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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Apr 25. 2020

‘힙스터 같다'는 말은 왜 조롱으로 들릴까

<후 이즈 힙스터>를 읽고

한국에서 힙스터라는 말은 절대 칭찬이 아니다. 사람들은 힙스터를 비웃고 조롱하고 경멸한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알고 있는 힙스터는 무엇일까?
 < 이즈 힙스터>, 문희언



힙이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일게 하나도 없는데 '힙스터 같다'는 말의 뉘앙스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사람들은 힙한 장소를 좋아하고 힙한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하면서 힙스터란 말을 조롱으로 쓴다. 왜일까.


책 <후 이즈 힙스터>에서는 힙스터라는 단어의 유래와 미국 포틀랜드, 일본의 힙스터의 양상을 다루고 한국의 힙스터를 정의내린다. 한국의 힙스터들이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내면을 쌓기 보다 겉치레에 치중되어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현상에 불을 지핀 자들을 '취향도둑'이라 칭한다. 여기서 '취향도둑'이란 직접 무언가를 발견하는 데는 관심이 없지만 좋다고 소문을 내고 싶기에 SNS에 게시하는 이들을 뜻한다. 저자는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타인을 좋아하고 흉내 내는 것이 절대 나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을 조롱할 수 없다. 돈이 없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난 현상이다. 취향은 10대때 만들어져야 하는데 앉아서 공부만 하느라 갈고 닦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20대는 등록금도 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라 돈이 없고 취업 준비 하느라 시간도 없다.


아사이료의 <누구> 소설의 주인공은 누군가를 보며 속으로 판단을 내리고 익명의 계정에 아무도 모르게 속마음을 올린다. 나만의 생각을 올리는 일기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속마음은 비춰지기 마련이다. SNS, 혹은 누군가의 단면을 보고 결론을 내리고 속으로 비웃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겉치레 뿐인 힙스터로 보인다고 해서 혹은 힙스터가 아니라고 해서 서로를 무시하고 판단내리기 보다 넘어서의 무언가를 보기 위해 노력하는 건 어떨까.





한국에서 힙스터란 '맛집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전시회나 공연만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올리는 젊은이들'이 되었다. 힙스터라는 말은 그 자체로 '홍대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철없는 20대'를 지칭하는 말이 되어 누구나 쉽게 비난하고 비웃을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사실 힙스터를 비웃는 사람이 힙스터보다 더 좋은 취향을 가진 것도, 더 좋은 곳을 가는 것도, 더 많이 아는 것도, 더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영화를 더 보는 것도, 음악을 더 듣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힙스터는 물질만능주의가 한창이던 시절에 태어나 인터넷의 발달로 어렸을 때부터 외국 문화를 쉽게 접하며 자랐고 부모 세대보다 좋은 안목과 취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돈이 없다. 한국의 힙스터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가난하다. 그렇기에 본인이 가진 적은 돈으로 가능한 큰 만족을 느끼고 싶어서 이미 검증된 '멋지고 힙한 곳'만을 찾아간다. SNS에 올려 '내 취향이 이렇게 좋다.', '이런 것도 먹었다.', '이런 곳에 가서 전시회를 봤다'는 식의 보여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나만의 취향을 쌓으려면 오랜 시간을 걸쳐 끊임없이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경험하고, 입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며 이런 취향 쌓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본이다. 결국 돈이 없으면 직접 할 수 없고, 타인의 취향을 흉내 낼 수밖에 없다.



사람의 취향이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만들어가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천천히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10대 시절에는 오로지 대학 입시 때문에 공부만 하고, 20대 초중반에는 취업 공부를 하거나 공시 준비를 하고, 20대 후반에야 비로소 취직하여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여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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