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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진기자 이희훈 Dec 07. 2019

투쟁에서 사랑으로

탈시설 장애인 마로니에 8인 / 김용남, 주기옥

'마로니에 8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10년 전 같은 이유로 뭉친 이 8명은 입을 모아 자유를 말했다.  

이들은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아왔던 시간은 인간의 존엄을 무시 당한 채 숨이 붙어 있어 마지 못해 사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8명은 탈시설 투쟁을 시작했다. 스스로 자기 결정권을 누리며 사회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시설을 떠난 뒤 서울시를 상대로 이어진 62일간의 노숙 투쟁. 휠체어에 앉아 오랜 시간을 견디고, 불편한 잠자리와 소음·더위를 이겨 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장애인 시설에서 무시당하고 고통 받았던 시간보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첫 경험이 소중하고 행복했다고 했다. 

사회의 일원으로 산 지 이제 만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렇게 독립한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




투쟁에서 사랑으로

김용남-주기옥, 61-73세 지체장애 부부



교통사고로 후 시설에 보내진 용남씨, 올림픽 개최로 시설로 보내진 기옥씨

김용남씨는 31살 때 서울 용산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장기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그 병실은 석암재단에서 운영하는 병실이었다. 두달 정도 후 병원 관계자가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석암재단 시설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돌봐 줄 가족들이 없어 시설 입소를 결정하게 되었다. 

시설에 사는 동안 용남씨는 부모님 제사와 묘를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며 원통해 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형제들과도 연락이 끊겼다. 한 방에 열명 정도 수용하는 곳에서 생활했던 용남씨는 인간 사육을 당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인간으로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탈시설을 결심했다. 

용남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공동체를 꿈꿨다.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사는 그런 지역사회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주기옥씨의 어머니는 기옥씨가 세살 때 동생을 낳다 돌아가셨다. 형제들도 다 죽었다. 아버지는 새 가정을 꾸렸고, 기옥씨는 할아버지에게 보내졌다.

성인이 된 기옥씨는 교회에서 소개 받은 남자와 대전에서 생활하다 가정폭력에 시달려 도망나왔다. 대전역에서 노숙하며 배회하던 중 숙식을 제공하겠다는 여관에 따라가 죽도록 일만 했다. 그 마저도 10년간 돈을 주지 않아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도망쳤다. 그곳에서 껌팔이를 하며 노숙생활을 하던 중 88올림픽 개최로 장애인 시설에 보내지게 되었다.

"갓난아기 봐주는 일하면서 산이나 들 구경다니고 싶어, 시설에서 20년을 썩었더니 삶이 지옥 같아." 

기옥씨는 마로니에 8인중 유일한 여성이다. 23년 동안 시설에 있으면서 한번도 자유롭게 나가보지 못하고 살았다면서 원통해했다.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지시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용남씨와 기옥씨는 부부다. 석암비대위 투쟁을 하며 사랑을 꽃피웠고 현재 서울 강남구 수서동 임대주택에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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