어도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한번 만나자고 하면 ‘밭으로 놀러 와, 밭에서 샐러드 비빔밥 해 먹자’ 말했다. 소중한 친구와 더 깊어지고 싶은 플러팅이다. 잘 먹는다는 건 뭘까. 각자의 잘 먹음의 방법이 있겠지만, 난 밭에서 찾았다.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 지금 기후에서 열매가 열린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래서 감사하게 먹으라는 설명문은 참으로 꼰대 같아서 그만 하겠다. 그리고 이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잘 먹는 방법도 아니라는걸 안다. 다만 과거의 나처럼 화려하고 비싼 도시 음식도 이제 시시해지고, 우르르 몰려가서 웨이팅 하는 맛집에서 백종원 빙의하는 게 뭔 소용이냐 싶은 생각이 한번쯤 들었다면, 이제 먹는 방법을 달리해 텃밭에서 한번 먹어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찬우물 농부와 그의 소작농 배추가 사람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매 계절에서 내가 먹을 걸 심고, 가꾸고, 기후를 이해하고, 날씨를 담은 작물로 한 끼 식사를 사람들과 함께 먹는 일. 계절이 담긴 재료로 사람들과 에너지를 배불리 먹는 맛. 그 맛은 말로 설명이 어려워서, 작은 텃밭 소풍을 꾸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