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순하다.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다. 예민하지도 섬세하지도 않다. 힘든 일도 잘 잊어버린다. 긍정적이다. 짜증이 많지 않다. 고 생각하는 내 모습들이 있었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생소한 생각이 솟아나면 경계했다. '내가 왜 그러지? 나 "원래" 되게 쿨한 사람인데, 이상하다. 빨리 지금을 벗어나야지. 아닌 척해야지. 덮어둬야지.' 그러다 보니 내 감정을 몰랐다. 분명 무시하는 말에 상처를 받았는데, 그 말이 왜 자꾸 머릿속에 맴도는지 몰랐다. 알아도 삼켰다. 난 갈등을 만들면 안 되니까 가만히 당하기만 했다.
의외의 내가 튀어나올 때가 생각보다 되게 많은 거다. 작년 이후로 그간 알지 못했던 너무나 많은 모습을 마주했다. 우울해서 배도 고프지 않았고, 별 일 아닌 것처럼 말하면서 집에 가서는 계속 생각나고, 대체 왜 당하기만 했는지 끊임없이 파고들고, 그제야 깨달았다. 그렇게 쿨하고 생각이 없고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내가 지향하는 모습일 뿐이라는 걸. 그냥 가끔 쿨할 때도, 단순할 때도, 예민할 때도, 우울할 때도, 부정적일 때도 있는 이 여러 가지 모습이 다 나였다.
"내가 생각하는 나"에 갇히면 진짜 나를 바라볼 수 없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감정도 찍어 누르려고 하고, 그 어떤 새로운 일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 그거 아는 맛이야, 해도 난 이럴 거야'했던 일이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적이 있지 않은가? 경험해봐야 안다. 진짜 아는 맛인지 소금이라도 더 친 맛인지 생소한 맛인지. 처음 접하는 맛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익숙한 맛에는 왜 그런 생각과 감정이 생기는지를 곰곰이 파고들다 보면 진짜 속마음을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든 내 존재를 알리고자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은 아직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좀 자제하려고 한다. 적어도 확신은 하지 않아야겠다. 사람은 입체적이다. 계속해서 바뀐다. 어느 정도 뭉뚱그려진 모습의 내가 있지만, 가끔 튀어나오는 새로운 모습도 나다. 어쩌면 어떻게든 꾸역꾸역 덮어두고 있던 오래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나'에 갇혀 나답지 않다고 여긴 것들이 부끄럽고 숨기고 싶었는데 이제는 다 돌봐주고 싶다. 지금은 그런 감정이 들었구나. 이런 마음이구나. 바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