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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진기자 이희훈 Dec 06. 2019

빨리 죽으라고 했던 가족

탈시설 장애인 마로니에 8인 / 김동림

'마로니에 8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10년 전 같은 이유로 뭉친 이 8명은 입을 모아 자유를 말했다.  

이들은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아왔던 시간은 인간의 존엄을 무시 당한 채 숨이 붙어 있어 마지 못해 사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8명은 탈시설 투쟁을 시작했다. 스스로 자기 결정권을 누리며 사회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시설을 떠난 뒤 서울시를 상대로 이어진 62일간의 노숙 투쟁. 휠체어에 앉아 오랜 시간을 견디고, 불편한 잠자리와 소음·더위를 이겨 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장애인 시설에서 무시당하고 고통 받았던 시간보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첫 경험이 소중하고 행복했다고 했다. 

사회의 일원으로 산 지 이제 만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렇게 독립한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




 빨리 죽으라고 했던 가족, 이제는 가족이 내가 사는 이유




김동림 / 57세, 지체장애


김동림씨는 시설에 살 때 전국일주가 꿈이었다. 시설을 나와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이동하며 여행을 다니고 싶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곳곳을 직접 누비고 싶었다. 

동림씨는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유전으로 뇌위축증 증세가 나타나 더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집에만 누워 있던 동림씨에게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습관적으로 "저놈 빨리 죽어야지"라는 말을 반복했다. 가정의 불화가 깊어졌다. 때마침 텔레비전에서 활동적이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장애인 시설의 모습이 비쳤다. 그렇게 동림씨는 스스로 장애인 시설을 선택해 입소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동림씨는 장애인 시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가족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탈시설 후에도 가족이 그리웠지만 버림받았다는 마음에 가족을 찾고 싶지 않았다. 그런 동림씨에게 한 줄기의 사랑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장애인 자립시설 평원재에서 지금의 아내 이미경씨와 '썸'을 타기 시작한 것. 두 사람은 사랑을 확인하고 함께 집을 얻어 부부가 되었다. 

동림씨는 첫 키스의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뽀뽀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 못했는데, 아내가 가르쳐줬다"며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두 사람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동림씨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바뀐 자신의 꿈이야기였다.

"제 꿈이 바뀌었어요. 이제 여행은 가고 싶을 때 얼마든지 갈 수 있어요. 앞으론 저보다 어려운 장애인이나 저처럼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들을 돕고 상담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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